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가미 라그누아와 죽음의 보고서용지-
어느 날 저택의 서재로 향하던 라그누아 델피너스는 보고서용지 뭉치를 주웠다. 라그누아는 보고서용지의 표지를 눈여겨보았다.
‘죽음의 보고서용지.’
“살생부?”
설마 형의 것인가 의심했으나 곧 고개를 젓는 라그누아였다. 그의 형은 살생부에 적힌다면 모를까, 살생부를 적을 자는 아니었다. 게다가 어느 누가 살생부 표지에 떡하니 ‘죽음’이란 글자를 적어놓는단 말인가. 흥, 누가 이딴 장난을. 콧방귀를 뀐 라그누아는 종이뭉치를 하나하나 넘겨갔다. 누가 주인인지 단서가 있을까 살펴보기 위해서였다. 안타깝게도 종이뭉치는 백지였다. 허나 맨 마지막 장에만은 글씨가 빡빡이 채워져 있었다. 다 읽은 라그누아는 눈썹을 씰룩거리며 휴지통을 찾았다. 구석의 휴지통에 라그누아는 종이뭉치를 던져 넣었다.
“…….”
몇 걸음 앞서 나가던 라그누아는 곧 다시 쓰레기통 앞에 돌아와 종이뭉치를 꺼냈다. 이상하게도 호기심이 동했다. 혹시나, 하고 라그누아는 다시 한 번 글씨가 씌어진 부분을 읽어 내려갔다.
죽음의 보고서용지
사용법
1. 이 보고서용지에 이름이 적힌 인간은 죽는다.
2. 적을 인물의 얼굴이 머릿속에 들어 있어야 효과가 있다
3. 따라서 동성동명의 인물에게 한번에 효과를 얻을 수 없다
4. 이름 뒤에 인간계 시간단위로 40초 이내에 사인을 적으면 그대로 죽는다
5. 적지않으면 사인은 모두 심장마비가 된다
6. 사인을 적으면 다시 6분 40초의 자세한 죽음의 상황을 기재할 시간이 주어진다.
라그누아는 종이뭉치를 들고 서재로 향했다.
라그누아의 뒤로 누군가의 그림자가 길게 이어졌다. 그의 숨죽인 웃음소리가 라그누아의 뒷모습을 조롱했다.
라그누아는 복수심 반, 의혹 반으로 마음을 채운 채 펜을 들었다. 라그누아는 생기 없이 누렇고 넙적한 여자의 얼굴을 떠올리며 그녀의 이름을 적었다. 이름 뒤로 보고서용지에 적힌 대로 사인을 속필로 넣었다. 쓴다고 뻗대는 연작 때려 치고 라그누아 델피너스가 세계를 정복하고 왕이 되는- 라그누아 델피너스의, 라그누아 델피너스에 의한, 라그누아 델피너스를 위한 결말로 다신 없을 명작을 집필한 후- 자만심에 미쳐 죽는다.
라그누아의 입에서 기괴한 미소가 흘러나왔다.
-감히 이 나를 ‘돌쇠’라 비유했겠다?
신세계의 왕은 나다!
“크흐흐흐흐.”
원한으로 점철된 음침한 웃음소리가 어두운 서재를 침식하는 가운데, 등불은 라그누아의 유려한 필체를 비추었다. 라그누아가 적은 이름은 '모미‘.
서재의 문에 기대어 있던 할륜다는 요사스레 단호박을 깨물었다. 그의 길게 찢어진 홍채는 문 안의 라그누아를 비웃고 있었다.
“모미가 본명이냐, 등신아.”
어깨를 떨며 웃던 할륜다는 물컹거리는 단호박을 씹으며 피식 웃었다.
“인간은 역시 재미있어. 큭큭큭.”
※주: 본문과 전혀, 네버, 눈곱 만큼도 상관없는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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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 에실모니아. 여왕과 사냥꾼의 딸 오슈드는 아버지를 여읜 후 어머니에 의해 왕궁으로 끌려온다. 천공, 부유대륙, 해상- 삼계를 아우르는 오슈드의 치열한 투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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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여러분은 수업시간 동안 이루어진 뻘짓을 감상하셨습니다.
쐐기풀 왕관 1장. 푸른 달의 따님입니다.
많은 관심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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