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박성화 감독이 잘 참아 주어서 고맙습니다 오히려.
엉터리 경기다, 실망했다는 사람도 있지만 전 그렇게 생각 안함다.
저는 두 번째 패널티킥 이후에 너무 열받아서 감독이 저번 안종복 여자축구 감독때처럼 항의표시로 게임을 중단하거나 몰수패를 택하지는 않을까하는 걱정까지 했었습니다. 하지만 잘 참아 준겁니다. 잘 참아 주었고, 우리에게 일본전과 그 이후를 볼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어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
박감독 인터뷰 내용중에도 있더군요. 전반에 패널티로 두 골 준 이후에 진짜 명예를 걸고 나갈 수도 있었지만 향후의 더 큰 목적을 위해서 전략적 대처를 할 수 밖에 없었다고요.
사실 감독도 사람인데 그렇게 판정이 나오면 욱하는 심정에 강하게 항의하거나 저돌적으로 나갈 수도 있었겠죠 물론. 하지만 일국 대표팀의 지휘자의 신분으로써 그건 감정에 치우는 겁니다.
선수들도 그렇습니다. 자기 평생에 한번밖에 없는 청소년대회인데 걍 일부 사람들 말처럼 "젠장, 깨지더라도 박터지게 밀어붙여!"로 나가서 정말 화끈하게 떨어지고 짐싸는 결말을 맞이하면..
평생에 한번인데 저 어린 선수들 가슴에 그게 한이 안 될까요? 독일전에서 부상당했던 박주성이라는 선수의 미국전 직전의 인터뷰가 기억에 남는군요.
16강전에서 반드시 뛰겠다라고. 감독님과 동료들을 믿는다. 반드시 16강에 가서 뛰고 싶다라는 인터뷰..
뭐 그 이전에 대회시작전에 했던 최성국 선수의 말도 기억에 남는군요. 쇄골에 심각한 부상을 입고 언론에서 전부 청소년대회 본선에서 최성국이 못나온다고 했지만 최성국 선수가 "부상이 이정도에서 그친건 본선에 나가서 뛰라는 하늘의 뜻으로 생각한다. 반드시 나간다."라는 식으로 말했던것 같은데..
그만큼 이들에게 이 대회는 평생에 한번밖에 없는 기회입니다. 티비로 보는 우리 입장에서는 그냥 일회성 유희에 지나지 않지만 거기서 뛰는 선수와 감독의 입장은 그런게 아니죠.
더군다나 이번 미국전은 심판까지 상대로 12명과 싸우는 극히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전반전을 그렇게 심판에게 패한 한국이 할 수 있었던 선택은
"명예걸고 저돌적으로 덤벼보고 짐싸기" or "굴욕을 참고 16강 입성이라는 더 큰 목표를 바라보기"
이 두가지가 제일 가능성이 있었죠.
선수들이나 감독들도 더 많은 경기를 고대하는 판에 괜히 다른 분들 말마따나 정조국 최성국 다 투입하면서 체력손실이고 뭐고 향후 데미지를 전부 무시하고 죽을둥 살둥 승부 걸 필요 없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역전하기도 굉장히 힘들었고, 역전을 못할바에야 1골 넣어본들 어차피 지는건 마찬가지고, 그대로 저상태로 끝나도 지지만 어차피 올라가는 결과인데 말이죠.
또 그렇게 저돌적으로 나가서 더 크게 깨졌으면 팬들이 환호했을까요? (단언하건데 이제껏 수많은 축구게시판을 돌아다녀봤지만 그런 결과를 맞았을때 칭찬보다는 비난이 훨씬 많았을 겁니다.)
거듭 말하지만 박성화 감독이 참고 남은 경기를 생각한건 잘한 판단입니다. 왜 미국전 한판이 최종라운드가 아닌데 필사의 각오로 끝장을 봐야하죠?
그리고, 선수들에게 벌써부터 비열한 행위를 가르치네 마네합니다만, 사실 이런 일은 고교축구에서도 늘상 비일비재한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기억하시는 분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99년도에도 포르투갈과 우루과이도 공돌리기를 했었죠 우리처럼. 그 결과 우리나라가 떨어졌고.
스포츠를 두고 각본없는 드라마네 뭐네 합니다만, 직접 지도하고 경기뛰는 감독과 선수들의 입장에서는 현실적인 측면을 고려해서 실리를 택하는 상황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게다가 이번에 우리나라가 속했던 F조는 사실상 대회이전부터 강팀들만 모인 죽음 조라고 불렸었습니다.
독일부터 해서 파라과이 미국까지 이 세팀은 사실 전부가 대단한 강팀들이었습니다. 한국은 이들 중 어느팀과 비교를 해도 기량면에서 전부 쳐집니다. 사실상 최약체였죠.
그렇지만 우리는 첫 경기에서 독일을 꺾었고, 결국 모양세가 그리 좋지는 못하지만 죽음의 조에서 살아남아서 조별리그를 넘겼습니다.
저는 그것만으로도 대단하다 생각합니다. 또 한편으로 월드컵 이후에 우리나라사람들의 기대치가 너무 높아져버린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씁쓸하군요. 마치 한국이 대단한 강팀이라는 듯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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