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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정담

우리 모두 웃어봐요! 우리들의 이야기로.



작성자
Personacon 검우(劒友)
작성
03.01.20 07:06
조회
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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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서효원(徐孝源)

■ 연보

1959년 출생.

1980년 위암 수술. 무협작가로 대뷔, 월평균 1만여 매씩 원고를 집필.

1988년 「바우시낭송단」에 가담, 1991년까지 단장을 맡아봄.

1989년 4월 병세가 악화.

1989년 12월 합병증 증세가 나타남.

1990년 12월 폐결핵 3기 진단.

1992년 12월 14일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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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세한 연보

          

          1959년 11월 29일 강원도 원통 출생.

          1966년 3월 금성국민학교 입학.

          1968년 4월 간염발병으로 타계할때까지 병망에 시달림.

          1972년 3월 서울대학교 사대부속중학교 입학.

          1975년 3월 동북고등학교 입학.

          1978년 3월 성균관대학교 산업심리학과 입학.

          1980년 3월 위암 수술을 받다.

                    위와 비장, 췌장을 절개하고, 집도의에게 6개월 아니

                    면 10년, 시한부 삶을 선고 받다.

          1980년 9월 무협소설 작가로 데뷔. 이때부터 월 평균 1만여 매씩

                    원고를 집필.

          1982년 2월 성균관대학교 산업심리학과 졸업.

          1987년 무협소설 100종을 돌파하다.

                이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하다.

          1988년 5월 시운동단체 「바우시낭송단」 에 가담하여 1991년까  

                    지 단장을 맡아보다.

          1989년 4월 잠잠하던 병세가 악화되기 시작하다.

          1989년 12월 위암수술후 각종 합병증 증세가 나타나다.

          1990년 6월 만화 전문 프로덕션 「서울창작패밀리」를 동료작가  

                  사마달, 야설록, 설화담, 유광남 등과 함께 설립하다.

          1990년 12월 합병증으로 인해 폐결핵 3기로 진단받다.

          1991년 11월 병원에서 가망없다는 통보를 받고 귀가하다.

                  그러나 기적적으로 6개월여 집필과 외출이 가능하다.

          1992년 5월 육체의 쇠잔으로 다시 병상에 눕다.

          1992년 12월 14일 새벽 1시 30분 운명하다.

          

고 서효원님의 무협은 통쾌한 맛이있고 그속에는 서효원님 특유의 어둡고 무거운 비감이 깔려있다..

몇몇분은 전형적인 병폐를 답습하고 있다고는 하나 서효원님의 작품만큼 대명 차명이 없는 작가는 드물며, 골고루 수준이상의 작품성과 수준을 엿볼수 있다.

무엇보다도 그분의 글은 힘이 있다. 그의 작품은 한번 책을 잡으면 중간에는 절대로 덮을수 없을 정도의 흡입력을 가지고 있다.

93년 이전 서효원이라는 작가를 아는 이는 그렇게 많지 않았다.

하지만 그를 아는 사람이라면 절대로 잊지못할 사람이  서효원님이다.  그의 작품은 그의 사후에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서효원님에 대해서 잘 아시는 분이라면 결코 그의 작품이 재미가 없다고 하지는 못할 것이다. 사마달이 천부적인 이야기 꾼이아면 서효원님은 하나의 모티브로 수십가지의 감동을 주게하는 천재 바로 그자체가 아닐까?

대학시절 위암의 사형언고를 받고 시한부인생을 산 한  젊은이가 만 33세의 나이로 세상을 뜨기전까지 1천여권의 책을 써내며  기네스북을 능가하는 기록을 남긴다.

시련에 굴하지 않고 불꽃처럼 살다간 서효원씨의 치열한  일생은 살아남은 다의 슬픔을 준다.. 우리시대의 슬프고 아름다운  어느 젊은날의 초상....

.

그에게 따라붙은 암세포만큼이나 많은 소설이 그의 손에서  찍혀졌다.

그림자처럼 드리워져 잇던 죽음 이라는 단어는그의 일생을바꿔 놓았다. 자신이 감당못할 시한부 인생이지만 끝까지 굴하지 않고 신과의 투쟁을 벌였다.

그래서 그런가? 그의 작품속에서의 주인공은 절대로  죽지  않은다. 아니 아무도 죽일수 없다, 신 마져도 죽일 수 없다......

서효원님의 투쟁은 처절하게 이어진다.

78년 성균관대 산업심리학과에 입학한 서효원님은 평범하게 공무원행정고시를 준비하는 학도 였다... 그러나.....

시한부인생 12년.... 그동안 월 평균 1만여매의 원고지... 1천여권의 무협 백 수십질이 완성된다. 그가 쓰다가 버린 타자기와 워드프로새서 만도 20여개가 넘는다.

기네스북의 최고 기록은 600권정도.. 무협소설이라는 특수한  분야임을 감안하더라도 서효원님은 훨씬 짧은 기간동안 훨씬  많은 글을 썼다. 그것도 병마와 싸워가면서 죽음의 공포에 싸워가면서 말이다.  서울창작이라는 출판사...

바로 서효원님의 실명대협이나 대자객교, 금강의 금검경혼  등의 작품을 출판한 서울 창작서의 제작부장이 바로 서효원씨의  형인 서희원 씨이다.

서희원시가 동생의 유고집을 정리하면서 동생의 소설은 양과  질에 있어서도 고루 뛰어난 수준이 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 유고집의 이름은 "나는 죽어서도 새가 되지 못한다" 이다..

물론 베스트 셀러도숱하게 많았다

대중원, 실명마제, 유명한 대자객교..... 그리고 그뒤에  따라오는 엄청난 경제적 풍요... 그의 수입은 88년 당시 월평균  500만원 이상이 었다. 하지만 서효원님이 타계할 당시 통장의  잔고는 바닥이 나있었다고 한다.

어려운 문학단체를 후원하고 또 자신이 직접 시낭송 단체인 바우방을 후원,운영 하기도 했다. 결국 그는 빈손으로 떠난 것이다

언제나 죽음의 곁을 맴돌던 효원!! 이제 그의 생은 이렇게나마 사람들에게서 얘기되고 있다.

http://www.newmurim.com/newmurim/main1-1/main401-28.htm

클릭하시면 서효원님의 추모글을 볼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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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가 남긴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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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곡

아무도 울지 않는다.

울지 않는다.

이젠 나라도 울어야겠다.

■ 나는 죽어서도 새가 되지 못한다

나는 죽어서도 새가 되지 못하리라.

그 화려한 상승은 너무나도 사치스러운 것!

스스로 못박히기 위해 십자가를 만드는 목수가 되었던

나사렛 어느 슬픈 청년이 흘린 핏방울에는

날 위한 한 방울 기도가 있었을까.

나는 죽어도 새가 되지 못한다.

새가 되지 못하는 죽음은 죽음이 아니다.

이미 죽었거늘 또 죽을 수 있으랴.

다섯 자루 권총이 필요하다.

온통 뼉다귀뿐인 두개골을 부셔버릴

다섯 발 탄환이 모아지면

피는 흐르다 멎을 것이다.

뇌세포는 말라 부스러진 지 오래니까.

■ 미아

나에게 어제가 있었을까

난 왜 어제의 기억이 없을까

어리석다

바보같이 있지도 않은 시간이란 걸 생각하다니

난 이미 죽었고,

이미 태어났다.

  

■ 슬픈 혼

  

낮은 먹구름

달려오는 전신주

몸을 비틀어 달아나는

야트마한 기적소리

흔들리는 산과 들

뛰엄 뛰엄

덜컹거리는 창틀

얼어붙은 겨울

싸늘한 바람

뚝뚝 떨어지는 별과 달

목을 졸라 바스라질 듯

떨고 있는

껍데기와 영혼

어디로 가나......

훠얼 훠얼......

수의는 벗었으면 좋겠는데......

■ 벽 안에선

사람들은 영원히 갇혀있는 것일까

결국 벽 안에선 아무것도 볼 수 없는 것일까

사방음 깜깜하고

홀로가 전부인 사각의 벽 안에선

정말 아무것도 들을 수 없는 것일까

정말 영원히 갇혀있을 수는 있는 것일까.

■ 공화국의 봄

호우로 소개되어진 군중,

도심은 적막하고 우울했다.

읽혀진 신문지처럼

의식은 구겨져 휴지통에 처박히고......

나를 슬프게 하는 질서,

모퉁이를 돌아 끝없이 이어진 것같은 고궁의 돌담길에

구령 맞춰 걸어가는 워커소리,

워커발에 짓밟힌

조그만 용기라는 걸 꺼내려다가

깊이 묻고 말았다......

휘황한 쇼윈도우에 오색 등불로 알록진 인공폭포,

그 사이로 멀리 비껴가는

군중들의 말없는 구둣발 소리,

지하도로 깊숙히 빨려 들어가는 우울......

우리의 가슴을 뒤흔드는 건

한 방의 총성도 함성도 아닌

무거운 침묵이다.

깜감한 어둠이다.

■ 밤이 무섭다

잠들어 있는 자는 밤을 무서워 하지 않는다.

밤의 무서움은 깨어있는 자들에 대한 처벌이다.

잠들고 싶다

무슨 죄를 지었기에 잠들지 못하는 것인가

밤이 무섭다

밤이 무섭다

■ 비누방울

삶이 목을 조인다.

죽음이 목을 조인다

어릴 때 불던 비누방울

구름에 닿을 듯 두둥실 뜨다가는 슬레이트 지붕도

못가서 터져 버리고......

노오란 나비 한 마리 날아 오른다

육체를 이탈하는 영혼처럼

■ 약을 먹으며

메슥거리다

수돗물에도 시린 이빨

가진 것이라고는 부어버린 간밖에 없는

구토할 것도 없는 만성공복

무엇이든 삭혀버리는 위장들

그 위대한 위장들에게 소외된 나의 위장은

공손히 쪼그라들고

유문협착

부패한 육체와 영혼의 반란

몇 알의 진통제로는 거두지 못할

극심한 편두통

먹고 죽을 건

자존심밖에 없는가

  

■밤 꽃

잊어서는 아니 된다.

늘 오늘뿐이던 시절도 있었다.

더 열심히 살아야 할 권리와 의무

망각해서는 안된다.

밤에도 꽃은 피어 있다.

밤에도 꽃은 피어 있다.

밤에도 꽃은 차갑게 울고 있다.

■ 분리

나는 찢기었네

안타깝지는 않았어

어느날 나의 분신이 돌아다니고 있는 것을 보고

집으로 가는 길이

아주 떠나는 길 같았지

아름다운 영혼, 순결한 육체

내 몸을 빻아서라도 그와 같이 있고 싶었네

난 내가 아닌 반쪽이 되고 말았지

돌아보지 않니?

불러보지도 않니?

서글픈 나의 몸은 잡을 수 없는 그를 불렀네

찢기는 아픔이 다하면 평화가 오겠지만

그때는 그가 있을 자리는 없겠지

남겨두자

마디마디 아픈 이 상처를 그냥 두자

내 몸 아닌 내 몸이 언제고 돌아오지 않겠나

■ 새

새를 사러 갔다.

새를 사지 못하고 구경만 하고 왔다.

내게는 새장이 없다.

새를 소유하는 것은 새장을 소유하는 것이다.

새장을 소유하지 못하면 새를 소유하지 못한다.

■ 두 평의 평화

두 평의 평화

연탄구멍만큼만 열려진 자유

만원버스의 육질

해부대 위의 개구리마냥 압핀에 박힌

돌아설 수도 없는 막다른 자유

딸각바리의 오기마저 빼앗긴 엽전

메스......!

전신마취......

바륨같은 막소주 한 모금

채플린처럼 나사못 돌리는......

숨쉬는 면허

안 가진게 아니라 가지지 못한

숨쉬기 위한 면허

해부되어 버려진 개구리마냥

타인을 위해 다를 벌렸던......

오직 나아가야만 하는 직선의 도시

일렬종대로 선

포르말린 같은

오직 불편만은 아닌 가난

몽유하듯 아웃사이더로 빠진 달

망각되어 버린 추억

길들여진 육체, 추억

아, 두 평의 평화

  

■ 죽음을 만나러

  

권태를 사랑해야지

권태라도 사랑해야지

비 걔인 서울 거리

대리만족으로 주사를 맞으며

문듯, 바다로 가고 싶은 날

소주 두어 되로 취해 잠들고 싶은 날

어제가 아닌 오늘

권태가 아닌 죽음을 만나러

철학은 죽음의 연습

종교는 죽음의 극복

상업은 죽음의 망각

예술은 죽음의 거부

나는 속죄양으로 바쳐져야만 하는가.

  

■ 잔인한 오월

  

나의 뼈와 피를 선택하는 자는

누구인가

그리도 부정하는 신인가

확률의 장난일 뿐인가

야구장에 가야 한다

숨쉬는 초록의 그라운드와

땀 흘리며 달리는 흰 옷의 영웅들을 만나기 위해

흔적도 증거도 없이

나를 화장(火葬)하고 있는

잔인한 지상의 오월

■ 이유

찾아다녔다.

그리하여

사랑이 증발되어 버린

이 목마른 땅이 눈물겹다면

죽어야만 했었다.

사랑의 부재가 증명되는 것은 아닌 것.

아직은 남아 있듯이

또 다시 버텨내야만 하는,

회색 늪지 어디에선가 질풍에 휘말린

가냘프고 힘든 호흡으로

또 다시 버텨내야만 하는,

그리하여

이유를 증명해야 하고

우리 모두 이미 어쩌면 죽었고

다시는 죽지 못하게 되었을지도 모르는

그렇다면

진실로 죽어야 하는

이유를 찾아야만 한다.

■ 바위의 고립에 대하여

새벽을 기다리지도

밤을 기다리지도 말아라.

널 실어나를 운명의 강물을 만나기 위해 뛰어 다니지 말아라.

태어나고 머물고 스러지는 것을 조용히 바라보기만 하라.

어린 아이의 시리도록 초롱한 눈빛, 혹은

죽어가는 병자의 고독한 눈망울을 만나더라도

다만, 바라보기만 하라.

기억하지 마라

결국은 녹슬어 버리고 말 강철이 되려고도,

바람 서리에 삭아버릴 비석에 네 이름과 얼굴을 새기려 하지도 마라.

차갑기에 아직 버티어내는 게다.

혼자 섰기에 아직 고독하지 않은 것이다.

산이 되려 하지 말아라.

고립은 운명이 아니다.

운명을 명상하지 말아라.

너의 냉기는 용암의 열기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나 기억하지 말아라.

■ 봉화산

길 따라 오르다 보았지

봉화산 낮은 산정이 마주 서 있는 걸

으스름 해질녘엔 검푸르게

망우리 안개속엔 연푸르게

영험이 있고 역사가 서린 봉우리

우연히 길 끝에 있는 산을 보았지

날 벌써 알고 있다는 듯

그냥 그 자리에 염불하며 있는 산

허둥대던 나는

오늘에야 보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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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남긴 일기와 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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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과 일기 중에서>

인간의 자질은 그리 많은 차이를 갖는 게 아니다. 내가 배운 쥐꼬리만한 심리학에도 그 증거가 많다. 다만 어떠한 환경이 주어지느냐, 또한 만드느냐가 사람을 만드는 것이다. 천재란 만들어지는 것이다. 자신에 의해, 마치 영웅이 난세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천재는 내부의 격렬한 갈등에 의하여 스스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세상은 고독을 미화시키고 있다. 그러한 세상은 내가 잘아는 암이라는 놈의 속성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지저분한 놈... 싸움에 질 수는 없다. 한번뿐이지 않은가.

<'암세포 속에서'中>

암은 생에 대한 성찰을 진지하게 해주었고, 시간의 중요성을 암살자의 비수처럼 예리하게 보여주었다. 그리고 내가 언제고 헤어지게 될 가족과 친구, 소유하고 있는 모든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알게 해주었다......

...내게 진실로 잊혀지지 않을 하나의 친구라면 암세포뿐일지도 모른다. 그게 악이든, 선이든 내 생애를 통틀어 나의 모든 것을 그리도 강렬하게 사로 잡았던 다른 어떤 것도 없었으니까.

<'암세포 속에서'中>

없어지지 않는 것은 귀하지 않다. 목숨이 귀한 것은 죽어 없어지기 때문이다. 인간이 귀한 것은 죽기 때문이지 살아있기 때문이 아니다. 영원히 사는 인간이라면 지금처럼 귀중하진 않을 것이다. 인간의 가치는 죽음 앞에 직면했을 때 확연히 나타남을 암세포 속에서 배웠다.

<'암세포 속에서'中>

어떠한 악조건에서도 절망이란 정서적인 증상이지 환경 그 자체는 아니다. 호랑이굴에 가도 정신만 차리면 된다는 속담에서 깊은 생존의 의미 - 나는 그러한 힘을 통괄해 생존력이라 하고 싶다 -를 포착한다면 어떠한 절망 상태에서도 극복하는 에너지를 얻는다.

<'암세포 속에서'中>

허무주의라는 이데올로기에 너무 깊이 빠져 들었나보다

매일 매순간 떠오르는 자살의 충동.

현재 내가 그려내는 삶의 자화상은 파멸되어 마땅할 정도로 경박스러운 것일까.

아니면, 능력을 넘어서는 짐을 지고 뒤뚱이는 건가.

여러 날째다.

늘 공전된다.

편두통까지 기습 공격.

혓바늘은 꽤 여러날째.

이를 닦을 때마다 붉은.......

주말은 왜 이리 빨리 다가서는가.

새끼에 꿰어진 굴비마냥, 하나씩 떼어져 삼키어지고 마는 일상.

그럴듯한 창작이 되는 것도 아니고, 심신이 무기력할 뿐이다.

미친 듯 싸돌아 다닌 후유증일까.

육체와 정신이 분리되는 괴리감까지 닥쳐 온다.

그렇다고 하루라도 쉬는 듯 쉬어보지 못하고 일에 쫓기는 강박관념은 여전하다.

당분간 도피자처럼 지내야겠다.

고독에 익숙해지고 침묵을 긍정하지 못하는 삶이라는 열차는 궤도이탈을 감수해야 한다.

몇 개의 계획은 보류하자.

시간에는 한계가 있다.

계단을 디디고 오르듯 차근차근 올라가야 한다.

나의 개성은 끈기이지 천재성이 아니다.

<1988. 11. 13. 일기>

모든 계획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일단 실천 가능한 목표의 성립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또한 실천의 최고 무기는 마음(mind)이라는 것도 함께 인식하게 된 몇 달이었다. 시간의 환경이 교란되고, 그릇 설정된 인간관계로 인한 의식의 파괴, 탐닉적이고 향락적이고 소모적이기만 한 악취미들이 무서운 독소처럼 퍼져 나갔다. 다 썩어버리고 싶었다. 아무도 슬퍼해 주지 않는 가운데, 미치광이로 파멸하는 꿈을 꿔왔다. 하되, 몇 가지 인식이 가라앉기만 한 의식을 북돋워 올린다. 글을 쓰는 재미가 첫째다. 오랫동안 그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 글은 허구이고, 인간이 진실이듯 여겨지되 사실은 반대일수도 있다. 글은 영원하고 인간은 허상으로 스러져 가는 것일지도. 계수기처럼 황금을 계산해보는 삶이 얼마나 피폐해 지는지.

요즘은 고독의 맛이 달다. 아무도 침범 못할 나만의 공간과 시간. 의식구조를 아메바 꼬리만큼 지니고 있다는 것만 하더라도 행운일지 모른다.

<88. 12. 11. 일기>

내 자신에 대해 모질어져야겠다. 감정과 관념의 유희로 인해 리얼리티를 상실하고 있다. 스스로의 자화상을 드라마로 못박아서는 아니된다. 풍선형의 인간보다는 팽이형의 인간이 되어야 한다. 현옥은 내게 감정의 구원을 요구했다. 난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그 간절한 눈빛을 받고서도 함구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내가 그 절실한 감정의 구원마저 포기해야 할 정도로 여유를 상실했기 때문이 아닐까.

바대다 주는 택시의 기사가 이(李) 기사였다. 그의 일상에 대해 듣다. 조합장 경합에서 5표 차로 졌다느니, 여전히 축구에 몰두하고 있다느니...... 그의 성장이 느끼어지지도 않았으되 퇴보도 느끼어지지 않았음. 하되, 내 크기의 위축이 느끼어졌음. 분발해야 할 시기를 통감했음.

<89. 4. 7. 일기>

산다는 것은 두 부분으로 이루어진 듯 하다. 강요되어진 부분이 그중 하나이고, 또 하나의 부분은 스스로 선택하고 찾아내어 해 나가는 부분이다. 인간의 삶이란 강요되어지는 부분을 축소시키고 선택하여 행동하는 부분을 확대한다는 데에 의미가 있다.

<89. 8. 7. 일기中에서>

.....

현실에서의 승리가 대다수의 경우에 있어서는 재정(財政)의 우수함으로 입증되곤 한다.

그러한 논리에 저항해 보는 건 청춘의 특전일지 모른다. 많은 삶을 만난다.

삶의 열정으로 무장한, 그것으로 자본주의적 황금컨셉에 과감히 저항하는,

약간은 멋있어 보이는 남들, 무엇인가 진실됨이 있어 보이는......

<89. 4. 30. 일기中에서>

패배란 결국 사랑할 수 없는 것인가. 승리의 끝에 패배가 있는가.

아니면 패배란 승리라는 청동 술잔에 담긴 진정한 한 잔 술인가.

패배는 승리를 안고 있는가.

전혀 다른 것인가.

단순하게 판단해 버리면 언어의 분별인가, 관심을 지니고 있음은 분열되고 있는 조짐인가.

<89. 9. 2. 일기>

의식의 혁명이 필요하다. 내 나이는, 인생에서 무엇이 가장 가치있는 것인가.

한가지 정도는 말할 수 있는 나이어야 한다.

<89. 9. 8. 일기>

몹시 불행하고 어두웠던 십 년의 검은 장막을 걷어 치워야겠다.

죽음은 가장 가까운 친구였고 내가 늘 바라봐야만 했던 거울이었다.

죽음은 어떠한 기쁨마저 사그러뜨릴 냉소를 지어왔고,

동시에 그 어떠한 고통마저 희석시켜 버리는 강철의 반발심을 주었다.

그러한 연마 가운데 내가 성장했음을 부인하지 못한다.

너무나도 큰 방황이었다. 나의 자의식으로는 도저히 감당하지 못할 숙명의 검은 바람.....

이제 떠나야겠다.

더이상 고독과 불행의 심연에 머물러 있을 수 없다.

내면의 밝은 아름다움이 풀씨처럼 머물고 있고

그것은 죽음의 악마성만큼이나 끈질기고 강하다.

그건 생명의 힘이며 진실로 아름다운 것이다.

이제 사랑을 할수 있다.

어떠한 어둠이라도 날 휘어감았던 십 년의 죽음보다 어두울 수는 없다.

.....

...

..

..

<89. 9. 17. 일기中에서>

예술로 다가서야 한다.

그것은 가장 아름답고 아름다움이야말로 나의 철저히 부패하고 편협한 자의식이

진실로 느끼고 있는 부재(不在)이기에.

애정을 쏟을 대상이 거의 없는 세상에서 타이프라이터나마 사랑하고 있다는게 얼마나 기쁜 일인가.

<**. *. **. 일기中에서>

나의 무너짐은 의식의 무너짐이다. 어쩌면 그것은 필연의 과도기일지도 모르는 것. 「절대파괴」라는 관념의 덫을 만들어 놓고, 그 덫에 자유롭게 날고자 하는 새 대가리 영혼을 옭아맨다. 파멸은 숭고하기까지 하다. 위대히 세워지는 것은 완전한 붕괴 이후에 있어 왔다. 일단 사회성에서 패배하고 말았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공격하기엔 너무 강한 외계이다. 혼자 지구의 모든 구조물을 상대로 싸우기 벅차다. 숨어들어야 겠다. 몇 년은...

<**. *. **. 일기中에서>

망각을 위해서는 기억을 해야만 했다. 대체 무엇을 망각해야만 하는지 명증하게 알아내야만 했다. 걸레처럼, 토물(吐物)을 흡수해버린 회색의 영혼은 위로 받을 수 없는 고독의 골목으로 열외되어 버렸다. 풀잎마저 부러워 했던, 극도의 절망이 있던 5년이 있었다. 미쳐야만 살 수 있었던 시절, 절망을 못이긴 나머지 죽음마저 사랑해 버릴 수밖에 없었던 명증과 나락의 몇 년. 부처님 손가락도 예수님 손가락 끝도 내겐 와 닿지 않고 오직 허무라는 이데올로기가 투병을 가장한 족쇄로 푸른 계절을 역병으로 몰아 세웠다. 기억하고 싶지 않다. 암세포보다도 작아진 타인의 가슴과, 생산과 능률의 구조 아래 영혼을 압박해버린 메카니즘의 서울, 기억은 무가치하다. 망각은 절대명제이다.

하기에 떠올려야 한다. 삭혀 고뇌의 차디찬 술로 마셔 버리기 위해. 십년 전 메스로 떼어내야만 했던 과식과 탐욕의 내 위장마냥. 이제는 허영과 착각으로 구멍난 내 의식을 도려 내야겠다. 이제 적어야 할 것은 백치를 위한 진단(診斷)이다.

<**. *. **. 일기中에서>

출처는 북풍표국.


Comment ' 4

  • 작성자
    Lv.99 成魂
    작성일
    03.01.20 09:53
    No. 1

    말그대로 강호초출이라 아는 것도 없이 이름만 들었던 분인데.

    무협 작가 이상의 의미로 제게 다가오는 군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등로
    작성일
    03.01.20 11:06
    No. 2

    으음...
    아..슬프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Personacon 진신두
    작성일
    03.01.20 11:27
    No. 3

    1930년대 일제하를 살았던 시인이자 소설가 \"이상\"이 생각나는군요.
    한창 무협에 빠진 시절 \"금강, 서효원\"하면 무조건 다 읽었었지요.
    \" - (하)되, - (하)였다.\"라는 문체를 많이 썼던 게 기억이 납니다.
    배반에 의한 추락과 기연을 통한 부활, 원한을 갚지 않음으로 복수하는 모습이 멋있었지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등로
    작성일
    03.01.20 12:16
    No. 4

    아..이상님.. 좋아하는 분입니다
    27세로 생을 마감하셨죠...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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