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후 처음으로 와이프랑 등산 갔습니다.
그리고 살살 꼬드겼습니다.
"나 집회 갈란다. 넌 쇼핑이나 해라."
음... 정치적 견해가 저랑 좀 다릅니다. ㅡㅡ;;;
"가지 마! 잡혀가면 어쩌노?"
갑자기 와이프 안색이 새파래집니다.
우리 땐 데모하면 잡혀갔거든요...ㅡㅡ;;;
"그래도 간다. 알잖아? 난 한다면 한다는 거."
"... 그럼. 앞에 나서지 말고 조심해. 이따 전화 한다."
"응."
걱정어린 눈빛의 와이프를 떠나보내고 심호흡했습니다.
그래!
최류탄 날라올거고 백골단이 잡으러 오겠지?
아아! 운동한 지 너무 오래되서 잘 도망칠 수 있으려나?
굳은 각오! 결의에 찬 눈빛으로 집회장소로 한걸음 한걸음 갔습니다.
에게?
이게 뭐야?
기가 막혔습니다.
여중생 추모 촛불 집회와 똑 같더군요.
애기 손 잡고 온 아저씨, 아줌마들. 여중생들. 멀끔한 청년들.
손에 손에 촛불 달랑 들고...
그 어디에도 보도블록도 없고, 각목도 없고, 전경도 없고, 백골단도 없고...
시대가 변했더군요.
헛웃음이 났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좋았습니다.
이젠 피 흘리지 않아도 충분히 의사표시가 가능하니까요.
이젠 잡혀갈 각오까지 하면서 구호를 외치지 않아도 되니까요.
그렇게 시대가 변했습니다.
그 시대 변화의 주역은 당시의 30, 40대 였습니다.
그들의 합류가 결정적이었지요.
그 때의 선구자는 대학생들이었구요.
대학생들이 먼저 나섰었고, 30, 40대가 마지막 대세를 갈랐습니다.
그러자 군부 정권이 무릎을 꿇었지요.
오늘 역시 30, 40대가 대부분이더군요.
아마 내일은 군부 정권 시절의 마지막 남은 찌꺼기들도 무릎을 꿇겠지요.
열띤 투쟁, 격렬한 구호가 없어 좀 아쉬웠지만,
행동하는 멋진 국민들이 있어 마음 놓인 하루였습니다.
달라진 집회 문화.
그 날 그 외침의 조그만 보상이겠지요? ^^;;;
그래서 몇 명 모였냐구요?
제 가슴을 가득 채울 만큼 모였습니다.
저는 희망을 품고 웃으며 돌아왔습니다.
물론, 와이프와 여고생 조카에게 줄 화이트 데이 사탕을 사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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