중국인들은 불법복제품에 대해 매우 관대하다. 상인들은 물론 일반인들도 가짜를 진짜로 둔갑시켜 돈을 버는 행위를 일종의 전략이나 지혜쯤으로 여긴다. 또 가짜를 단속하면 지방경제가 위축된다는 생각 때문에 지방정부는 가짜 상품을 묵인·방조하기조차 한다. 오죽하면 ‘중국에는 사람 빼고 모든 것에 가짜가 있다’는 말이 있을까. 진짜와 가짜가 한데 어우러져 속고 속이며 흘러가는 ‘짝퉁 천국’이다.
상하이 중심가 샹양(襄陽) 시장에는 외국에까지 소문난 800여개의 가짜명품 가게가 밀집돼 있다. 이곳에는 세계 명품 브랜드의 신제품이 출시되는 것과 거의 동시에 똑같은 모조품이 등장한다. 시장 입구에 ‘삐끼’들이 먹이를 노리듯 대기하고 있다가 관광객으로 보이는 사람이 나타나면 들러붙는다. 무슨 물건이든 말만 하면 다 구해줄 수 있다며 잡아 끄는 삐끼를 따라간 곳은 뒷골목의 어느 허름한 식당 주방이었다. 지지고 볶는 주방 화로 옆으로 난 조그만 쪽문을 여니 창문도 없는 넓은 창고에 각종 가짜 명품이 가득했다. 최신형 롤렉스 시계, 프라다 핸드백, 샤넬 지갑, 몽블랑 만년필 등 각종 유명브랜드가 번쩍였다. 물론 이 상품들은 모두 가짜다.
시장 입구에서는 공안(公安·경찰)이 ‘감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상인들은 “공안도 눈앞에 가짜 상품이 있어야 단속할 것 아니냐”며 시치미를 뗐다. 심지어 한 상인은 “경찰이 있어야 시장질서가 잡히고, 안전하게 장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외국에까지 소문난 이 가짜 시장을 찾아 캐나다에서 왔다는 관광객 주디스 힐러(35·여)는 “경찰이 지켜주는 이같이 큰 짝퉁시장은 세계 어디에도 없을 것”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짝퉁시장의 가짜는 차라리 애교다. 상하이 한 교민의 씁쓸한 경험담이다. 정식 담배판매점에서 담배 한 보루를 샀는데 찬찬히 보니 가짜였다. 곧바로 그 판매점에 가서 따지자 판매상은 얼굴색도 안바꾸고 “여기 진짜 있는데, 바꿔줄까?”라고 했다는 것이다.
지폐도 가짜에서 예외는 아니다. 100위안짜리를 받으면 습관적으로 햇빛에 비춰본다. 웬만한 업소에서는 대부분 지폐감별기를 구비하고 있다. 중국 관영TV의 보도에 따르면 올들어 적발된 위조지폐 액수만 4억위안(6백억원)이다. 위폐가 자기 손에 들어오면 신고하기보다 모른 척하고 사용하는 게 일반적이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가짜약이 유통되는 곳도 중국이다. 중국 정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적발된 가짜약은 5억위안어치다. ‘재수 없이’ 적발된 가짜약 제조·유통업체만도 994개다. 각종 증명서도 가짜가 판을 친다. 뒷골목 벽이나 전신주에는 가짜 졸업증명서는 물론 인감증명까지 똑같이 위조해주는 전문가들의 전화번호를 쉽게 볼 수 있다. 7,000위안이면 ‘출세 보증서’라는 베이징대의 졸업장과 성적증명서를 컴퓨터 조회도 통과할 수 있게 위조할 수 있다고 한다. 불량식품은 도를 지나칠 정도다. 지난 5월에는 광저우(廣州)에서 가짜술을 마시고 20여명이 사망했고, 안후이(安徽)성에서는 가짜분유가 유통돼 젖먹이 수십명이 숨졌다.
불법복제는 지적재산권 분쟁의 표적이 되고 있다. 외국 기업들은 중국 정부가 이를 근절시킬 의지가 있는지 의구심을 숨기지 않는다. 특히 비디오·DVD 등의 문화상품은 단속 포기상태다. 충칭 시내의 대형 백화점에서는 한국영화를 포함한 각종 해적판 DVD가 단돈 10위안(1,500원)에 팔린다. 최근에 나온 빌 클린턴 전 미 대통령의 자서전 ‘나의 인생’도 여러가지 해적판 번역본이 이미 중국 서점에 깔렸다.
‘가짜’는 중국 경제의 암초로 떠오르고 있다. 미국의 대형 비디오·DVD·VCD 대여업체 ‘블록버스터’는 불법복제품에 시달리다 올해 초 중국 진출 4년만에 철수하고 말았다. 반도체나 통신 등 외국의 첨단 하이테크 기업들이 중국 투자를 꺼리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일본의 시장조사기관인 CLSA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중국에 투자한 161개 일본 기업 중 22%가 중국의 가짜상품이 중국 투자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상하이 푸단(復旦)대의 한 교수는 중국 불법복제품 문제의 원인으로 “돈벌이에 대한 중국인들의 윤리의식 결여”를 꼽았다. 자본주의에 대한 윤리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개방정책이 시행되면서 돈을 위해서는 무엇이든 해도 된다는 잘못된 자본주의관(觀)이 만연되고, 공직자들의 부정·부패를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다.
상하이 출신으로 시카고대학 연구원을 지낸 허칭롄(何淸漣)은 ‘중국은 지금 몇시인가’란 책에서 “도덕적 타락을 먼저 바로잡지 않으면 중국은 결코 선진국이 될 수 없으며, 결국 사기꾼의 천국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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