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청동기 사회는 국제적인 무역망을 통해 혈연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끈끈하게 묶인 중동 국제사회를 구축했었습니다. 각국의 궁정은 발달 된 관개농업을 기반으로 전문화 된 공방을 구축해 (그 당시 기준으론) 세계 반대편에 자리잡은 국가들과 교역을 했죠. 그토록 밀접한 관계는 서로를 운명공동체로 만듭니다. 대규모 지진, 기후변화와 이민족 유입이 초승달지대의 후기 청동기 사회를 붕괴시키자 몰락의 흐름은 머나먼 남쪽까지 흘러가 누비아의 번영하는 도시들을 쇠락의 길로 밀어넣었지요. 무려 3천년도 더 전에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난 일이지만 현대사회와 섬뜩할 정도로 비슷한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이후에도 그런 일들은 빈번하게 일어났습니다. 후기 청동기 사회가 붕괴한 이후 그리스인과 페니키아인은 지중해를 기반으로 한 범국가적 국제사회를 구축했고, 알렉산드로스는 (그 당시 기준으론) 온 세상이나 다름없던 서양을 통일해 그 너머의 인도 왕국들까지 세계관에 추가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마케도니아 제국이 붕괴하고난 이후에도 헬레니즘 세계는 중앙아시아와 인도에까지 독자적인 그리스계 왕국을 세우며 서로와 밀접하게 연관 된 복잡한 국제사회를 구축했고, 그것을 로마가 점령하고나자 다시 세계의 범주는 더욱 더 넓어지며 비단길을 통해 유라시아 양쪽 극단이 서로와 교류하게 됬습니다. 국제사회가 등장하고 그것이 하나로 통일되고나면 심지어 그러고나서도 그 너머에 있는 또다른 사회와 교류를 하기 시작하는거죠.
로마는 인도양/ 스텝평야를 통해 멀게는 한나라와 인도까지 교류를 했고, 로마의 몰락 이후에는 이슬람교가 세력을 펼치며 중동을 통합해 인도양 연안을 따라 복잡한 이슬람 국제사회를 구축했습니다. 후기 중세시대에 이르르게 되서는 유럽 기독교 왕국들이 따라잡기 시작했고 지중해와 북해를 따라 수많은 국가들이 밀접하게 연결 된 복잡한 기독교권 국제사회를 구축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태어난 지역을 떠나 완전히 낯설고 새로운 타지로 떠나갔고 무역과 외교와 결혼을 하면서 서로간에 밀접히 연결 된 세계를 구축했습니다. 멀게만 느껴지는 그 오래전에 이미 말이에요. 그런 것들을 생각해보면 사교활동은 인간의 분명한 본능인 것 같습니다. 아무리 세계가 좁아지고 좁아져도 저희는 그 너머에서 다시 사상과 재화를 교류할 새로운 대상을 찾아내니까요. 그게 언제나 저를 신기하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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