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2학년.
1학년 때의 방탕함과 방만함으로 인해 성적은 바닥을 기었고, 내 주위의 그 어떤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던 나는 그 1년을 노는데 다 허비하고 말았었다.
그리고 처음 맞이한 2학년.
도무지 뭐가 뭔지도 모르겠고, 중학교 3학년 때 배우는 sin30 가 1/2 이란 것도 모른 채, 그렇게 맞이한 2학년.
이대로는 죽도 밥도 안 되겠다 싶어 3월 달부터 악착같이 공부에 매달렸었다.
처음에는 다들 ‘저게 얼마나 가려고...’라는 회의적인 시선을 보냈었다. 그러나 나는 한 번 해보고 싶었다. 내 자신의 가능성에 한 번 도전해 보고 싶었다. 해도 해도 안 되면 어쩔 수 없는 거지만, 해보지도 않고 포기하기에는, 뭔가 아쉬운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좋아하던 밴드부도 그만 둔 채, 2개월 반을 맹렬히 공부한 결과...
자연계 전교 300명 중에서 6등... 반에서 2등... 1학년 때 전교 500명 중 150등과는 천양지차의 차이가 나 버렸다.
나 자신도 자신이지만, 주위의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부모님께서는 연신 내 어깨를 부여잡으시며 ‘넌 할줄 알았어.’ 하셨고, 담임은 물론이오, 기타 과목 선생님들마저 깜짝 놀라셨다.
그리고 그 여세를 몰아 기말고사에서는 전교4등, 반에서 1등을 했다.
담임선생님은 내가 우등생으로 2학년 1학기 장학금을 탈 것이라고 귀뜸해 주셨다.
나는 이런 내 자신에게 한 가지 상을 주고 싶었다.
그것은, 바로 해외여행이었다.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비행기를 타보지 못했던 나. 주위에서 어렸을 때부터 해외여행을 예사로 하는 친구들이 있었던 터라, 나는 그 친구들이 굉장히 부러웠었다.
그리고 또 하나. 부모님도 가족도 없는 외딴 곳에서 나 혼자만의 자유로움을 만끽하고 싶었다. 내 나라 밖의 다른 미지의 곳. 다른 사람들이 다르게 살아가는 방식. 그 나라의 전통, 문물, 음식, 문화 그 모든 것...
나는 향유하고 싶었다.
친한 친구 한 녀석이 있었다. 성이 김 씨라, 이니셜로 K라고 하겠다.
K는 내 고등학교 3년 동안의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재산이라고 자부할 만큼 나와는 절친한 사이였다.
두말 할 것 없이 그 녀석에게 여행의 계획을 말했고, 그 녀석도 동의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어디로 갈 것이냐 였다.
아버지께서는 첫 여행에서 비행기를 너무 오래 타는 것은 좋지 않다고 하셨고, 그 점에는 나도 동의를 했다. 비행기로 10시간 이상 걸리는 곳을 제외하고 나니, 갈만한 곳은 얼마 되지 않았다.
일본, 중국, 홍콩, 대만, 러시아, 태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네팔, 몽골 등등...
일본은 갔다 온 다른 사람들의 말을 빌리자면, 우리나라와 굉장히 흡사해 외국 여행온 기분 자체가 들지 않는다고 해서, 패스~
중국은 요즘 들어 안정되었다고는 하나 그래도 공산주의 국가이고, 도심에서 한발자국만 나가면 불안한 민생 때문에 초심 여행자에겐 안 좋다고 해서, 패스~ (사실, 정말 만리장성을 보고 싶었다... -_-;;)
대만은 너무 지저분(?)하다는 선입견 때문에, 패스~
러시아는 너무 춥다(?)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패스~
태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의 동남아 국가는 물가는 싸지만 왠지 낙후(?)된 이미지 때문에, 패스~
결국 내 명단에 남은 곳은 HONG-KONG 이었다.
그러고 보니, 언젠가 케이블 TV 중간에 나온 ‘홍콩관광진흥청’에서 만든 ‘홍콩으로 오세요!~’ 라는 CM이 머리 속에 떠오르면서 왠지 더 가고 싶다는 욕구가 불을 뿜었다. 더군다나 도시 국가라 땅 면적이 작아 일주일 정도의 시간이라면 어지간한 곳은 다 볼 수 있겠다는 내 얄팍한 생각도 홍콩에 가야겠다는 결정에 큰 몫을 했다.
홍콩.
그 곳은 낭만의 도시.
쇼핑의 도시.
환락의 도시.
상상만으로도 나는 이미 홍콩에 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여름 방학동안 5박 6일 코스로 여행을 잡으려 했다.
주위에서는 자꾸 패키지여행을 권했다. 가이드가 따라붙는 그런 것 말이다.
하지만 나는 이상한 관광버스에 사육되는 동물처럼 우르르 몰려다니는 그런 아둔한 짓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더군다나 홍콩은 쇼핑의 도시가 아닌가! 그런 가이드 여행에 따라갔다가는 백화점만 돌아다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나는 일찌감치 나 혼자 하는 여행으로 방향을 틀었다.
내가 처음부터 계획을 세우고, 비행기를 예약하고, 호텔을 잡고... 내 마음이 내키는 대로, 내 재량껏 하고 싶었다.
부모님께서는 당연히 허락해주셨다. K와 계획을 짜면서 나는 첫 해외여행이라는 데에 가장 큰 의미를 부여했다.
흔히들 여행하면 배낭여행 식으로 잠은 홈 스테이나, 유스호스텔에서 자기를 권하는데, 나는 첫 여행이니만큼 모든 것을 좀 더 좋은 곳에서 하길 바랬다.
먹는 것도, 자는 것도 오고 가는 것도...
경제적인 부담은 조금 되겠지만, 나는 부모님을 설득했고, 이내 부모님께서는 내가 앞으로 고3때까지 장학금을 타겠다는, 일종의 다짐을 받으신 다음에야 겨우 허락해 주셨다.
그렇게 대략적인 방침을 정해 놓고, K와 함께 인터넷을 종횡하던 중, 나는 아주 흥미로운 것을 발견했다.
바로 케세이 퍼시픽 항공사에서 제안하는 ‘홍콩 패키지여행 상품’ 이었다.
이 여행 상품은 여타의 패키지와는 다르게 가이드나 단체 여행이 아닌, 철저한 개인 위주의 여행 상품이었다. 단지 항공사에서 비행기 티켓과 원하는 호텔을 예약해주는, 내 구미에 딱 맞는 여행 상품이었다.
나는 너무 흥분했다.
어쩜 이렇게 내 맘을 꿰뚫는 듯한 여행 상품이 있었을까...
나와 K는 두말할 나위 없이 케세이 퍼시픽에 전화를 걸어 여행을 예약하려 했으나, 그 전에 먼저 묶을 호텔을 정해야 했다.
나와 K는 그래도 상위권의 호텔에 머무르자는 암묵의 동의를 서로 보냈으나, 별 5개의 어마어마한 호텔들은 도무지 가격 때문에 포기해야만 했다.
대표적으로 엘리자베스 여왕과 데이비드 베컴 등이 묶었다는 ‘페닌슐라 호텔’ 같은 경우에는 하룻밤 숙박료가 장난이 아니었다. 그래서 우리는 페닌슐라 호텔에는 못 잘망정, 그 옆에 있는 호텔에서 자자... 라는 심정으로 페닌슐라 호텔의 옆에 위치해 있는 ‘로얄 퍼시픽 호텔’에서 머물기로 했다.
방 하나에 침대가 싱글로 두 개가 있는 중간 규모의 방을 하나 잡았다.
여행 상품에 포함돼 있던 터라 ‘5박 6일 숙박 + 아침 식사’ 와 ‘왕복 비행기 티켓’의 값이 약 80만원 정도가 들어갔다.
그리고 여름방학이 시작됐다.
여름방학이 시작 된지 4일 째, 우리는 기쁜 마음으로 인천공항을 향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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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첫 편은 여행을 떠나기까지의 과정을 썼습니다.
한 번에 너무 길면 읽다가 포기하시는 분이 꽤 계시더라고요.
다음 편에서부터는 본격적인 홍콩 여행기가 쓰여 집니다.
꽤 좌충우돌, 어안벙벙, 옴메뭐여~ 와 같은 일들이 벌어지니, 관심 있게 지켜봐 주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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