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나태한 악마
작품명 : 얼음나무 숲
출판사 :
나태한 악마님의 <얼음나무 숲>은 시리도록 새하얀 겨울 이미지 속에서 한 가닥 선율이 읽는 이의 심장을 쥐락펴락 하는 뛰어난 환상소설이다. 이제까지의 판타지가 정형화된 틀 속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스스로의 한계에 부딪쳐 추락하고 있었다면, <얼음나무 숲>은 확실하게 작품성과 대중적인 인기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며 판타지에 대한 희망을 되살릴 수 있게 해주는 작품이었다.
이 소설은 캐릭터나 전개, 구성방식에 이르기까지 독자의 예상을 가볍게 뛰어넘으며 보다 상상할 수 없는 영역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데 탁월한 솜씨를 보인다. 독자는 첫 문장을 읽으면서부터 벌써 그 담담하고도 애수 어린 필체에 천천히 빠져 들어갈 것이다. 시작부터 연재된 후반까지 문체의 느낌이 같은 분위기를 유지하면서, 점점 절정으로 치닫는 이야기는 여타의 판타지에서는 볼 수 없었던 치밀한 구성방식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천재 바옐과 그를 동경하는 고요. 천재와 천재가 아닌 자. 모차르트와 살리에르를 연상시키는 이 소설의 인물들은, 그러나 점점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전혀 다른 양상을 보여준다. 고요는 바옐에 대한 질투로 점점 어두워지고 비참해지기보다는 순수하게 따뜻하게 그를 동경하며 스스로의 수준도 높여나간다. 고요가 후에 바옐과의 대화에서 진실을 알고 자기 내면에 고여 있던 더러움을 알게 되었을 때의 심리묘사는 그리하여 보다 확실하게 독자의 마음에 닿게 되는 것이다.
처음, 어린 고요와 바옐, 트리스탄이 만나고, 세 사람이 성장하여 음악가가 되기까지의 전개는 판타지가 아니라 순수소설을 읽고 있다는 착각이 들만큼 현실적이고 정교했다. 그래서 얼음나무 숲이 실제로 나타났을 때 그 환상적이고 절묘한 광경은 당연한 듯 마법을 부리는(“이얍!” 콰쾅! “헉, 저건 전설로만 듣던 12서클 마법?!”) 다른 소설과 확연하게 차별화된다. 판타지여서 정말로 다행이다, 고맙다, 라고 새삼 느낄 수 있게 해 준 작품은 <얼음나무 숲>이 처음이었다. 그 잔인하고 아름다운 얼음나무 숲은 매일 먹는 밥처럼 진부해진 ‘환상’을 섬뜩하게 되살려준다.
에단을 세운 전설적인 인물 익세와 그가 사랑하던 나무는 예술가와, 영원한 아름다움을 상징한다. 에단에 사는 이들은 하나같이 음악에 깊이 몰두해 있으며 음악이 가진 가치에 전율하고 미쳐간다. 예술과 광기. 그만큼 서로 깊은 상관관계를 가진 단어가 또 있을까? 평범한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세계에 살면서 특별한 것을 창조해 내는 예술가는 역사 속에서 흔히 ‘광인’으로 묘사되곤 했다. 판타지는 근래에 와서 좁은 시장과 작품의 낮은 수준성 등으로 많은 비난을 받아왔으나, 본래의 환상문학이란 당시의 사회를 가장 통렬하게 비판하고 뒤엎는 가장 아름다운 혁명이라고 생각한다.
‘단 한 사람의 청중’을 바라는 바옐은 예술의 본질을 대표하는 인물이라 볼 수 있다. 그의 천재성은 단지 하늘이 내려준 기적으로만 묘사되지 않고 뼈를 깎는 노력과 고통에 의해 이룩된다. 그 누구의 손길도 거부하며 스스로의 세계를 추구해 나가는 바옐이 바로 ‘얼음나무’ 같다는 생각을 하면 좀 지나친 비약일까? 그의 소망이 과연 이루어질 수 있을지, 끝내 좌절되어 얼음나무처럼 스스로 불타오르게 될지는 뒷날 책에 나올 완결편에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예언가 키세를 사랑했지만 비참하게 죽고 마는 트리스탄이야말로, 실은 이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등장인물일 것이란 예감이 든다. 트리스탄은 고요와 바옐을 둘 다 이해하며 그들이 고난에 처할 때 따뜻하게 위로해 주는 인물이었지만, 결국 그 누구에게도 자신의 아픔을 알리지 않고 죽음에 이르게 된다.
천재와 천재가 아닌 자가 아닌 세 명의 각기 다른 천재들. 그들의 이야기는 잔혹하고 공포스럽지만, 그 밑바닥에 인간에 대한 따뜻한 온기와 슬픔이 깔려 있다.
읽을 수 있게 되어 정말 ‘행복했다’. 앞으로 이런 소름 끼치는 감동을 주는 소설을 찾기는 힘들 것 같다. 여러 가지 잘못 이해한 부분도 있으리라 생각하고, 전혀 엉뚱한 감상을 늘어놓았을 수도 있지만 부디 너그럽게 아량을 베풀어 주시기를.
결론 : 아찔한 음악이 사람의 심장을 후벼 파놓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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