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고수를 찾아서>춤추는 萬日劍 바람도 멎었다
[문화일보] 2004년 04월 10일 (토) 12:40
(::이도류(二刀流> 정복수::) 무인들은 누구나 가슴에 검(劍) 한 자루를 품고 산다. 실제 검술 연마 여부는 그다지 중요치 않다. 수련세월이 오랠수록, 또 고수 일수록 주먹 하나 발질 한번에도 섬뜩한 칼맛이 자연스레 배어 들어가기 마련이다. 그래서 모든 무예동작이 부지불식간에 검의 이치를 따르게 된다고까지 하는지도 모른다. 사정이 이럴진대, 검객들이 칼에 대해 갖고 있는 동경과 애정이란 무한할 것임은 미 루어 짐작할 수 있다. 만(萬)가지 병장기중 으뜸이라는 ‘검’.
특이하게도 두 자루 검을 마음에 묻고 살아온 사람이 있다. 일본 의 검성(劍聖)으로 추앙받는 미야모토 무사시(官本武藏·1584~16 45)가 창안한, 짧은 칼과 긴 칼 한자루씩을 동시에 사용한다는 검법 ‘이도류(二刀流)’의 고수다.
서울 염창동의 대한도법검도협회 중앙도장. 정복수(43) 회장을 찾았다. 독특한 사람이되 대단한 사람임에 틀림없다. 무사시 처 럼 이도류 검법을 스스로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게다가 진검(眞 劍)으로 이도류를 한다. 현재 국내에서 진검 이도류를 펼칠 수 있는 사람은 아마 그 말고는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정 회장은 우연 찮은 기회에 칼을 처음 손에 잡는다. 합기도를 오래 수련하던 지 난 91년 지인으로부터 칼 수련을 권유받았다는 것. 칼 한자루를 도검사에서 맞춰 가지고 집에 돌아와서는 며칠 밤을 뜬눈으로 지 새웠다.
“검법이고 뭐고 아무것도 모르는데도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죠.
‘모든 걸 버리고서라도 검도(劍道)만 얻을 수 있다면…’ 하고 바랐더랬지요.” 무예하는 이들은 무술의 실체를 검을 통해 확 인하고는 한다. 칼을 벼리고 애지중지 갈무리하는 과정에서 무술 정체성이 커진다. 칼의 날카로움에 흥분해 보기도 한다. 그도 그랬으리라. 아니, 칼잡이로서의 그의 열정은 더했던 듯 싶다. 정 회장은 곧바로 검도 수련에 들어간다. 배운 게 일천한지라 시행 착오가 많았다. 처음엔 짚단 베기부터 시작했다. 2년 동안 8000 만원 어치의 짚단을 썰었다. 그래도 수(手)는 얕았다. 한번 베는 단타(單打)가 고작이었다. 그러나 무예의 정수는 간단한 동작을 마스터하는 데서 나오는 법이다.
완전한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해낼 수는 없었던 것일까. 그 와중에 대한검도도 배웠다. 나이 60이 넘어서도 대표선수들과 맞 서 밀리지 않았다는 검도 고수 고(故) 정병일 선생의 전인한테 도움을 얻기도 했다. 정 선생은 말년에 당뇨로 한쪽 다리를 절단 하고도 검을 잡았다는 영락없는 타고난 검객이었다. 그는 생전, “검도하는 사람은 진검을 쓸 줄 알아야 한다. 우리도 (일본처럼) 진검법을 체계적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허나, 죽도 와 진검은 함께 해야 검법의 정수를 깨달을 수 있다고도 했다.
맞는 말이다. 죽도 검도는 일종의 격검술(擊劍術)이다. 빠르게 치고 베고, 찌르는 법을 익힌다. 실제 상대와 맞서면서 검의 부 딪치는 감각을 터득하게 된다. 반면 진검 수련도 꼭 필요하다. 죽도 수련만으로는 알 수 없는 부분이 많은 것이다. 실제로 적을 베 어낼 듯한 검의 날카로움을 느끼지 않고서는 검법의 참맛을 알리 없고 그 검법에 정중동(定中動)의 진중함이 묻어날 수도 없다.
모든 무예엔 다 수련하는 단계가 있다. 검법도 마찬가지다. 정 회장은 먼저 쌍수도(雙手刀)를 연마했다. 칼 손잡이는 대개 양손 을 사용해 잡을 만큼 넉넉하게 길다. 오른손잡이가 오른손을 칼 손잡이 위쪽 부분에, 왼손을 그 아래에 놓는 검 파지 방법이 쌍 수법이다. 다음이 환수(換手). 오른손과 왼손을 바꿔잡는 것. 단 , 양손의 감각을 고루 틔우기 위해 일부러 두 손을 떨어뜨려 검을 잡았다. 이 경우 양팔의 목표물을 향한 각도가 다르고 그 움직 임도 따로 놀면서 두 손에 골고루 검을 운용하는 감각이 커진다.
정씨는 편수(片手)중엔 왼손을 먼저 수련했다. 칼날을 세우다가 그만 오른손 엄지를 크게 벤 때문이었다. 그런데 마음처럼 쉽지 가 않았다.
“완력을 키우려다 무리한 탓에 어깨 근육을 크게 상했어요. 큰 칼을 마음대로 부리는데는 힘이 아니라 몸의 감각이 필요하다는 이치를 몰랐던 거죠.” 정씨는 젓가락으로 콩알줍기, 공깃돌 놀 이 등 왼손 감각을 키우는 데 열중했다. 검법에 필요한 몸놀림을 갖기위해 보법도 별도로 만들어냈다. 오른손잡이인 그의 이도류 는 결국 왼손에 대도(大刀)를, 오른손에 소도(小刀)를 쥐는 ‘역 (逆) 이도류’가 됐다. 소도는 상대 공격을 막는 데 주력하고 대 도는 살상 공격용으로 쓰이는 게 보통이다. 오른손에 좀더 세심 한 동작을 필요로하는 ‘역이도류’가 어떤 면에서는 더 과학적 이라는 게 그의 설명. 그는 마침내 이도류 12본(本·품세)을 창 안해 냈다.
이쯤에서 기자 머릿속에서 의문 하나가 솔솔 생겨난다. 만일검( 萬日劍)이란 유명한 말이 있다. 만일이라면 30년 가까운 시간이 다. 꼭 30년은 투자해야 검을 이룰 수 있다. 이도류는 양손을 쓰 는 검법인지라 득검(得劍)이 더 어려운 것은 당연지사다. 그 기 간에 어떻게 일가를 이룰 수 있었을까. 정씨가 검을 수련한 지는 이제 15년째다. 정씨는 일년 12달 중 4달 정도는 밤을 꼬박 지새 웠다고 했다. 소도 찌르기 자세 하나 만들기 위해서도 속옷 바람 에 허리에 칼 차고 거실에서 미친 사람처럼 왔다갔다한 날이 숱 했단다.
자신의 하루는 남들의 며칠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했다. 그러 나 좌절도 많았다. 자신의 무릎을 베거나 팔뚝 관통상을 당하기 도 했다. 또 자세 하나를 만들었다고 기뻐할라치면 일본 이도류 에 이미 깔끔하게 다듬어진 수련법이 있곤 했다는 것이다. 그래 서 정씨는 일본 검법 들춰보기를 멈췄다. 혼자 몰두한 검 수련 세월 이었다. 그러나 옆자리 이종서(38) 총관장은 ‘일본을 수십차례 다녀왔지만 (정) 회장님만큼 진검 이도류를 구사하는 고수를 만 나보질 못했다’고 말을 보탠다. 유술(柔術) 고수로 알려진 이 관장은 정 회장 밑에서 검술을 배우며 유술의 진의를 터득했다고 말했다.
정씨가 애도(愛刀) 두 자루를 꺼내들었다. 수련용 검인지 설핏 짚단 베어낸 흔적이 묻어있다. 하나는 57㎝로 짧고, 다른 하나는 69cm 짜리로 길다. 검의 무게는 정확히 각각 600, 850g이다. 요 즘 짚단을 베어내는 묘기 보이기에만 치중해 얄팍한 검을 많이 만들고 있다. 칼날이 엄청 얇고, 칼등(刀脊·도척)까지가 점차로 굵어지는 모양인 ‘삼각도(三角刀)’들이다. 상대 검과 부딪쳐 쉬 부러지는 가벼운 검이다. 물론 이는 잘못이다. 명검도 허술히 만들어진 칼과 맞부딪쳐도 이가 빠지게 돼있다. 하물며 물체와 관통하는 표면적이 적어 ‘싹뚝’ 잘라내기에 좋다고 검을 얇게 만 만든다면 어찌 그 칼로 적을 맞을 수 있으랴. 그래서 정 회장 은 칼 무게도 정했고, 물체를 베는 데는 오히려 저항력이 커지지 만 검신이 튼실토록 도척을 뭉뚝하게 제작했다.
발도(發刀·칼 빼기). 이도류 12본. 숨이 막힌다. 두 자루의 칼 이 스스륵하고 칼집을 벗어난다. 각기 칼날이 하늘로 향해 정씨 왼 허리에 차였던 대도와 소도다. 발도는 모두 오른손으로 한다.
먼저 대도를 뽑아 왼손에 넘겨주고서는 작은 칼을 빼는 게 순서 다. 칼을 뽑아내는 각도는 제각각이다. 상대 움직임에 따라, 필 요에 의해 칼을 모두 다르게 쳐내는 것이다. 칼 두개가 연이어 돌 아가는 데 어지럽다. 검망(劍網). 어떤 병장기도 뚫고 들어갈 틈 이 없어 보인다. 허공을 가르는 검에서 ‘쐐액’하는 파공음이 터진다. 엄청난 속도다. 대도를 내려치고 돌아서며 소도를 쾌속 하게 뽑아내 위로 올려친다. 대단하다. 카메라 셔터 소리만 들릴 뿐 좌중은 물을 끼얹은 듯 숨을 죽인다. 위험천만. 오른손 왼손 을 번갈아 쳐내는데 한치의 오차라도 있다면 제 손목을 자기 칼 로 끊어내는 꼴이 될 판이다. 일도양단하려는 검의 냄새가 짙다.
사진촬영을 위해 수 미터앞 사람도 분간하기 힘든 정도로 실내 를 어둡게 했는데도 정씨는 하등의 어려움 없이 검을 베고 휘두 른다. 몸에 익은, 숙련된 검이 아니고서는 감히 흉내내기도 힘든, 그런 검법이다. 요즘 매일 부황을 뜬다는 상한 어깨로 2시간 가 까이 검을 흐트러짐없이 휘둘러대는 정 회장의 집중력과 인내심 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알듯모를듯 하던 검법이 교전(交戰) 시연을 통해 명쾌해진다. 본 6번. 상대 칼이 머리치기를 들어오면 두 칼을 세워 막고, 상대 가 검으로 반원을 그리며 틀어 재차 공격해오면 소도로 공격을 차단한 뒤 상대 손목 또는 머리를 잘라낸다. 빠른 검이 훌륭한 검이요, 검선이 깨끗한 검이 명검이다. 검선은 검을 쳐내는 방향 과 각도, 타이밍이 절묘해야 아름답다. 검이 뽑히며 그리는 각은 예리할수록 상대 급소를 치기에 유용하다고 한다. 손목 관절은 빗겨서, 흉부는 비틀어 찔러야 치명타를 줄 수 있다는 식이다.
칼 두개를 ‘X’자 모양으로 만들어 공격을 막거나, 작은 칼 끝( 刀尖·도첨)이 땅을 향하도록 거꾸로 잡은 역검(逆劍)으로 상대 중단을 베거나 찌르기도 한다. 양쪽 검을 동시에 여러바퀴 휘둘러 혈진(血振·피 털기)을 하곤 했다. 역시 군더더기가 없다. 치밀 한 검이다. 대신 자세는 꼿꼿하고 편안하다. 검력이 묻어난다.
희대의 검객 무사시는 평생 60여 차례나 진검승부를 겨뤄 단 한 번도 패한 적이 없다. 이는 무사시가 타고난 검귀였기 때문이 아 니라 항상 적을 연구하고 맞선 꼼꼼함에서 나온 결과가 아니겠냐 고 정 회장은 말한다. 그 역시 검술연구에 관한 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위인이다. 무사시는 제자가 없었던 걸로 알려져있다.
정 회장은 이제 진검 이도류 보급에 본격적으로 나설 참이란다. 가 위 대단한 검법이라 평가받을 것임이 분명하다.
이도류라... 바람의 검심에서도 이도류를 쓰는 주인공이 나오죠.. ㅎㅎ 꽤나 재미있게 봤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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