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혹만 무성하던 대한적십자사의 엉터리 혈액 관리 실태가 감
사원의 특별감사로 사실로 드러나면서 국민들을 불안으로 몰아
넣고 있다. 정작 적십자사는 여론의 질타를 계기로 거듭나기는
것을 모색하기는커녕 이번 감사를 가능케 한 내부고발자(공익제
보자)를 집요하게 찾아내 그 중 2인의 징계를 추진하고 있어 파
문이 커지고 있다.
적십자사, "회사 명예 떨어뜨렸다"며 내부고발자 징계 추진
적십자사는 28일 감사원의 발표로 알려진 혈액 관리 실태를
최초로 외부에 알린 A씨와 B씨 2인에 대해서 "언론에 혈액사업
에 대한 과장ㆍ왜곡된 내용을 제보해 회사의 명예를 실추시키
고 근무기강을 문란케 했다"면서 징계위원회에 회부한 상태다.
29일 오전 열린 징계위원회는 2인에 대해서 최종 징계 결정
을 내리지 못 하고 다음 징계위원회로 연기한 것으로 알려졌
다. 29일 프레시안과 통화한 적십자사 관계자는 "징계위원회가
오전에 열렸지만 최종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면서 "이후 일정
등 아무것도 확정된 것이 없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말해줄 수 없
다"고 밝혔다.
29일 징계위원회의 결정은 보건복지부, 감사원, 부패방지위
등 관련기관에서 이들에 대한 징계조치 유보권고를 강하게 요청
하고, 언론을 비롯한 국민 여론의 눈총이 따가운 데 따른 것으
로 알려졌다. 적십자사는 애초 26일 예정된 징계위원회를 부방
위의 항의 방문 등을 계기로 29일로 연기한 바 있다.
적십자사, "쇄신보다는 내부고발자 색출에 주력
적십자사 경영진은 지난 7월 적십자사의 혈액 관리 실태가 최
초로 언론에 보도된 후 혈액 관리 쇄신보다는 내부고발자 색출
에 주력하는 모습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적십자사 경영진은 7월 이후, 약 3개월에 걸쳐 서울 지역 적
십자사 직원들을 대상으로 방송 보도된 목소리를 근거로 "누구
목소리인 것 같으냐"는 질문을 던지며 내부고발자 색출에 나섰
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런 무리한 경영진의 내부고발자 찾기의
부작용으로 12월에는 내부고발자로 의심되는 1인이 경찰에 긴급
체포된 후, 혐의를 밝히지 못해 바로 풀려나는 일도 있었다.
특히 이 과정에서 노조도 적극적으로 가세해 경영진에게 내부
고발자 찾기를 종용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노조는 "총재는 조직
을 음해한 불순세력을 엄중 처벌하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내는
등 내부고발자를 '조직의 배신자'로 모는데 앞장서 내부고발자
의 심적 고통을 가중시킨 것으로 알려져, '제2의 현중노조' 사
태가 아니냐는 눈총을 사고 있기도 하다. 현재 적십자사 본부
노조는 민주노총 보건의료노조 산하 지부로 등록돼 있다.
적십자사 내부고발자 2인 인터뷰
프레시안 : 28일 감사원 감사 결과가 보도되면서 전 국민이
충격을 받았다. 정작 이런 사실을 외부에 알린 2분은 징계가 추
진 중이라고 들었다.
공익제보자 : 언론에 감사원 결과가 크게 보도된 것을 보고
반가웠다. 지난 8개월간의 고통이 보상을 받는 것 같다. 언론
에 섭섭한 마음도 있다. 정작 이런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게 된
내부고발자의 보호 문제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어 보인다. 오전
에 징계위원회가 열린다고 통보받았지만 출석하지 않고 대신
에 '의견서'만 제출했다. 어떤 징계가 내려지더라도 끝까지 싸
울 것이다.
프레시안 : 2분 다 적십자사에서 오래 근무한 것으로 알고 있
다. 어떤 계기로 혈액 관리 실태에 대한 내부고발에 나서게 됐
는가?
공익제보자 : 각각 17년과 14년을 근무했다. 특히 노조에서
10년 정도 일하면서 적십자사의 혈액 관리 실태가 큰 문제점을
갖고 있는 것을 현장에서 직접 보고 듣는 기회가 됐다. 그 후
노조 차원에서 여러 차례 경영진과 복지부에 시정 건의를 했
다. 이런 건의는 번번이 묵살됐고, 이 문제에 한 언론이 관심
을 보이자 고민을 털어놓은 게 시초가 됐다.
"적십자사 경영진 녹음기 들고 다니면서 제보자 색출 작전"
프레시안 : 그 동안 경과에 대해서 알고 싶다.
공익제보자 : 지난 7월 KBS의 <추적60분>에서 허술한 혈액 관
리 실태의 문제점을 짚은 적이 있다. 이 때 제작진과 연결이
돼, 자문을 해준 적이 있다. 얼굴에 모자이크 처리를 하고 음성
변조를 한 후 2~3분 정도 혈액 관리에 허점에 많다는 내용이 방
영됐다. 지금 경영진에서 징계 사유로 들고 나온 것도 바로 이
방송과 관계된 것이다.
그 후 참여연대 투명사회팀에 보호 요청을 했고, 부방위에도
정식 신고를 했다. 점점 위협을 느꼈기 때문이다. 8월 초에 어
떻게 알았는지 회사 내부 감사실에서 호출을 했다. 회사의 명예
를 실추하고, 직원의 근무사기를 떨어뜨리는 방송에 출연한 것
으로 추정되니까 나와서 조사를 받으라는 식이었다. 그 자리에
서 혈액 관리 실태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원칙대로 지적했지만,
방송 출연 사실에 대해서는 부인했다. 그런 '아니면 말고' 식
조사 자체가 어이가 없었다.
그 후 경영진의 모습은 너무나 한심하고 치사했다. 방송에 나
간 변조된 음성을 일부 복원한 후 서울 시내 전 직원을 대상으
로 "누구 목소리 같으냐"고 물으면서 다녔다. 경영진이 앞장서
조직을 분열하는 모습이었다. 한쪽에서는 '이렇게 치졸하게 할
필요가 있나'라는 목소리도 있었고, 다른 쪽에서는 '배신자들
때문에 회사 분위기만 흐려졌다'란 목소리도 들리고.
나중에는 YTN이 8월에 보도한 '수혈로 인한 60대 두 남자의
후천성면역결핍증(AIDS) 감염 사고'의 제보자로 몰아 'AIDS 예
방법' 위반으로 경찰에 고발해 긴급체포됐다 풀려난 일도 있었
다. 혈액 관리 실태의 문제점은 많이 알고 있지만, AIDS 환자
의 정보에 접근할 위치도 아닌데 말이다. 그 일로 방송보도상
을 받은 YTN 기자가 많이 미안해했다.
"동료들, 배신자로 몰 때 제일 고통스러워"
프레시안 : 적십자사 직원들 시선도 곱지만은 않았던 것 같
다.
공익제보자 : 맞다. 동료들이 배신자로 몰 때 그 때가 제일
고통스러웠다. 상당수의 동료들이 마치 우리가 조직을 배신한
사람들로 매도했다. 앞에서 얘기한 것처럼 경영진이 일부 그런
분위기를 부추겼고. 특히 노조가 나서서 그럴 때는 가슴이 무너
지는 것 같았다.
프레시안 : 노조도 경영진과 한 편이었다는 말인가?
공익제보자 : 말할 면목이 없다. 10년 가까이 노조에서 일하
다 2000년에 현직으로 복귀했다. 현 노조가 경영진과 관계가 좋
다는 것은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8월초 감사실에 호
출을 한 당일에 노조에서 "총재는 조직을 음해한 불순세력을 엄
중 처벌하라"는 노조 명의의 성명서가 나왔다. 의장이 직접 총
재를 면담해 "11월말까지 내부고발자를 색출해 징계에 처하
라"고 했다는 얘기도 들렸다. 누구보다도 엉터리 혈액 관리 실
태를 잘 알 만한 사람들이 저렇게 나오니 갑갑했다. 큰 배신감
이 느껴졌다.
프레시안 : 그래도 힘이 되는 동료들도 많았을 것 같다.
공익제보자 : 맞다. 직접 나서지는 못하지만 '장한 일 하고
있다', '잘 지켜보고 있다'고 격려해주는 동료들도 많았다. 그
런 동료들도 없다면 아마 이렇게 오랫동안 버티지 못했을 것이
다.
"알 만한 사람들은 수혈 안 받는다"
프레시안 : 이번에 감사 결과 혈액 관리 실태의 문제점이 많
이 드러났다. 현장에서 보기에 무엇이 가장 큰 문제인가?
공익제보자 : 혈액의 안전성 문제가 가장 클 것이다. 한 가
지 예를 들어보자. 현재 군 부대에서는 훈련소에 입소할 때 한
번, 퇴소할 때 한 번 총 두 번에 걸쳐 헌혈을 하도록 돼 있다.
특히 입소했을 때는 성병에 감염돼 있을 위험이 상당히 높다.
사실 이런 사실을 감안하면 퇴소할 때 한 차례 헌혈을 하는 게
맞는데, 여러 가지 위험을 감수하고 실적 때문에 입소할 때 헌
혈을 대규모로 실시하고 있다. 이것은 단적인 예일 뿐이다. 솔
직히 알 만한 사람들은 수혈 받는 것을 주저할 수밖에 없다.
그런 안전성 문제는 결국 혈액 사업의 목적을 망각하고 기관
의 실적 올리는 데만 급급하고 있는 적십자사의 관행 탓이 크
다. 적십자사는 사실상 지난 수십 년 동안 혈액 사업을 독점해
왔다. 이런 경험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인 혈액 수급 계획도 없
이 사업을 주먹구구식으로 운영한다. 그러다보니 어떨 때는 수
혈 혈액도 부족하고, 어떨 때는 남아돌아서 폐기처분하는 어처
구니없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전국 각 지역 혈액원이 독립채산제로 운영되는 것도 한 요인
이다. 지방에서는 헌혈 전에 문제가 있는지 확인하는 '문진'조
차 제대로 실시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혈액 사업이 수익원의
대부분인데다, 독립채산제로 운영되다보니, 혈액원 입장에서는
마구잡이식 채혈에 대한 유혹을 느끼는 것이다.
"복지부 담당 사무관 1명뿐, 한심하다"
프레시안 : 정부는 그 동안 뭐했나 싶기도 하다.
공익제보자 : 혈액 관리가 이 지경에 이른 데는 관리ㆍ감독
기관인 복지부가 제 역할을 못한 탓도 크다. 현재 복지부의 혈
액 사업 담당 사무관은 1명뿐인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런 인력으
로 관리ㆍ감독은커녕 업무 파악하는 데도 버거울 것이다. 그나
마 전문성이 쌓이면 금세 다른 사람으로 바뀌고 만다. 이런 상
황에서 정부가 혈액 관리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도 우습다.
프레시안 : 이번 감사 결과를 통해 구체적인 문제점이 상당
수 드러났다.
공익제보자 : 솔직히 말해서 감사원 감사 결과에 만족할 수
없다. 그것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엄밀하게 얘기해서 언론
에 보도된 '부적격 혈액'이란 말에는 어폐가 있다. 좀더 정확하
게 얘기하면 적십자사는 국민 건강에 심각한 위해를 가할 수 있
는 '불량 의약품'을 시중에 유통시킨 셈이다. 이 참에 아예 근
본부터 바뀌어야 한다.
프레시안 : 어떤 대안이 있겠나?
공익제보자 : 전문가가 아니라서 현장의 경험을 통해서 얘기
할 수밖에 없다. 아마 이번에도 '자진 헌혈을 유도한다', '등록
헌혈제를 실시한다', '군부대와 학교 중심에서 대기업 등으로
헌혈 자원을 다양화한다', '관계 당국의 관리를 강화한다'는 식
의 구태의연한 대책들이 나올 것이다. (실제로 29일 복지부는
이런 내용의 단기 대책이 담긴 방안을 내놓았다.)
우리가 보기에는 이런 것은 말 그대로 피상적인 대책일 뿐이
다. 혈액의 품질을 공정하고 정확하게 심사해 유통시킬 수 있
는 새로운 시스템이 구축돼야 한다. 땜질하는 식으로는 매번 이
런 일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징계돼도 끝까지 싸울 것"
프레시안 : 이번에 부방위법의 허점도 드러났다.
공익제보자 : 동일 사안에 대해서는 부방위 신고 이전의 언
론 제보 같은 것도 보호해줘야 한다. 솔직히 일반 직장인들이
이런 내부고발 절차에 대해서 어떻게 알겠나? 언론에서 어렵겠
지만 내부고발의 보도 시점을 부방위 신고와 맞춰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기는 하다.
프레시안 : 힘든 싸움을 하고 있다. 어떻게 전망하고 있는가?
공익제보자 : 적십자사가 그렇게 만만한 곳이 아니다. 어떤
식으로든 징계를 할 것이다. 징계가 나오면 지방노동위원회는
물론이고 법적 대응까지 고려할 예정이다. 끝까지 싸우겠다. 무
엇보다도 지지하는 동료들과 국민 여론의 관심이 큰 힘이 될
것 같다.
이재근 간사 : 참여연대도 이후 법적 소송을 비롯한 모든 사
안에 대해서 끝까지 같이할 생각이다.
프레시안 : 장시간 좋은 말씀 감사하다. 끝까지 잘 되기를 바
란다.
관점이 있는 뉴스 프레시안 ( http://www.pressian.com/ )
2004-03-30 오전 11:4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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