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일 놈을 살려주면 글쟁이가 욕먹고 독자가 떠나버립니다.겪어봐서 압니다. 제 모 글이 그 사건 때문에 선작 수가 천 단위로 훅 줄어들었기에 너무나도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내글!
...은 농담 삼아서 하는 이야기고, 이샤님은 가장 근본적인 요소에 대해서 잠시 망각해버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소설은 어디까지나 가상의 시공간과 등장인물을 이용해 이야기를 구성하는 매체입니다. 서두에 굳이 '이 이야기 속 등장인물 및 사건은 허구이며, 특정 인물과 사건과 관련되지 않았습니다'라고 쓸 이유가 없을 정도로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상황입니다.
작가의 수족이 되는 등장인물이긴 하지만, 저는 단순히 인물들이 작가의 꼭두각시로서 존재하지만은 않다고 생각합니다. 가상의 공간과 상황을 부여하고 그 속에 등장인물을 구성한 이상, 그 인물들은 상황 속에서 움직이는 한계를 띄고 있습니다. 당연한 소리지만 등장 인물의 행동패턴의 한계치는 작가의 한계치를 넘을 수 없지만, 그렇다고 그 배경과 상황을 뛰어넘을 수도 없습니다. 작가의 손에서 창조되었지만, 엄연히 등장인물은 작가와는 다른 존재입니다. 그렇기에 등장인물은 그 배경 속에 구성된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거나, 혹은 그것을 기반으로 행동할 수 밖에 없는 법입니다.
대게 판타지 소설이나 무협에서 나오는 캐릭터들의 상당수는,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적인 세계'와는 다른 세계의 인물입니다. 당연하죠? 하지만 그런 그들이 과연 우리와 같은 사상을 가질 수 있을까요? 소설이라는 것을 과감히 무시하였을 때, '과연 다른 두 세계의 인물들의 사상과 행동이 서로 일치하거나 유사한 형태를 띌 수 있느냐?'라고 묻는다면... 글쎄요, 저는 일단 '그렇진 않다'라고 봅니다. 새로운 세계의 인물이라면 그 세계에 기반을 둬야 합니다.
물론 현실을 기반으로 형성된 유사현실 혹은 가상 세계이긴 하지만, 세계가 새롭게 구성됨에 따라 우리가 늘상 겪는 것이 '가상 세계'에선 전혀 생소한 개념일 수 있으며, 흔히 취급되는 도덕관이나 윤리관 같은 개념이 전혀 다를 가능성도 농후합니다. 물론 그것은 오로지 그 세계를 창조한 자의 생각에 따라 좌우되긴 하지만, 대부분 현실과 유사하되 세부적인 관념에서 다소 다른 노선을 띕니다. 이것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지요.
그를 기반으로 생각해보면, 이샤님은 오로지 '우리 세상'의 도덕 및 윤리적 관점으로 등장인물들을 살펴보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헌데, 그들은 '다른 세계'의 사람입니다. 다시 말해, 그들의 눈으로 이샤 님의 주장을 바라본다면 오히려 반감이 나올 수 있는 법입니다. 제 글의 등장인물들이라면 대충 이 정도로 말하겠군요.
'댁 목숨이 소중한 건 알지? 난 내 목숨이 제일 중요해. 다른 건 다 필요 없어. 뭐? 개과천선? 당신 시간 많지? 난 없어.'
'당연히 그 말이 옳지. 사람 목숨은 소중해요~ 라는 말 말이야. 그런데 말이야, 나한테 굉~장히 나쁜 일 하려던 녀석들을 보내주면 또 그런 짓을 하거든? 어, 그게 몇 번 정도 있었지? 한 여섯 번? 일곱 번? 뭐 대충 그 정도 되겠네. 아무튼 말이야, 네가 그런 마음 가지고 '앞으로 착하게 사실거죠? 그럼 안녕.'이라고 말하고 떠난 사람이 난데없이 칼 들고 쨘 하고 나타나는 걸 한 두세 번 정도 겪으면... 그 말이 쏙 들어갈거야.'
'내 검에 피를 묻힌 자가 스무 명 정도 되었을 때 까진 그런 고민을 했습니다. 제 동료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지만 그 고민을 계속 붙들던 이들은 이제 제 곁에 없습니다. 그걸 깨닫지 못한 사람들은... 이제 저세상에서 제 행동을 지켜보고 있지요.'
'어, 음... 참고하겠습니다. 예, 참고하지요. 그런데... 참고한다는 게 그냥 고려한다랑 같은 말이고, 그게 꼭 지키겠다는 소리는 아닙니다. 뭐... 에이 씨, 됐어요. 댁도 다 알잖습니까. 그런 소리 해 봤자 내가 들을 리가 없잖아요.'
일단 저들의 세계에선 그것이 정설이자 진리입니다. 물론 세계관이 그것을 허용하진 않지만, 적어도 등장인물들이 겪은 상황 속에선 그것이 사실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저런 말을 할 것이라는 걸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습니다.
대충 그런 겁니다. 등장인물들은 이샤님의 세계와는 다르며, 그렇기에 그들의 생각대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겁니다. 그들에게 삶의 고귀함과 인간애의 아름다움을 설파하신다는 것이 나쁜 건 아닙니다. 헌데, 그들이 과연 이샤님의 의견을 존중할 정도로 평온한 삶을 사는 건 아니잖습니까.
p.s 생각보다 인간은 사람의 죽음을 가뿐하게 여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영제국이 한창 해적이 들끓을 시절엔 항구 앞에다 해적을 교수형 시킨 뒤 타르를 발라(!) 대롱대롱 매달아서 오랫동안 말린 사례도 있습니다.
유럽 지역의 교수대는 으레 광장 쪽에 설치되어 있었고, 교수형이나 뭐 단두대형같은 걸 집행할 때 도시락바구니(!!)를 싸들고 관람하는 양반네들도 심심찮게 있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의 고유 문화인 망나니(...)의 경우, 본격적인 칼질 이전의 덩실대는 춤사위는 사형 이전의 일종의 피니쉬 피날레(...)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형식의 흥취를 돋보이게 하는 퍼포먼스랄까요...
인본주이니 인간성, 혹은 우리가 잘 알고있는 문명인스러운 사상은 비교적 최근에 발명(!)된 개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오히려 인간같지도 않는 놈은 쳐죽여야 제맛(...)이라는 사상이 인류 역사상 보편적으로 퍼져 있고, 그런 행위 자체가 칭송받은 시절이 훠어얼씬 깁니다.
이런 것을 보자면, 흔히 판타지나 무협의 시대적 배경을 고려했을 당시의 상황은 현 소설의 흐름인 '난 오늘 널 쳐죽일 거야!'는 그리 옳지 않다거나 한 게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약과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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