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하, 너는 어렸을 때부터 그랬어. 처음 만났을 때부터 다짜고짜 예상할 수 없는 말을 내뱉지 않나, 머릿속얜 그 흔한 돈이나, 식탐, 명예를 쫓는 것도 없었지.
나는 말이야. 너가 죽을 때까지 옆에 있을거야. 지금도 그렇잖아? 너는 내게 언제나 말하지. ‘내가 죽으면 이곳을 떠나서 더 많은 세상을 보고, 방랑하지 말고 사람들과 섞여서 살아가’라고.
애초에 인간도 아닌 내가 인간이랑 섞여서 지낼 수 있겠어? 하하, 하하. 나는 네가 죽어도 네 손녀 옆에서 계속 있을거라고! 네 유언 같은 건 절대 안지켜주지! 농담이야, 아주 슬픈, 농담.
네가 최근들어 그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를 알고 있어. 너도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거겠지. 백발이 세고, 네가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한다는 것도 알고 있어. 다른 사람들 눈이 의식되기도 하겠지만 넌 언제나 나에게 말을 걸어주지.
네 가족들이 너를 보고 미친 노인네라고 부르는 것도 알고 있어. 평범한 인간들 머릿속을 들여다보는 건 아무것도 아니니까. 내가 외로워할거라고 생각하면, 착각, 이야,
라고 말할 수가 없게 되버렸네... 나도 인간이랑 오래 있다 보니까 이런저런 인간스러운 감정을 느끼나봐. 네 손녀 정말 귀여워. 근데 너는 말을 걸지 말라고 하지, 칫. 옆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는 심심하다고.
몇 백, 몇 천년을 이미 감시자로서 살아왔는데 또 감시자 역할이나 하라고? 네가 죽으면 절대 안그럴거다!
옛날처럼 농담하고 혼자 웃는 것도 익숙치가 않아. 이걸 인간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어른이 되어간다'는 거겠지. 애초에 나에겐 나이 따윈 의미 없는데 말이야. 겉모습이 어린아이라서 내 정신도 따라가는걸까?
가끔은 너랑 모험하던 때가 떠올라. 넌 내가 알고 있는 인간 중 가장 강한 편에 속했고, 수많은 전장과 전투를 넘어오면서 마음을 달궜지. 내 앞에 있는 건 은퇴한 용사인걸까? 아니면, 정말 그들의 말대로 미쳐버린 노인인걸까.
나도 알고 있어. 아무리 나라고 해도 시간이 억겁만큼 흐르게 되면, 너도 결국 내 머릿속에서 잊혀지겠지. 그때도 나는 살아있을거고, 또 다른 사람들을 기억하면서 영원토록 남아 또 다른 세상의 감시자가 되겠지. 이전의 일은 기억하지 못한 채로.
그래서, 나는. 너를 기억할 수 있는 다른 이들을 만들고 싶어. 가령 네 손녀라던가. 나는, 나는, 너를 잊고 싶지 않아. 그래서 아마, 네가 죽고 나서는 네 유언, 지켜주지 못할 것 같아. 나는 어쩔 수 없나봐~, 심심하면 참을 수 없거든... ...
○○, 죽지 마. 너가 죽으면. 내가 네 유언을 지키는 한, 더 이상 이 세상에 날 기억해주는 인간이 없어. 제발... 인간은 언젠간 늙어서 죽는다는 걸 알고 있지만. 수 없이 지켜봐왔지만. 너는 특별해.
이걸 인간의 감정을 빌린다면 사랑한다는게 될까? 하, 천하불멸의 △△가 인간을 사랑하게 되다니... 내 앞에서, 그렇게 약한 모습으로 죽지 마. 필멸의 운명을 타고났더라도.
가끔은 후회돼. 네가 내 힘을 받아들였다면, 더 오래 살고, 더 오래 모험할 수 있었을 텐데. 하지만 그게 이뤄질 수 없는 가정이라는 사실이 더 슬퍼.
그게 네 방식이라면 나에게 말릴 이유는 없지만, 내 유일하고도 가장 소중한-이런 말을 쓰게 될 줄 몰랐네-친구로서, 너를 그리워하게 될 것 같아. 미안, 미안해.
나도 점점 사그라드는걸까? 불멸자가 필멸자처럼 생각하게 되다니, 불멸이 불멸이 아니게 되는 순간이 찾아오기라도 하는 걸까. 요즘 정신이 오락가락해. 그때 기억도.
그래서, 나는 내가 없어지기 전에. 네가 이 세상에 있었다는 증거들을, 기억하는 사람들을 훨씬 더 많이 만들어야겠어. 약속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 그리고 사랑해.
○○와 △△의 이야기 보러가기 >> https://novel.munpia.com/362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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