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0,1 이 조합하여 만든 글자를 RGB라는 빛이 내쏘는 모니터'가 아니라 '손끝에 침발라 넘기는 종이에 잉크가 묻어있는 활자'로 내글이 읽힐 수 있다는 것은 정말 큰 유혹이었습니다.
망설이고 주저하다 덜컥 '출판계약'이라는 것을 해버렸습니다.
금요일 밤과 토요일, 일요일은 '온전히'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입니다. 그런데 그 엄청난 일을 보아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일이 제기된 감상란부터 시작해서 올라오는 글들을 읽고 또 읽고 하면서 결국 밤 시간을 보냈습니다.
오만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코 상식적으로 생각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고 또, '내 상식'으로 는 이해할 수 없는 처리방식이 제기되었고 거기에 이러니 저러니 말들이 있었습니다.
출판한 책이 남의 글을 베낀 것으로 분명히 판명이 되었고 그 외에도 원고를 받아서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 대여점주들에게 1권 끼여팔기로 손해를 감수할 테니 넘어자자. 그리고 원작자에게는 한번 봐달라. 원작자에게 나머지 글도 문제가 있는지 검토해 달라가 아니고. 원작자가 요구해서야 보관하고 있던 원고를 보여준다니.
도대체 책 찍어 파는 출판사가 이렇게 '독자'를 우롱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 또 보잘 것 없고 부족한 글이긴 하지만 내 글이 어떻게 "취급받고" 어떻게 읽힐 것인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물론 내가 계약한 출판사가 관련이 있는것은 아니지만. 그리고 나는 정당한 행동을 했나? 끝내지도 못한 부족한 글을 덜컥 책을 내겠다고 한 나는 정당한가? 내 글은 표절이라고 부를 만한 것은 없는가?
내내 가슴앓이를 했습니다.
그리고 필력과 나이가 관계가 있느냐는 약간 도발(?)에 가까운 아래 글.
나는 20대에 가장 자유로웠고 가장 치열했으며 가장 덜 비겁했습니다. 그리고 그 뒤로 20년. 유연해지고 넓고 깊어지고 현명해지고 관망할 줄 알게 되었습니다. 그걸 단 한마디로 하면 '적당히' 비겁해졌습니다. 남들 도서관 갈 때 감옥간 걸 후회할 정도로 현명해졌고, 룸살롱에서 나갈 돈과 들어올 돈의 크기를 주판알 튕기며 잴 정도로 현명해졌고, 사는게 다 그런거지 하는 말을 입에 달고 살 정도로 넓어지고 깊어졌으며 내 일 아닌데 하면서 객관적으로 사물을 볼 수도 있게 되었습니다.
책으로 만나겠다고 약속했고 연재는 2주후에 다시 시작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글을 쓰려고 앉아서 단 한 줄도 못쓰고 나이답지 않은 가을앓이를 하고 있습니다.
이제와서는 잘 모르겠습니다.
내가 지금 잘 하고 잇는 짓인지?
별 수없이 또 글을 써야겠지요. 출판사와는 사인을 했고, 2주후에 다시 연재 시작한다고 독자들과는 구두계약도 했으니까요.
그냥 사는 게 그렇다는 거지요. 정말 연재 한담이지요.
가을 바람이 솔솔해서 그냥 가슴에 바람이 분다는 말이지요.
애써 발끈해 하실 분은 없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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