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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Lv.3 꼬부방
작성
14.02.25 06:40
조회
7,307

작가 : 김재한

출판사 : 로크미디어

 

  저는 수 년째 판타지 소설을 읽어왔습니다. 그러다보니 언젠가부터 판소를 읽어도 감동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건 다른 분들도 마찬가지고, 어쩌면 어느 분께서는 소설을 읽으면서 무슨 감동 타령을 하냐고 오글거린다고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예, 그럴 수도 있겠죠. 하지만 감동하지 않는 소설이라는 건 어찌보면 참 이상한 겁니다. 소설이란 게 인간의 정서적인 면에 기대서 (장르든, 순수문학이든) 결국은 독자에게 카타르시스를 일으키는 것인데, 그것을 느끼지 않는다는 건 어찌보면 제게 있어서 예선 탈락 같은 거랄까요, 마라톤의 중도 포기 같은 거죠.

  요 근래, 한 3년 동안 그랬습니다. 예. 잘 모르겠더군요. 판타지를 좋아해서 판타지만 거의 읽는데, (무협은 문외한입니다) 문피아에서 베스트가 되어서 출간된 작품도 결국은 음 용두사미랄까요, 중반이 되면 거의 90% 하차합니다. 오히려 하차하는 게 마음이 편한 적이 굉장히 많았어요. 사설로 들어가자면, 얼마 전에 라디오를 하나 들었습니다. 최근 현대문학상을 수상하고 거절한 황정은 소설가와 김두식 평론가 이 두 사람이 진행하는 라디오였는데요. 김조광수 영화감독이랑 변영주 감독이 게스트였습니다. 거기서 변영주 감독이 어찌보면 문학계의 대표적인 젊은이라고 할 수 있는 두분에게 화난 목소리로 얘기하시더군요. 자기가 굉장히 문학계에 대해 분노를 느끼는데, 그 이유는 그쪽에서 장르문학을 무시하는 경향 때문이며 그 때문에 한국문학이 재미없게 느껴진다고요. (듣기로는 변영주 감독은 장르문학 마니아로 보였습니다) 이런 말에 대해 라디오 상으로는 실제 얘기가 오가지 않았으나, 분위기를 보아서 저는 그 대답이 ‘작품의 수준’이라고 답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수준. 이거는 과거 DB를 뒤져봐도 수많은 분들께서 논하셨던 논제이겠죠. 저는 더 이상 이에 대해 길게 말할 생각은 없지만, 저 개인으로서 생각을 말하자면 저는 확실하게, 수준은 모르겠으나 판소가 결말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에서 독자를 상당히 답답하게 하고 실망시키는 데 이미 질려 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소설이라는 건 의외성의 연속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독특한 상상력이 주 전개력인 판타지소설에서는 더더욱 해당하는 말이겠지요. 하지만 요즘 쏟아져나오고 출간되는 판타지소설에서 더이상 의외성은 찾아볼 수 없었고, 그 때문에 저는 그저 중학생 때 읽고 무한히 좋아했던 순간의 향수 때문에 계속 이 사이트를 들락거리고 판소를 읽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정말 사설로 길게 빠졌는데, 그런 면에서 <사이킥 위저드>는 예, 정말 흔한 설정을 따왔습니다. 이능력자가 판타지 세계에 뚝 떨어졌다. 그런데요, 저는 이게 굉장히 의외성이 있어 보였습니다. 왜일까요? 여러분은 의외성이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문장 하나로 독자의 눈을 사로잡을 수 있는 건가? 글쎄요. 저는 ‘디테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현실의 세상은 지구 하나고 대한민국 하나죠. 하지만 장르 작가분들이 생각할 수 있는 세계는 무한할 것입니다. 제가 감히 상상할 수는 없지만. 하지만 무턱대고 작가분들께서 독자들에게 ‘나에게 이런 세계가 있어’라고 해봤자, 독자는 고개를 갸웃거립니다. 하지만 작가분들이 ‘이런 세계’에 대한 디테일을 부여하는 순간, 독자는 정신을 차리고 그 소설을 열심히 읽게 됩니다. 이런 게 바로 의외성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사이킥 위저드>는 이런 디테일이 굉장히 잘 설정되어 있었습니다. 어느 정도 중박을 친 소설들이 그러하듯이요. 저는 판타지 세계에서 시작하는 이 소설이, 현실세계에서의 디테일을 세부적으로 설정한 채 시작한 순간 아주 흥미롭게 다가왔습니다. 예, 이런 이계물은 현실보다는 사실 과거가 중요합니다. 주인공과 그리고 작품 전체를 지탱하는 게 바로 과거의 기억이니까요. 과거가 모호하고 판타지세계가 확실하다면 그건 이계물로서의 특성을 전혀 살리지 못하고 있는 겁니다. <사이킥 위저드>는 인물의 과거와 능력, 관계 등을 아주 디테일하게 잡고 들어왔고, 그렇기 때문에 설득력 있어 보였습니다. 작품의 틀적인 부분에 대해 논하자면 저는 이런 점이 굉장히 좋게 다가왔습니다.

  이런 점들 때문에 초반은 굉장히 흡입력 있었습니다. 정말 빠르게 앞부분을 읽었지만 사실 중반에 조금 흔들렸던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장편소설이라는 특성상, 그부분은 사뿐하게 넘어가며 제가 강력하게 주목하고 싶은 건 결말을 깔끔하게 마무리지었다는 사실입니다. 김재한 작가님의 최근작인 폭염의 용제를 읽었으나, 사실 저는 이 작품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 작품 중후반에 나오는 우주 세계 얘기가 너무 길었고, 그 얘기가 꼭 필요했나? 이런 의문이 들 정도로 너무 허무맹랑한 묘사 때문에 작품의 탄력이 사라졌다고 생각이 됩니다. (제 생각입니다) 저는 이 작품도 그렇게 될까 노심초사해 하며 읽었지만, 이 작품에서는 인간의 악의적 감정의 집중이라고 할 수 있는 ‘유세리아’에 집착을 하더군요. 이 소설을 읽으신 분들이라면 끝까지, 강신혁이 두는 수가 대체 뭐지? 이런 고민을 끌어안고 달려오셨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환생이며 결국은 자신의 능력으로 인한 비극에서 비롯된 감정인 증오, 미움 등과 자신을 이분화하려는 작업이었다는 것을 공개하며 또 그것을 성공시킬 때 손바닥을 딱 치셨으리라 생각됩니다. 저는 이 부분이 이 소설의 결말을 부각해줬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강신혁이 세계를 무한히 파멸시키는 마왕 등으로 진화했다면 이건 뻔한 얘기지만, 인간의 어두운 감정을 집약한 존재로 유세리아를 내세우며 또 그것과의 분리라는 도박에 성공한 강신혁의 이야기는 꽤 감동적으로 다가왔습니다. 강신혁은 소설 막바지에 이르러선 의적으로 활동하는데, 뻔한 파멸로 스스로를 이끌지 않고 긍정적인 의미에서 ‘진화’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어쩌면 가장 빛이 나는 등장인물로도 보여집니다. 리르메티나 다른 것 등등도 충분히 빛이 났지만, 저는 강신혁이라는 존재가 환생했다는 것 자체로도 충분히 의미있게 다가왔고, 그로 인해 이 소설 결말이 무척 따스해보였습니다. 자세하게 부각이 되지는 않았지만, 마인이라는 끔찍한 존재로 변해가며 무수한 살인을 저질러가면서도 스스로의 환생을 꿈꾸고, 희망을 버리지 않은 것이니까요. 그로 인해 벌어진 엄청난 사상자는 절대로 용서할 수 없는 것이겠고, 사실 그렇기 때문에 마지막에 의적 활동을 하게끔 작가가 설정한 듯 싶지만 이걸로는 터무니없이 부족하죠. 평생을 사죄하며 살아가야 하죠. 뭐 이런 사소하지만 조금 큰 아쉬움을 재쳐놓더라도, 그냥 인위적인 따스함이 아닌 따스함은 판소를 읽으면서 오랜만에 느낀 듯 합니다.

  제가 <사이킥 위저드>를 굉장히 마음에 들어 하지만, 그렇다고 이 소설이 엄청나게 완벽하다거나 대단하다거나 그런 건 아닙니다. 전개적인 지루함이 중반에 있고, 그렇기에 퇴고가 잘 거쳐진 깔끔한 작품은 아닙니다. 작가분께서 다시 읽으신다면 나중에 쳐낼 문장과 장면이 무척 많으리라 생각됩니다. 하지만 원래 소설은 이런 사소한 단점보다는 장점이 크게 부각되는 게 아니겠습니까. 솔직히 결말이 소설을 8할은 살렸다고 보네요. 따라서 전개의 깔끔함이라던가 문장의 유려함 같은 건 찾아보기 힘들지만, 오랜만에 제가 읽은 감동을 한 판타지소설이라는 점에서 저는 개인적으로 별점 9점이라도 주고 싶네요. 정말 이상한 소설이 물처럼 쏟아져 나오며, 이제는 그들마저도 출판되지 않고 e-book으로 빠지는 실정에서 이런 작가분께서는 조금 더 스스로를 갈고닦아 좋은 소설을 많이 써주셨으면 합니다.

 

ps. 너무 길고 장황한 내용이 되었네요. 생각을 정리하자고 쓴 거라 별로 상관은 없지만... 다른 분들은 스크롤부터 내리실 듯. ㅋㅋㅋ 제가 너무 진지 빤 듯 하네요.


Comment ' 7

  • 작성자
    Lv.8 과일즙
    작성일
    14.02.25 11:10
    No. 1

    무난한 작품을 팍팍 쓰셔서 꾸준한 인기가 있는 분이죠. 특유의 일본풍느낌때문에 호불호가 갈리기는 하는데 저한테는 괜찮은 수준입니다. 현재는 E-book쪽으로 가버리셨죠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탈퇴계정]
    작성일
    14.02.25 14:47
    No. 2

    유명작가들 대부분이 인터넷연재 ebook으로 전환된상태죠
    모작가님은 1주일에 3작품 연재하시는분도 있으니 뭐...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28 김재희
    작성일
    14.02.25 14:57
    No. 3

    님이 말씀하신 강신혁 스토리 떄문에 진성이가 주인공 소리를 별로 못들었다죠......

    개인적으로 초반에 나온 현대의 설정이 꽤나 마음에 들었고 진성 일행이 지구로 돌아감므로 사이킥 위저드 2부격으로 현대물 써주시면 안될까 생각이 들었죠.
    하지만 작가님은 그런 생각 없으시다 했으니.....안될꺼야 아마....ㅠㅜ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57 높새
    작성일
    14.02.26 21:55
    No. 4

    글 퀄리티도 좋은데다가 연재속도 때문에 정말 강추하는 작가분...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4 바스레이
    작성일
    14.02.27 09:57
    No. 5

    개인적으로 김재한 작가님 소설 좋아합니다.
    일본풍 느낌이 나서 싫어하는 분들도 상당히 많은 작가님인데요.
    마검전생, 폭염의용제, 성운을먹는자, 용마검전, 소드시커, 워메이지 전부 재밌게 읽었고
    또 재밌게 읽고 있습니다.
    작가 이름만 보고 작품 선택에 있어 주저하지 않게 만들어주는 몇 안되는 작가라 봅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72 또다른내일
    작성일
    14.02.27 16:12
    No. 6

    요즘 이분 연재하는 소설이 뭐가 있는지 아시는분 계시면 알려주심 고맙겠네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99 가위창세
    작성일
    14.03.15 17:28
    No. 7

    요즘 성운을 먹는자랑 용마검전 연재중이십니다. 연재 장소는 현재 유료사이트 몇군데서 하시는걸로 알고 있습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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