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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에 관련된 감상을 쓰는 곳입니다.



작성자
SanSan
작성
07.10.11 10:09
조회
2,874

작가명 : 판탄

작품명 : 제이 코플래닛

출판사 :

기갑물이라는 장르는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묵향은 재밌게 읽었지만 그것 뿐이었고, 나이트골렘도 재밌게 읽었지만 그것 뿐이었다. 기갑물의 무게에 눌렸다고 해야할지... 재밌다는 사실 자체에 딴지를 걸 생각은 없지만, 기갑이라는 소재에 얽매여서 이야기가 한계 지어진 것도 명확한 사실이다. 기갑물이니까 기갑에 집중하는 게 당연하지 않느냐 하면 물론 당연하다. 그러나 모든 이야기가 그것 중심으로 돌아가버리니 이야기가 풍성하지 않달까, 내 성에는 차지 않는다.

제이 코플래닛을 빌릴 때만 해도 그닥 기대하지 않고 보았다. 처음 격투장 이야기는 좀 흔한 소재다보니 에휴, 한숨을 내쉬면서 읽기 시작했다. 읽다보니 독특한 설정이 조금씩 보였다. 지원팀의 존재라던가 체조를 하며 적응도를 높이는 부분이라던가. 그때부터 '오 조금은 다른가보네' 하는 느낌이 들어서 자세를 고쳐잡고 읽기 시작했다.

이야기가 조금 진행되어, 알고보니 주인공 제이는 돈에 얽메인 해방노예라는 것이었다. 이런 구도에서는 돈 버는 이야기가 주가 되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해서 돈 벌고 저렇게 해서 한몫 잡고 그러다보면 이야기가 데굴데굴 구르면서 눈덩이처럼 불어나서 세상의 운명을 등에 걸머지게 되는 거다. 난 그런 진행 너무 싫어하고,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랬다. 아니더라. 단지 도입부일 뿐이었다.

현재의 제이가 가진 성격을 형성시킨 근간이 되는 과거의 사건이 철저하게 가려져있고, 또 현재의 그를 구속하는 마호른의 속셈도 거의 드러나 있지 않기 때문에 큰 맥락은 알 수 없다. 그러나 어쨌든 제이는 살아남고자 하고, 살아 남아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고자 한다. 그래서 용병단에서의 제이의 삶은 계속된다.

곳곳에서 범상치 않은 깊이가 느껴졌다. 사소한 설정 하나에도 많이 고민한 흔적이 역력했다. 세상에는 여러 부류의 소설이 있다. 설정도 세계관도 없이 그저 이야기만이 존재하는 소설이 있고, 이야기를 이어가기 위해 필요한 만큼만 설정을 만들고 세계를 짜는 작품이 있고, 세계관과 설정을 통해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들고자 하는 소설이 있다. (물론 더 나아가서 하나의 세계 자체를 만들어내는 이영도님, 전민희님 같은 분들도 있지만)

요즘 나오는 소설의 반 정도는 첫번째 경우고, 나머지 반의 대다수는 두번째 경우다. 두번째 정도만 잘 해도 충분히 괜찮은 소설이다. 그리고 제이 코플래닛은 세번째 경우다. 이 소설의 세계관은 아름다운 장미 하나를 장식하기 위한 안개꽃이 아니라, 풍성하게 피어난 색색의 다른 장미들이다. 그 자체만으로도 이야기를 살찌우는, 작가의 창의성과 세심함을 보여주는 증거다.

타이탄에 대한 설정은 필요한 만큼 상세하지만 또한 불필요할 정도로 거기에 구애받고 있지는 않다. 출력이 어쩌고 전설의 타이탄이 어쩌고 하면서 기갑물 파워싸움으로 단순히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타이탄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이 세계에서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만들어 내기 위해 타이탄을 써먹는 모습이었다. 즉 기갑물에 흔히 보이는 지나칠 정도의 타이탄 위주 전개가 없었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조금 냉혹무비하다. 왜냐하면 이 세계는 판타지 세계이고, 그 중에서도 살벌한 용병들의 세계이며, 그 속에서 살아가는 제이의 정신세계는 여타 용병들 이상으로 차갑고 메말라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제이가 보여주는 이야기가 따스한 빛으로 가득찬 오색빛 세상일 리가 없다. 지극히 현실적인 생존원리, 이기논리에 의거해서 돌아가는 세계인 것이다.

개인적으로 무척 마음에 들었다. 용병이라면서 용병인지 모험가인지 자선사업가인지 그도 아니면 개그전담 캐릭터인지 알 수 없는 이들만 보다가, 정말로 용병다운 가치관에 입각해서 살아가는 생생한 풍경을 보게 된 것이다. 인간적인 감정은 있으나 자기 생명이 우선이며, 가끔은 감정으로 행동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이익을 좇는다. 특히 제이같은 경우는 매우 강렬한 열망을 갖고 있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뭐든지 할 수 있는 인물이기 때문에 더욱 두드러진다.

이런 제이를 단순한 냉혈한으로 만들지 않는 것이 또 이 소설의 장점이다. 분명히 차갑지만, 깊은 곳까지 얼어붙어 있는 것은 아니다. 가끔은 알 수 없는 이유로 녹아버리고, 그 감정에 스스로 분노하지만 그래도 끝까지 부정하진 않는다. 아모란이란 귀여운 의녀의 존재는 얼음에 뿌리내린 꽃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고 또 아주 녹아내리는 것은 아니라서 극히 이기적이며 차가운 성정 역시 그대로다. 가끔은 '좀 심하군 -_-' 싶을 때도 있을 정도로.

마음에 안드는 점이 아주 없진 않았다. 예를 들어 2권까지 내용에서 가장 큰 줄기를 차지하는, 귀족가의 관심 돌리기 공작. 이거 사실 사소한 귀족가와의 다툼에서 벌어진 것이다. 만의 하나라도 들키면 아주아주 귀찮아 질 것은 용병들도 알고 있었을 테고, 실제로 완벽하게 처리 못해서 무진장 귀찮은 사태가 되었고 엄청난 희생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 모든 사건의 시작은 '그저 밤에 야영지를 양보할 수 없어서'였다.

물론 그럴만 한 상황이었지만. 신경은 엄청나게 날카로운데 이상한 놈이 와서 힘들여 만든 야영지를 다 달라고 하니 열은 받고 버릇은 가르쳐주고 싶겠지. 하지만 후환이 엄청난 것이다. 거기에 적들은 나름 강한 전력을 보유하고 있었고. 내가 느낀 제이의 성격이라면 먼저 양보를 하는 척 하며 정보를 좀 더 뽑아보고, 후환이 없을 만한 상대라면 슥삭해버리는 편이 자연스러워 보였다. 결국 하룻밤을 따뜻하게 보내고 화풀이를 하기 위해서 행한 일이 엄청난 수의 인명을 죽이고 많은 이를 위험하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오지 않았는가.

스토리는 작가 마음이니 왈가왈부할 순 없지만, 이 부분만큼은 좀 위화감을 느꼈다. 이 외에도 사소한 부분은 조금 걸렸으나, 전체적으로는 근래 본 작품 중 손에 꼽을 만한 수작이다. 단순히 타이탄들 숫자 싸움하고 졸라짱쎈 주인공이 몇십기 격파하며 영웅이 되는 그런 소설이 아니라, 잘 짜여진 세계관 위에서 리얼한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 멋진 소설이다. 약간 취향은 탈 것 같지만(그다지 대중적인 주인공상이라곤 할 수 없다) 제이의 행동을 이해하고 그의 감성에 동조할 수 있다면 멋진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http://blog.naver.com/serpent/110021999967


Comment ' 4

  • 작성자
    Lv.92 심검
    작성일
    07.10.11 16:10
    No. 1

    힘없이 유랑하는 집시들을 이용하는 장면보고 흥미가 너무 떨어지던데 말이지요.. 1권보고.. 제대로된 다크포스의 주인공이구나 하고 망설임없이 2권을 뽑았는데 마음착한 유랑민 제대로 이용해먹고, 그것 때문에 유랑민들 죽어나가는 걸보니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습니다.
    다크포스의 주인공을 좋아하는 편이지만 다크포스가 이런식으로 표현되니까 이건 좀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산아이
    작성일
    07.10.11 17:27
    No. 2

    심검님 그게 바로 취향입니다.
    글의 완성도와는 관계가 없는 취향의 문제이지요.
    개인적으로 최근에 본 소설 중에 제이코플래닛 만큼 짜임새 있고 깊이 있는 책을 본 적이 없습니다.
    (어린 학생들에게는 조금 안 맞을지도 모릅니다.)
    얼른 3권이 나오기를 기다려봅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누룽지탕
    작성일
    07.10.11 19:31
    No. 3

    글 잘읽었습니다. 한번 읽어봐야 겠네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57 wildelf
    작성일
    07.10.12 00:13
    No. 4

    추천 쾅하고 갑니당~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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