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소개해드릴 무사는 사쓰마 시현류의 류조인 도고 시케타다입니다.
도고 시케타다는 시현류의 류조로도 유명합니다만, 시현류 창시 과정에서 나타난 그의 노력과 열정도 대단합니다.
시현류는 일본에서 최강으로 꼽히는 검술중에 하나로, 사쓰마번(오늘날의 가고시마)의 무사들만이 썼던 고류검술입니다.
시현류와 사쓰마는 메이지 유신을 기점으로한 근대화에서 매우 큰 역할을 해냈기때문에 역사적으로도 매우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습니다.
시현류는 현재 가고시마현(옛 사쓰마)의 도고씨 종가에 대대로 전수되고 있습니다.
시케타다는 1561년 사쓰마에서 태어나 1653년까지 살았습니다. 시케타다의 아버지는 사쓰마의 영주인 시마즈 가문의 가신이었습니다.
아버지의 영향으로, 시케타다는 어린시절 태사류라는 검술을 익혀, 그 비전까지 몽땅 전수받아 아버지를 이어 시마즈 가문의 가신으로서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삶을 바꿔놓은 것은 영주 시마즈 요시히사를 따라 교토를 방문했을때 만난 한사람의 스님입니다.
교토에서 시케타다는 텐네이치라는 절의 선승인 젠키치를 만납니다. (젠키치는 스님이지만 천진정자현류라는 검술의 달인이었습니다.)
젠키치는 청소용 빗자루를 들고 자현류의 기본 동작중 몇가지를 보여줍니다.
시케타다는 그 동작만 보고 자현류의 매력에 빠져 가르쳐달라고 조르기 시작합니다.
젠키치는 처음에는 겸손히, 다음은 완곡히, 그 후로는 매몰차게 거절하하며 두사람사이의 두달에걸친 실랑이는 시작됩니다.
60일째 되던날, 시케타다는 문 옆에다가 목검을 숨겨두고 젠키치를 만나러 들어갔습니다. 물론, 젠키치는 매몰차게 거절했습니다.
시케타다는 포기하고 돌아가는 척 하며 나가다가 숨겨둔 목검으로 마중나오는 젠키치에게 달려들었습니다.
물론, 자현류의 달인답게 검기가 섞인 호통을 쳤고, 시케타다는 검기에 눌려 나자빠졌다고 합니다.
60일간의 끈질긴 간청, 그리고, 목검을 들고 달려들정도의 절박한 심정,,, 이런것들이 젠키치를 감동시킨 것일까요?
젠키치는 목검사건 이후, 시케타다에게 입문을 허락했습니다.
당시, 시케타다는 28살, 젠키치는 22살이었습니다. 그러나, 시케타다는 나이에 연연하지 않고 젠키치에게 스승의 예를 다하며 배웠습니다.
한편, 시케타다는 시마즈의 가신이었기때문에, 영주 시마즈가 교토에 있는 6개월동안만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는 매일 도장에서 자현류를 수련했고, 6개월만에 모든 기술을 전수받고 사쓰마로 되돌아갑니다.
시케타다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집 마당에 있는 나무를 상대로 혼자서 수련과 연구를 거듭합니다.
전해지는 바로는, 너무나 수련을 열심히 한 나머지, 마당의 나무들이 모조리 맞아서 말라죽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3년이 지나고 나서, 그는 젠키치로부터 배운 자현류에 자신의 검술인 태사류, 그리고 3년간의 연구와 수련에서 얻은 교훈을 합쳐 자신만의 검술을 창안합니다.
그것이 일본 근대화의 키를 쥐고 시대를 좌지우지했던 사쓰마의 검술, 시현류입니다.
물론, 창안당시 시현류는 신흥 검술이었고, 당시의 사쓰마 공식 검술은 태사류였기 때문에 대립은 필연이었씁니다.
시케타다는 태사류 검객들을 차례로 격파하며 시현류의 우수성을 과시합니다.
사쓰마 18대 당주인 시마즈 이에히사는 지시를 내려 태사류 검술사범과 시케타다를 대련하게 합니다.
시케타다는 이 대련에서 승리고, 그의 이름은 사쓰마 전역에서 유명해집니다.
이후, 시케타다는 시마즈 이에히사의 무술사범으로 임명되고, 시현류는 사쓰마의 공식 검술이 됨과 동시에, 사쓰마 내에서 타류 검술의 수련이 금지됩니다.
시현류의 강력함은 역사 도처에 나타납니다. 무진전쟁 당시, 4천명의 사쓰마 무사단은 2만명의 막부군을 괴멸시킵니다.
신선조의 초대 국장 곤도 이사미는 조원들에게 '시현류의 첫공격은 받아치거나 막을 생각하지 말고, 일단 피하고 봐라.'라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서남전쟁에서도 칼한자루 들고 돌격해 들어가는 시현류 발도대에 총포로 무장한 관군이 전멸하기도 합니다.
메이지 정부가 검술의 중요성을 깨닫고 검술 발도대를 조직해 투입할때까지, 관군은 패전만을 거듭했다고 합니다.
사쓰마 무사가 베었는지 아닌지는 시체를 보면 확연히 알 수 있었다고 합니다.
첫째, 머리부터 배꼽아래까지 두동강이 났을 경우. 둘째, 머리에 검의 쇠테가 박혔을 경우(검을 두동강이 내면서 쇠테가 머리에 박혔다고 합니다.)
이렇게 역사가 증명하는 최강의 시현류이지만, 실제 시현류의 내용을 들춰보면 별거 아니라는 생각도 듭니다.
시현류의 기술은 오직 한가지, 정면베기 하나밖에 없습니다. 그 한가지 기술로 한번에 내리쳐서 상대를 가른다는 것이 시현류의 전부입니다.
(그럼, 여기서 질문이 생기지요. 한번에 내리칠때 피했다가 다음 순간에 공격하면? 답은 상상하시는 대로입니다. 시현류 무사의 죽음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첫 공격을 피하기가 무지하게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두가지 입니다.
첫번째는 검을 휘두르는 속도입니다. 시현류의 수련자는 통나무를 대상으로 내리치기를 하루에 1만번씩 연습합니다.
시현류의 달인이 되면 통나무에서 연기가 난다고 합니다. 그런 내리치기 연습을 통해 초신속 내리치기 기술이 생겨납니다.
시현류를 만나면 상대가 내리치기를 한다는 것도, 그것만 피하면 된다는 것도 알지만, 번개같은 속도로 내리치는 칼을 피할 겨를이 없는 것입니다.
또, 자신의 검으로 막으려 해도, 워낙 속도가 빠르고 힘이 세서 칼마저 두동강이 냅니다. 그러니, 칼이나 방패가 있어봐야 도움이 안되는 것입니다.
두번째는 투지입니다. 시현류는 다른 유파와 달리 인간의 투쟁본능을 중요시 여깁니다.
시현류 무사에게 검은 마음을 다스리거나 활인검의 매개체가 아니라, 투지에 불타는 한마리 짐승으로서의 투쟁본능을 최대한 이끌어내기위한 도구인 것입니다.
기합에 있어서도, 다른 유파가 '얍!', '도!'등의 기합을 쓰는데 비해, 시현류는 '체스토!'라는 절규를 기합으로 사용합니다.
'체스토'라는 말은 사쓰마의 방언으로, 뜻은 분명하지 않지만, 일부에서는 '죽어라!'라는 뜻이라는 설이 있을정도로 격한 투지를 나타내는 말입니다.
시현류의 핵심적인 가르침은 다음 두가지 뿐입니다.
'첫공격을 의심하지 않고 삼천지옥(三千地獄)까지 베라' '온 힘을 다해 상대를 쳐죽여라, 첫 공격에 상대를 베지 못하면 온몸을 집어던져 죽인다.'
시현류의 정신을 잘 나타내는 예화가 있어 소개합니다.(사실, 시케타다에 관해서는 소개할 예화가 이것밖에 없습니다.)
한번은 시케타다가 제자들과 함께 쉬고 있는데 들개 짖어대는 소리에 시끄러워서 쉴 수가 없었습니다.
'에잇! 시끄러! 얘들아! 가서 베어버려라!'
제자 두명이 나갔고, 잠시후 들개 짖는 소리는 멈췄습니다.
제자들이 들어와 자기들이 첫공격에 들개를 일도양단(한칼에 두동강이냄)하면서도 땅에서 약간 위에 세울정도로 칼을 잘 조절할 수 있었다고 스승에게 자랑했습니다.
묵묵히 듣고 있던 시케타다, 갑자기 칼을 뽑아 바둑판을 쳤습니다. 칼은 바둑판을 두동강이 내고 바닥을 가르고 바닥 버팀목의 절반을 베고 박혔습니다.
시케타다는 제자들을 야리보면서, '이것이 우리 유파의 의지다.' 한마디를 했다고 합니다.
온힘으로 내리치면서도 땅위에서 검을 세우는 것은 다른 유파에서는 대단한 기술입니다. 그러나, 시현류에서는 아니었습니다.
시현류의 가르침 대로면, '가르다가 땅이 나오면 땅도 베어버려라.'는 것이 됩니다.
제자들은 그때 삼천지옥까지 벤다는 것의 의미를 뼈져리게 느꼈다고 합니다.
펀곳은 http://cafe.daum.net/historyw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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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밑에 어떤 분이 올리신 시현류 동영상을 봤습니다. 처음엔 저도 많이 웃었습니다. 개그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 두번째 볼때는 뭔가 이상함을 느꼈고, 세번째 볼때는 식은땀이 흐르더군요.
우선 첫째로 보법을 보니 '이거 장난 아니다' 생각되더군요. 맨 처음 봤을 때도 느꼈는데 마치 유령처럼 스르르르 전진하던데, 어깨가 거의 미동이 없고 보폭이 빠르고 일정하던데요.
적을 제압하기 위해 번개같이 검을 휘두르며 몰아붙이다가 적이 방어를 포기하면 한 방에 박살내는 모습이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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