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껄끄러운 일이 있었습니다.
고교 졸업반이라 딱히 할 일도 없고, 방학내내 방콕하다가 일이 있어서 나갔습니다. 친구를 만났죠. 그 녀석과 이야기를 하다가 문득 학생작가에 대한 말이 나왔습니다.
"국어 이해도 부족한 애들이 대충 질러도 책 내주는 출판사는 제정신이야?"
라고 친구가 말했습니다. 물론 저는 부정했죠. 그 사람들도 노력을 한 결과물로써 책이 나오는 것이라고 답변했습니다.
그랬더니 친구가 비웃더군요.
"미친, 띄어쓰기야 비슷하고 애매한 건 헷갈리니까 넘어간다고 해도 맞춤법 틀리고, 그걸 책에서조차 잡아내지 못하는 게 정상이냐? 작가나 편집자나 그 밥에 그 나물이야."
예
이 즈음에서 본격적으로 언성이 높아졌죠.
아무래도 글을 쓰는 입장이다보니 작가와 편집자, 정확히는 학생작가와 편집자를 옹호하는 쪽이었습니다.
출판되는 책의 소수만이 그런 실수를 범한다고, 맞춤법이 틀리는 건 장르문학 관련도서만이 아니라고 했죠.
그런데 친구놈이 일침을 가하더군요.
"야, 인터넷 연재본이랑 책에 나왔던 맞춤법이랑 다른것도 없다. 그건 실수가 아니라 몰라서 그런거야."
끝까지 항변했죠. 글을 쓰다보면 키보드 때문에 나도 모르게 오타가 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편집자를 운운하더군요.
"그런 실수를 잡아주는 게 편집자 아니야? 결국 편집자가 원고를 대충 훑었다는 뜻이잖아? 결국 편집자가 작가의 글을 못 미더워하는 상황이지. 그러니까 장르문학에 대한 사람들의 시선이 '3류'를 벗어나질 못하잖아."
그 친구놈은 나름대로 식견이 있는 놈입니다. 막연하게 아무것도 모르는 녀석이 글에 대해 나불거렸다면 저도 무시했겠지만, 나름대로 공부도 하고, 국문분야에 관심도 있는 녀석인지라 언쟁이 생겼죠.
그런데, 이상한 건 말입니다.
어째 말이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제 말문이 막히더란 말입니다.
"삼류문학 취급이 싫다면 작가나 편집자가 정신을 차려서 좋은 글을 내보여야 하는거고, 적어도 원고를 보는 편집자가 작가의 글을 주의깊게 볼 정도의 작품성은 보장해야지."
아예 자괴감까지 들더군요.
"장르문학 작가들은 순수문학, 참여문학처럼 문학을 나누고 각자만의 성지를 만들어서 자신들을 무시하는 처사가 부당하다고 하지? 그런 행동이야말로 문학에 대한 오만이고, 문학인의 자세에 걸맞지 않는다고 하잖아?"
이쯤되자 이후에 나올 녀석의 말이 두렵기까지 했습니다.
"그럼 정신차리고 제대로 해야지. 네가 항상 해리포터, 반지의 제왕은 문학이라고 하면서 국산 판타지는 3류라고 하는 사람들 못마땅하게 보잖아?"
사실이었습니다. 외국의 판타지는 문학이라고 하면서도 국내의 장르소설은 무시당하는 것이 말도 안된다고 생각했었죠.
"작품성이 있어야 문학이지 짜샤! 하다못해 맞춤법 정도는 제대로 알아라. 키킥!"
친구놈이야 웃으면서 말했지만, 듣는 입장에서는 울고싶었죠.
그리고 조금전에 아는 동생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자기가 보는 글 작가가 알고보니 15살인데, 예전에 봤던 형들 글보다 형편없다고, 형들이 중학교 시절에 북박스에 올렸던 글들이 훨씬 낫다고, 출판사가 맛이 갔다고 하더군요.
지독할 정도로 섬뜩한 우연이었습니다. 그 동생의 전화는 친구에게 들었던 말을 다시 생각하도록 만들었죠.
왜 이런 일들이 오늘 하루 저에게 벌어진 걸까요?
학생작가나 편집자들에 대해 나쁜 생각을 가지고 올리는 글은 아닙니다.
다만 평소에 '외국 판타지는 문학이라고 하면서 우리나라 판타지는 3류로 바라보는 시선 자체가 문화사대주의, 문학적 폭력이다!'라고 말하던 제가 얼마나 노력을 하고 있었는지 회의가 들더군요.
학생작가들에 대한 제 생각은 하나였습니다.
정말 대단한 재능을 가졌구나, 혹은 엄청나게 노력했구나.
헌데 그 생각이 무너지려고 합니다.
오늘 벌어진 두 가지의 일들을 과연 무엇이라고 말해야 할까요? 어떤 절대적인 존재가 제게 깨달음을 주고자 친구, 동생의 입을 통해 메시지를 알렸던 걸까요?
아니면 장르문학을 3류라고 표현하지 말라는 제 생각을 실은 제가 믿지 못하고 있었을까요?....저는 자신을 기만하고 있는 걸까요?
즐거워야 할 일요일에 이렇게 무거운 말이나 던지는 건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헌데 오늘만큼은 글에 대한 회의가 제 뇌리를 떠나지 않고 저를 괴롭게 하네요.
여러분들과 오늘의 사건, 생각을 나누면 편해질 수 있을까 해서 이런 장문의 글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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