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글을 쓰기 시작한 건 중학교 1학년때인가...
모 게임의 커뮤니티 게시판이었습니다.
가끔 추억에 잠기고 싶을 때면 찾아가 제 닉네임을 찾아 검색해보고...
그 손발이 오그라드는 글들을 보며, 가끔 아쉬움을 느낍니다.
왜 지금은 그때만큼 풍부한 감수성이 느껴지지 않는 걸까.
문장은 엉망이지만... 오타도 썩어 넘치지만... 적어도 열정이라는 게 묻어 있는 글.
그렇다고 지금 쓰고 있는 글이 열정이 없는, 기계적으로 쓰고 있는 글은 아닙니다.
문피아에서 활동을 시작한 건 아직 일주일도 안 됐지만... 초심으로 돌아가 한 분 한 분 제 글을 읽어주는 것에 만족감을 느끼며... 그래도 꾸준히 댓글을 달아주시는 분들과... 추천을 눌러주시는 분들... 그리고 조금씩 늘어나는 선작수를 보며 나름 즐겁게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전의 창의적인 사고들은 어디로 가고... 양판이라고 무시하고 있는 글을 닮아가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이번에 skt2 나온 걸 주문한걸 오늘 받아서 봤습니다. 라이트노벨로 나온 거더군요. 어째서 아이히만 대공이 살아있는데 시작한 걸까는 둘째치고.. 끝까지 읽고 아.. 이건가.. 그리고 두번째 권이 오늘 나와(어제군요) 지르러 컴퓨터를 다시 키고...
그 짧은 부팅 시간 동안 담배를 피러 나가 많은 생각에 잠겨봤습니다.
3분도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내 필력은 어디까지? 여기가 한계?"
마음속 깊은 곳에 아직도 남아 있는 작품들.. 카르세아린, 더로그, 데로드앤데블랑, 하얀늑대들, skt.
당장 생각나는대로 적으라면 저것들입니다.
카르세아린은 국내 판타지의 시작이라고 해도 좋을 드래곤라자에서 다뤄졌던 드래곤을 아주 시시껄렁한 잡배(...!!)로 만들며 한 획을 그었다고 생각 되고, 더 로그는 개인적으로 판타지라면 이정도 구성은 되지 않아야겠느냐고 제 주관적인 평가로 최고라고 봅니다.
데로드앤데블랑은 라디오 방송으로도 나왔었죠. 가끔 라디오를 청취하던 제게 라디오에서 (아쉽게도 허접하게 느껴졌지만) 성우분들이 라디오만이라지만 연기를 하고 있던 건 제게 신선한 충격이었는데...
솔직히 주인공의 마지막 모습에서는... 뭐랄까요... 경건함? 을 느끼게 된 유일한 소설이었습니다. 가끔 아마추어 작품에서 주인공이 죽는 경우 많이 봤습니다. 출간작에서도 기억에 있는듯 없는듯하지만 죽은 경우가 있는 것도 본듯하구요. 그것을 떠나, D&D는 문체를 본다면 훌륭한 작품은 아니었지만 정말 무언가 가슴 깊이 떨림이 느껴지는 그런 작품이었습니다. (그만큼 D&D는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린 작품이기도 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더로그 보기 전에 본 작품입니다.)
하얀늑대들을 접한 건 이고깽이라고 하는 퓨전이 한창 극을 치고 있을 때 우연히 표지가, 제목이 맘에 들어 보게 된 작품이었습니다. 주인공이 한없이 무기력하기만 하죠. 뭐랄까요. 첫경험인가요. 그만큼 충격이었습니다. 쥐뿔도 없는 주인공으로 이렇게 매력적인 이야기를 풀어쓸 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 SKT 는 따지고보면 드래곤 레이디라는 1권의 극악 재미도 없고, 이해도 안 가는 험난한 재앙을 물리치고 완독한 후, 그 작가님만의 매력에 끌려 보게 된 작품이었지만... 너무나도 다른 모습에 홀린듯이 보게 됐죠. 기사라는 게 많이 풍자화 되고는 있었지만 무려 '제비족'으로 묘사되는 충격 역시... 적지 않았습니다. 아직도 수많은 판타지에서 기사란 오리지널 OR 풍자의 대상이라는 것을 볼때... 어떻게보면 단순히 풍자의 한 모습일뿐이지만... 그렇게 하기엔 너무나도 신선했습니다.
SKT 를 읽고 전 군대를 갔고... 당연한거겠지만 그동안 판타지고 뭐고 읽을 시간이 없었습니다. 군부대 있던, 제 성엔 안 차는 작들만 읽었을 뿐이죠(....)
그리고 시간이 더 지나 다시 글을 써볼까 했을때...
저 작품들이 다시 떠오르네요.
제 글을 돌아보게 만드네요.
당장이라도 손발이 오그라들어 삭제해버리고 싶습니다.
전 결국 어디서 본듯한 플롯과 어디서 본듯한 연출을 이용한 무난한 글을 쓰고 있는 것뿐인거 같아요.
나름대로 세계관도 짜고... 나름대로의 철학도 넣어볼까 하고 있고... 나름대로 캐릭터들도 개성있게 잡았지만... 제 스스로의 판단에 의하면 어디서 본듯한, 어디서 나온듯한 이야기들일 뿐인 거 같습니다.
쓰다보면 좋은 글이 나온다.
맞는 말이죠. 적어도 전 제 스스로 나아지고 있다고 장담하고 있었습니다. 오늘까진.
하지만 쓰다보면, 읽다보면, 좋은 글이 나온다고 해서 그게 어떤 한 획을 그을 수 있을만한 글이 되는 건 아니겠죠.
그건 재능일까요......?
저 위에 작가분들이, 제가 생각할 때는 다 한가지씩 획을 그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른 작품들을 더 찾아보면 저것 외에도 적지 않은 획들을 그었죠.
출판이니 뭐니 그딴 건 아무래도 좋습니다. 단순히 내가 즐겁자고 쓰는 글이라도 좋고, 중2병 환자마냥 관심이 필요한 거라도 좋겠죠.
다만 아쉽네요.
내가 즐거워도, 중2병 환자처럼 관심이 필요한거더라도.. 그리고 출판을 한다고 하더라도...
온전히 나만이 만든, 나만의 세상.
이건 내가 원조다. 이렇게 할 수 있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그리고 제가 지금 선택할 수 있는 건 하나밖에 없는 거겠죠.
미야모토 무사시, 단련.
천일동안의 연습을 단鍛이라고 하고,
만일동안의 연습을 련鍊이라고 한다.
천일동안 글을 쓰고..
다시 만일동안 글을 써봐야겠죠.
현실이 가로막지 않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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