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착각을 하고 있다.
소설은 '보는' 것이 아니라 '읽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최근 이라고 말 하기엔 우습지만 어쨌거나) 에는 소설을 읽는 사람이 아니라 보는 사람이 많고 대부분의 작가(라고 스스로를 지칭한다는 사실을 난 재밌다고 생각한다.) 들은 소설을 쓰는 것이 아니라 소설을 그린다. 그린다. 그렇다 그린다는 표현이 딱 어울린다. 최근의 많은 소설들은 오로지 순간적이고 말초적인 말장난과 상황에만 의지해 이야기를 전개하고 유기적인 스토리의 전개와 이야기 전체를 다시 복기해 보고 싶은 권리를 기본적으로 박탈하고 있다. 우리는 소설을 이해할 필요가 없이 단지 보고 웃고 넘어가고 있다. 물론 이러면 단순히 보고 이해가 된다면 그것이야 말로 위대한 소설이지 않은가? 하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웃기는 소리다. 소설은 초딩때 그리던 그림 일기가 아니다. 다양한 캐릭터들이 복합적으로 어울려 있고 흥미로운 이야기들로 구성 되어 있는 소설을 볼 땐 그 속에서 작가가 하고 싶었던 말을 찾아내서 독자가 느껴야 한다. 난 그것이 정당한 댓가를 지불하고 산 책과 힘들게 책을 쓴 작가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한다. 숨겨 놓은 이야기들 속에서 작가의 의도와 이런 상황을 넣은 이유 그리고 이런 대사들을 넣은 이유를 찾고 또 즐겨야 진정으로 소설을 읽는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책은 보는 것이 아니라 읽어야 한다.(그렇다고 보고 웃는 것이 나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단지 그렇게 시류가 흘러가고 있으며 그런 것에만 열광하는 사람들과 그런 글을 쓰고 있는 나에게 난 화가 날 뿐이다.)
그리고 지금부터 추천하려는 솔더트는 기본적으로 읽어야 하는 소설 임을 밝혀둔다. 또 단지 보는 것만으론 이 소설에 대해서 알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는 말도 해 둔다.
한 남자의 처절한 복수극. 패러디. 이 두가지는 소설에서 아에로님이 유일하게 '보여주는' 사실이며 단순한 감상이다. 하지만 그 속으로 들어가 보면 이야기의 중심이자 독자의 시선이 쫓아가는 사람인 릿터와 그런 릿터와 함께 떠나는 아크리에 그리고 루스벤의 이야기가 속도감 있게 그리고 때로는 유쾌하게 엮어져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소설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는 속도감 있고 흥미로운 전투 장면의 묘사는 굉장히 인상적이다. 비유를 해보자면 많은 소설들이 정지화면에서 2배속으로 돌린 화면처럼 이야기를 전개 하는 반면에 슬더트에서는 상황을 끊임없이 설명하고만 있지만 절대 늘어지지 않는다. 긴장을 유지하고 있고 공격하는 쪽과 당하는 쪽의 상황을 적절히 섞고 있어 속도감이 잘 느껴진다. 난 쑥쑥 넘어가는 상황의 전개에 어느새 다음편을 누르고 있는 자신을 보며 경악한 적도 있었다.
이 소설의 또다른 장점은 비교적 정형화 되어 있는 캐릭터와 킬빌이란 영화를 통해 비교적 익숙하게 느껴지는 이야기를 가지고도 보는 사람을 놀라게 할 만큼 매력적인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는 것이다. 난 그것을 작가의 문체와 문장력에서 비롯된 것이라 믿고 있다. 흔한 캐릭터와 이야기를 가지고 있지만 아에로님의 문체는 견고하며 또 글이 어리지 않다. 문장들 자체가 성숙되어 있으며 캐릭터는 자신에게 어울리는 말을 하고 있다. 여타의 판타지 소설에 나오는 "어린이"들처럼 어린 주제에 심각한 대사를 남발하거나 해서 날 어이 없게 만들지 않아서 좋았던 것이다. 캐릭터에 어울리는 말과 문장에서 느껴지는 성숙함이 이 소설의 또다른 매력인 것이다. (물론 그래서 주류의 외면을 받았다는 점은 나중에 언급하겠다.)
세 번째 장점은 비교적 짧지만 두고두고 봐도 재밌다는 것이다.
중장편. 짧다는 것은 굉장한 미덕이다. 요즘처럼 난무하는 2부 3부 들 속에서 단 한 권 혹은 두 권이 될 수 있는 내용으로 이야기를 완결 시켰다는 것은 칭찬 받을만한 일인 것이다.
그리고 슬더트는 개인적으로 두 번 정도 보았다. 하지만 볼 때마다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어서 좋았다. 트레이시가 왜 트래쉬이며 주인공의 이름이 왜 릿터(쓰레기라는 의미가 있다고 글쓴이가 밝혔다.) 인지 왜 소설의 제목이 슬래쉬 더 트래쉬인지 루스벤과 아크리에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처음에 봤을때 이해하지 못한 것을 두 번째 보고 나서야 비교적 이해했고 개인적으로 궁금했던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나는 처음에 슬래쉬 더 트래쉬를 보면서 많은 것이 궁금했다. 위에 있는 세 번째 장점에서 써두었던 내용을 말이다. 하지만 두 번째 봤을때 난 아에로님이 왜 주인공의 이름을 릿터로 했는지 그리고 왜 소설의 제목이 슬래쉬 더 트래쉬 인지를 깨달았고 작품속에서 뛰노는 캐릭터들의 대사와 행동의 이유를 알았을 땐 정말 유쾌했다. 요즘같이 보는데 익숙해진 세상에서 숨겨져 있는 것을 깨닫는 다는 것은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상이었고 또 행복한 감상이기도 했으니까 말이다.
이쯤에서 정리하자면,
슬래쉬 더 트래쉬는 분명히 말해서 "어린이"들을 위한 소설이 아니다. 뭣보다 문장에 작가의 나이가 진득히 베어 있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한 편 한 편 봐서는 작가의 의도와 이야기 속에 숨어 있는 또다른 뜻을 절대 알 수 없다고 생각한다. 허나 분명히 말하건데 슬더트는 지나치게 무거워서 보기가 숨이 막히는 그런 문장이 아니었고 그렇다고 가벼워서 보면 비웃음만 나오는 그런 것도 아니었으며 결국 난 그 문장력에 매료 되었다. 그리고 꽤나 많이 볼 수 있는 허접한 성적 편견이 나열 되어 있지 않은 소설이라서 좋았으며 보기 드물게 '보여주는' 소설이 아닌 '읽기'를 권유하는 소설이라서 좋았다.(요구하는 '읽기'의 수준이 그리 높지 않다는 것도 굉장한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난 이제까지 서양과 일본식 판타지의 코드를 적당히 섞어 놓은 것이 한국형 판타지라고 믿고 있었다. 하지만 몇몇 분들 덕분에 지금 내 의심과 편견은 조금씩 무너져 가고 있고(물론 쌓여가는 것도 많지만….) 그것에 크게 일조한 이 슬래쉬 더 트래쉬를 여러분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그리고 난 인터넷이란 그지같은(…) 환경에서 이런 소설이 나왔다는 것을 또다른 기적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을 마지막으로 밝혀두며, 여전히 내 마음을 좀먹고 있는 한국 판타지에 대한 증오와 분노의 감정을 희석시켜준 AERO님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 그럼 이만….
-점심때 먹은 피자조각을 아직 소화하지 못 한 글쟁이 앰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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