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연참대전 예고편
화려한 장식으로 치장된 커다란 대전. 그곳에 있는 이에게 절로 위압감을 줄 것만 같은 고요한 침묵이 차갑게 공기를 짓누르고 있었다.
대전의 가운데에는 커다란 태사의가 있었다. 그곳에는 신선을 연상시키는 지긋한 인상의 노인이 몸을 뭍고 있었는데 그저 앉아만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절대자의 위상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렇다. 이 노인이야말로 강호에서 천외천이라 불리고 있는 고무림(高武林)의 문주, 무환천존(武幻天尊) 금강이었다.
“주군. 올해의 마지막 연참대전이 열리는 것도 이제 머지 않았습니다.”
금강문주의 옆에 서있던 복면의 남자가 조심스런 목소리로 그에게 말을 걸었다. 고무림의 우호법이자 외총관인 무관검(武官劍) 무판지기였다.
“...벌써 그렇게 됐는가.”
금강문주가 조용히 답했다. 그 목소리에는 의외라는 기색이 뭍어나왔다. 그간 이런저런 일로 바빴던 터라 미처 신경쓰지 못했던 것이다.
연참대전
강호의 하늘인 고무림에서 주최하는 명실공히 최고의 대회.
수많은 강호인들이 이 대회의 우승을 꿈꾸며 비할데 없는 고행의 길을 걸어간다. 상상할 수 없는 노력과 내공을 탕진하고서야 겨우 끝을 볼 수 있다는 죽음의 대회. 그러나 이겨낸다면 그 전과는 비교가 불가능한 명성을 얻을 수 있다. 명예를 하늘처럼 생각하는 강호인들에게 있어 이 이상의 기회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이번 대회의 참가자는?”
금강문주가 조용히 물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반대편에 서있던 면사를 쓴 여인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고무림의 좌호법이자 내총관인 은현자(隱賢者) 다라나(茶羅奈)였다.
“예. 이번 34명의 강호들이 참가를 표명했습니다. 물론 이것은 현재까지의 집계이며 변할 가능성도 간과할 수 없습니다.”
다라나 내총관은 잠시 말을 멈추더니 곧 참가자의 이름을 차례차례 언급하기 시작했다.
“우선 정파에서는 천애홍협의 흑로, 강시질풍록의 요도, 해남번참의 사초, 칠혼귀검의 천인강, 옥면사협의 초파랑, 고구려의 혼의 가나, 일위강의 일륜, 화랑세기의 진무령, 천하제일 문제아의 초작이,
사파에서는 아스크의 김백호, 더 세컨드 플로어의 가람해우, 특무전략기관의 슈리오, 데블마스터의 함동운, 백토지오제의 YUME, 에스카샤의 사란, 순례자의 너럭바위, 형제의 세오르, 리보니아 사가의 김낙연, 이계태자 해명의 류해명, 레드사이드의 지티, 카오스엠블렘의 가요메르크, 본좌는 어려서부터 영민하였다의 파란미르가
마도에서는 바톤카이토스의 슈바르츠, 무림질풍록의 그리즌, 학살자의 사마루, 리바이어던의 초보운디네
세외에서는 탈영병의 무벽성, 최강의 가디언의 깨달음, 더 파이트의 새드무브, 이터널의 용우, 체술무적의 김형석, 파괴자의 넬드라드, 아카식 레코드의 박성인, 쉐도우 댄서의 정순명까지.
이렇게 34명의 고수들이 각각 참가의 뜻을 밝혔습니다.”
다라나 내총관의 긴 설명이 끝났다. 금강문주는 그녀가 말한 이름을 차례차례 되새기더니 흥미롭다는 기색으로 입을 열었다.
“정파가 아홉에 사파가 열셋, 마도가 넷에 세외의 무리가 여덟이라... 이번엔 사파가 강세로군.”
“다소 염려스러운 부분이 없잖아 있습니다만.”
“무슨 말이오, 외총관. 이것은 아주 바람직한 현상이오. 우리 강호에 뿌리깊게 퍼져있는 정파제일주의도 이제 사라질 때가 되었소. 시대는 변했소. 아니 변해갈 것이오. 보다 발전하기 위해선 서로가 화합하고 함께 나아가야 함이 무엇보다 중요하오. 정파든 사파든 마도든 세외든 가리지 않고 함께 나아가자는 것이 우리 고무림의 취지 아니오.”
“그렇군요.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용서하십시오, 문주님.”
금강문주의 말에 깊은 깨달음을 얻은 듯 무판지기 외총관이 탄복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금강문주는 흡족하게 웃으며 손을 들어올렸다. 그러자 숙여졌던 무판지기 외총관의 고개가 다시 들어올려졌다. 금강문주가 뿜어낸 공력이 그의 얼굴을 다시 들게 한 것이다. 참으로 놀라운 공력이 아닐 수 없다.
금강문주가 말했다.
“그 얘기는 이만 접기로 하세. 그래, 외총관. 이번 대회는 누가 유력할 것이라 보오?”
“이번 대회 말씀이십니까....”
금강의 질문을 받은 무판지기 외총관은 고심하는 얼굴로 입을 다물었다.
연참대전은 비무대회가 아닌 내공과 인내, 그리고 스스로가 깨친 심법의 완성도로 승패를 가리는 대회였다. 내공과 인내가 받쳐준다 해도 그 날의 심득이 부족해 탈락해간 자들이 그간 얼마나 많았던가. 쉽게 대답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었다.
“제 사견으론 지난번 대회에서도 살아남은 슈리오, 김백호, 세오르, 가요메르크 이 네 명이 가장 우세하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특히 세오르는 이번이 세 번 연속출전이라 기대가 적지 않습니다.”
무판지기 외총관의 말에 다라나 내총관이 이의를 제기했다.
“과연 그럴까요? 그들이 저번 대회에서 살아남기야 했지만 지닌 힘을 다 써버렸을지도 모릅니다. 그간 힘을 비축했을지도 모를 다른 참가자들에 비하면 다소 불리할 것 같습니다만.”
다라나 내총관의 말에 무판지기 외총관이 말을 삼켰다. 설득력 있는 얘기였기 때문이다.
“흐음.... 그렇다면 이번 대회의 변수는 무어라 생각하시오?”
금강문주의 물음에 다라나 내총관과 무판지기 외총관이 말을 멈췄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곧 당연하다는 목소리로 동시에 입을 열었다.
“역시 성탄절이라는 세외의 명절이 아닐까 합니다. 그 날을 기준으로 상당한 탈락자가 나올 거라고 예상됩니다.”
“성탄절? 세외의 명절이 우리와 무슨 상관이길래?”
“모르시는 말씁입니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이미 세상은 세외의 명절에 지배당한지 오래입니다.”
“특히 그 성탄절이라는 날의 바로 전날에는 연인들이 세상의 축복을 한몸에 받은 마냥 거리를 활보하고 다닙니다. 그 때문에 연인이 없는 자들에게서 해마다 자자한 원성이 들려오고 있지 않습니까.”
“음. 그 얘기라면 들은 적이 있소. 연인이 없는 자들은 집안에서 시린 옆구리를 달랜다는 얘기였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소.”
“그렇습니다.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무판지기 외총관의 어조는 확고했다.
“특단의 조치라... 그렇다고 우리들이 나서서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잖소, 외총관.”
“그렇습니다만... 이대로 놔둔다면 우리 고무림의 식구들이 어떤 마음으로 세외의 명절을 보낼지... 통탄스럽기 그지없습니다.”
“그것도 그렇구려. 그렇다면 이런 건 어떻소?”
비책을 떠올린 듯한 금강문주의 한 마디에 무판지기 외총관과 다라나 내총관의 시선이 그를 향했다.
금강문주는 아주 담담한 말투로, 그러나 단호하게 말했다.
“그 날에 한해서 연참대전의 합격선을 세 배 올리도록 하시오.”
연참대전 특별기획 웃자고 만든 글. 솔로의 분노도 쬐끔 담겨있습니다.
PS. 이 글에 나오는 세 분의 이름, 성격, 외모, 대인관계 등등은 실제와 하등 관계가 없습니다. 착각하시면 곤란해용.
PS2. 고무판이 아닌 고무림인 이유는 고무림(高武林)이기 때문.(--;)
PS3. 연참대전 하시는 여러분 힘내세요.^^
(나참. 내 글 안쓰고 뭐하는 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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