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저와 비슷한 생각을 갖고 계신 분을 만나 반갑습니다. 저도 또한 팬터지문학의 특성은 주제가 아니라 서사에 집중하고 있다는 점으로 보는 바, 영혼의환님과 저의 전제는 비슷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논리의 전개에 있어서, 그리고 결론에 있어서 영혼의환님과 저의 생각에는 차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차이란 첫째, 과연 팬터지문학은 꼭 주제를 드러내야만 하는가이고, 둘째, 그렇다면 팬터지문학은 반드시 세계와 주인공간의 갈등 속에서 주제를 드러내는가입니다.
첫째, 팬터지문학이 꼭 주제를 드러내야만 하는가에 대한 문제에 대하여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꼭 그래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고.
소설은 "있을 법한 허구" 이며 주제는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입니다. 만일 작가가 소설을 통하여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한다면, 그것은 효용론적인 목적을 가지게 되거니와, 또한 목적론적인 문학이 됩니다. 그러나 소설은 꼭 그런 측면만을 가지고 있지 않고, 유희적인 측면 또한 가지고 있습니다. 소설이 '반드시' 주제를 가져야만 한다는 것은 소설의 목적을 제한하며, 순수히 즐거움을 위해 소설을 읽는다는 목적을 간과하는 것입니다.
둘째, 소설은 주인공과 세계의 대립 속에서 존재한다는 말에 동의하지만 또한 반드시 동의할 수는 없습니다. 주인공과 세계가 대립한다고 해서 주제를 반드시 그 곳에 담아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말해서 세계에 주제를 담는 것은 대단히 드문 일이며, 거의 모든 주제는 사건과 다른 인물간의 갈등 속에 드러나는 것이 사실입니다. 현대소설 역시 평범한 세계관을 택하고서도, 다른 인물들간의 갈등 속에서 충분히 그 자신의 주제를 드러내고 있으며, 또한 그렇기 때문에 팬터지 문학이 반드시 그 자신의 주제를 드러내기 위해 특수한 세계관을 택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오히려 현재의 장르문학은 거의 대다수의 세계관이 정형화되었기 때문에, 그 배경을 그대로 살리면서도 주제를 다른 곳에서 살릴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엔더의 게임>을 쓴 오슨 스콧 카드는 이런 말을 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이야기를 시작한 후 당신의 독자들에게 가능한 한 빨리 그것이 판타지가 될 것인가, SF가 될 것인가를 알려야 한다. 만약 글이 SF고 당신이 그것을 독자들에게 알렸다면, 당신은 엄청난 수고를 던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의 독자들은 이야기에서 보여주는 곳 외에는 알려져 있는 자연법칙이 모두 적용되리라고 가정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저의 결론은 다음과 같습니다. 현재의 팬터지문학이 배경적 특수성을 이미 확립하고 있는 바, 그 서사의 전개는 다른 현대문학에 비해서 또한 용이합니다. 예컨대, 클리셰를 자주 사용할 수 있다는 이야깁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장르문학은 그 주제보다는 서사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으며, 그것이야말로 장르문학이 다른 현대문학과 달리 갖는 특수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팬터지 문학이 좀 더 넓은 대중에 어필하기 위해 반드시 주제를 담아야 하고, 또한 배경에 그것을 담아야 한다는 영혼의환님의 주장에 대해, 저는 팬터지 문학은 목적론적인 측면보다는 유희적인 측면에 주목하고 있으며, 또한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주제를 담아야 할 필요는 없고, 게다가 그것을 꼭 배경 속에서 표출할 필요는 없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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