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이상혁
작품명 : 눈의 나라 얼음의 꽃(오셀루나 &오셀룬)
출판사 : 청어람
눈의 나라 얼음의 꽃은 데로드 데블랑으로 널리 알려진 이상혁씨의 작품입니다. 비평글을 통해 읽게된 책인데 옳고 그름을 가름해서 책에서 아쉬웠던 점과 하고 싶은 말을 적었습니다.
처음부터 5권 완결을 명시하고 책을 내는 것은 매우 좋았습니다. 전업작가분들 사정 어려운 것은 알지만 분량 늘리기 글쓰기를 통한 고무줄 연재는 글의 재미도 떨어트리고 보는 독자들도 실망하게 만들지요. 글 곳곳에 보이는 다양한 소재들은 충분한 사전조사와 노력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요즘 장르시장의 기준으로는 정성 들인 글이자 좋은 완성도를 가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뜻 마음에 들어오지 않는 것은 역설적으로 이 글이 그렇게 완성도가 높지 않다는 것을 말합니다. 스물네 살의 나이에 폐병으로 각혈까지 하는 여자 주인공이 왕실 근위대의 부사령관이고 나라안에 딱 하나 있다는 고급 기호품 차를 취급하는 찻집은 단지 주인공과 여자주인공이 뒷골목에서 조우했는데 이야기할 곳을 찾는 이유 하나만으로 여자가 얼굴을 붉힐만한 뒷골목과 가까운 곳에서 영업을 하게 됩니다. 이렇게 가끔 눈에 띄이는 억지설정은 눈쌀을 찌뿌리게 만드는데, 이 책은 주인공의 활약을 위해서 주변 인물들이 바보가 되는 고질적인 문제점도 가지고 있습니다. 모두 쉽게 속고, 쉽게 논파 당합니다.
주인공이 첫 사기를 칠 때 탄광을 이용합니다. 자국의 키예프 후작 타국의 스토바 백작이 20년간 영유권을 주장하는 이제 곧 문을 닫으려고하는 치누크 광산. 이곳을 산 후 스토바 백작에게 금광이라고 착각하게 만들어 비싼 값에 팔려는 속셈이지요. 여기서 서른 네살의 욕심 많은 스토바 백작을 속이기 위한 보조장치로 헛소문을 이용합니다.
아시나요, 아시나요. 꽃잎은 꽃가루를 감추고 있다는 걸
알다마다요, 알다마다요. 금색 꽃가루가 그곳에 있다는 걸요
이 노래를 들은 그에게 집사가 고향마을에 전해져오던 노래로 덕분에 4대전 스토바 백작이 탄광을 찾을 수 있었다라고 설명을 하게 하고 이 엉터리 노래에 주석을 붙여준 대가로 5천 루블, 성공 후 5천 루블 추가 1만 루블을 벌었다면서 의심없이 해맑게 기뻐합니다.
귀족 가문의 집사란 조선시대 안주인이 곶간 열쇠를 쥐고 있는 것과 같이 집안 살림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는 사람입니다. 할 일도 많고 신경 써야 되는 곳도 많고 책임질 일도 많습니다. 그래서 믿을 만한 사람이어야하고 수완이 뛰어나야하지요. 백작 쯤 되는 가문의 집사가 최소한의 원한관계나 부연설명 없이 매수됩니다. 스토바 백작이 급한 마음에 거래를 하는 순간에도(사기를 당하는 순간) 어수룩한 집사가 공기만큼의 존재감으로 그 자리에 함께 하는데 설마 동일인물인지 모르겠습니다.
주인공이 무슨 말만 하면 상대는 '그,그건...''나,나는''무,무례하군'이라고 버벅거립니다. 이것은 이 소설의 절대공식입니다. '인원이 부족한 입헌파에게 다수결은 불리하다, 상원의 의결 체계를 바꿔야한다'면서 다수결을 부정적으로 보는 귀족에게 법이야말로 인간 이성의 집대성이고 다수결의 결정체라고합니다. 입헌의 제 1원칙이라면서 다수결을 정면으로 부정하니까 입헌파가 아니라 왕당파라는군요. 자기와 함께 왕당파로 가잡니다. 그리고는 다른 사람이 그러면 너도 왕당파라고하니까 왕당파도 다수결을 지지한답니다(다만 왕을 법으로 심판하지 말자는 것 뿐) 그럼 왜 왕당파로 가자고 했을까요? 대체.... 물 흐리기의 대가이자 변설의 극치입니다. 그러면 상대는 모두 정곡을 찔려 할말을 잃었다고 나옵니다ㅡㅡ 폭군을 저지하기 위한 장치가 입헌이라 이야기하자 군대는 법으로 막을 수 없지만 (역사와 철학으로 기르는) 이성으로 막을 수 있다는 등...
분명 작가님은 사회의 격변기와 정치 의제를 잘 소화하고 그럴싸하게 배치했습니다. 3권 초반에 여왕에게 귀족의 전횡과 국가의 멸망과정을 구미에 맞게 설파하는 이야기는 자료를 이해하고 이용한 훌륭한 예였습니다. 그러나 그것 뿐입니다. 사기꾼인 주인공이 정치적 격변기인 곳에서 호감을 사고 신뢰를 얻고 활약하기 위한 장치 그 이상의 역할을 하지 못할 뿐더러 주인공이 입만 열면 느껴왔던 분위기가 확 깹니다. 이는 자연과학에 대한 이야기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 책 뒤표지에 적혀있는데로 주인공의 활극이 이 글의 중심일까요?
제가 처음 책을 빌리러 갔을 때 여성코너에 꽂혀져있었습니다. 십대들의 연애神 귀여니님과 어여쁜 남정네 둘이 지그시 마주보는*-_-* 책들과 섞여 있더군요. 거참 찾기 어렵게 여기다 꽂아놨냐고 투덜댔지만 읽어 보면서 깨달았습니다. 아주머니는 관심법을 익힌 보살이셨구나!
이건 로맨스 소설이었습니다ㅡㅡ 여자 주인공 비중은 공기와 같지만... 작가님이 공기라면 산소고 산소와 같은 여자 주인공의 역할과 필링을 표현하려고 했던걸까요?
이 글의 시작은 14살 꼬맹이들의 사랑과 이별. 그리고 단 하나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 돌아온 주인공의 행보입니다. 이 글의 끝은 물론 불치병을 앓는 여자 주인공을 고치고 둘이서 행복하게 사는거지요. 분명 이 글을 관통하는 것은 둘의 로맨스입니다. 원래는 약을 만들기 위한 돈벌이였고 그것을 위한 사기였지요. 작 중 내내 나오는 주인공의 행동은 모두 그걸 위한 일이었습니다. 끝내 불사조를 만나 여자 주인공의 쾌차를 빌어 행복한 결말을 맞이합니다. 하지만 글을 읽으면서 도저히 그런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이게 정말 로맨스?
문제는 앞서 말한 여자 주인공의 비중입니다. 이 소설에서 그녀에 대한 이야기는 정말 일부에 불구합니다. 둘이 함께하는 장면은 마지막 권을 제외하고 한권에 한두번이고 여왕과 함께 있는 장면이나 독백장면도 두어번 나오고 끝입니다. 둘이 함께 하는 장면도 의미 없이 지나칠 때가 있으니 정말 산소와 같은 여인이라고 할 수 있네요(샤이니가 부릅니다. 산소 같은 너 하앜하앜~) 책 중간 부분 둘 관계의 핵심이어야할 왕이 죽은 후 '너를 여왕에게 접근하기 위한 열쇠로 쓰겠어'라고 마음 먹은 주인공의 행동은 책 한권 분량 이후에나 나오며 그나마도 여자 주인공을 이용한게 아니라 자기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 상대 논파해서 환심을 삽니다. 다시 한번 부릅니다. 산소 같은 너~
주인공은 분명 목표를 위해서 누구나 죽일 수 있고 누구나 속일 수 있는 사람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원한마저 잊고 증오 또한 외면하며 단 하나의 소원에 몰두합니다. 그리고 성공합니다. 그 중간은? 5권 완결인 책에서 이건 이해할 수 없는 일이며 오셀룬과 오셀루나의 미묘한 감정의 교류는 결코 연속성을 띄지 않습니다.
결국 모든 것이 어중간해져버렸습니다. 주인공의 활약이 대부분을 차지하지만 묘사가 빼어나거나 그 활약이 큰 감흥을 주지 못합니다. 활약의 목적은 상실 되어 있고 제목이 오셀루나&오셀룬인데 이야기의 한 축은 빠져있습니다. 당연히 둘 간의 관계에서 간질간질거리거나 아릿아릿한 긴장감, 슬픔, 감정의 고조 등은 전혀 느낄 수가 없습니다.
본래 접시 8개 분량의 코스 요리를 5개의 접시에 담아서 내오는 바람에 모양이 엉망이 되고 그나마도 먹어보니 맛이 없는 느낌이라고 하면 될까요. 동네 책 방 두군데에서 반품되고 한군데에서 여성코너 한켠에 쓸쓸히 있는 것은 냉혹하지만 현실적입니다. 10권 분량이었으면 이러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아쉽네요. 하르마탄이 더 재미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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