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물로 모니터로 보는 것과 책으로 보는 것은 전혀 틀린 맛을 냅니다.
전체적인 시야에서 글을 판단하기에 적절하지요.
청룡만리는 이 작가의 데뷰작입니다. 데뷰작이란 작가가 세상에 하고 싶은 말이 오롯이 담겨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대로 된 데뷰작이라면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봅니다.
그저 시장의 추세에 휘둘려 맞춰나가기만 한 글이라면 다음 작품을 기대해 볼 수 없지요.
고무림에 오고 얼마 안되어 이 글에 대한 감상문을 쓴 적이 있습니다.
'진지하게 본 청룡만리'라는 제목이었죠. ^^
전 글을 보고 잘 웃지 않습니다. 웃음을 잃었다기 보다는 웃기는 글을 발견하기가 힘들어지니까요. 웃음이란 뒤통수를 후려치는 의외성에서 나오는 법인데 웃기는 글의 수법에 닳고 닳았다고 할까요? ^^
'청룡만리'는 무척 발랄한 글입니다.
청룡 주변의 등장인물들이 빚어내는 상황의 의외성과 부조화가 웃음을 가져다 주지요.
그래서 세간의 평들이 '무지 웃긴 소설'입니다.
그러나 청룡에 주목해서 보게 되면 이 소설은 전혀 다른 냄새를 풍깁니다.
굉장히 비극적이죠.
청룡은 이제 승천을 앞둔 초월적 존재입니다. 하지만 인간세에 대해서는 무지하지요.
인간세의 그 복잡한 인과의 은원의 고리를 청룡은 모릅니다.
천 년을 살았어도 자신만의 호수세계에서 자신을 해치러 오는 인간들과 투쟁하며 성장한 청룡에겐 일간 당연하다 하겠습니다.
청룡을 둘러싸고 마라황성궁의 거대한 음모 또한 진행중이죠...
청룡이 잊지 못하고 있는 항아가 과연 청룡을 사랑했는지도 의문입니다.
어쩌면 청룡은 헛다리를 짚고 이백년을 헤매고 있는 지도 모르지요.
승천을 앞둔 절대무상의 존재이면서도
자신을 괴롭히는 인간들의 음모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자신이 진정 사랑한 인간이 자신을 사랑했는지도 애매합니다.
청룡에게 있어 삶이란 무슨 의미를 가질까요?
장자의 호접몽 이야기가 아닐지라도 청룡의 삶은 무상한 꿈과 같기 쉽상입니다.
허탈한 비극의 냄새가 난다고 할까요?
그가 정을 준 인간들도 결국은 그를 배반할지도 모릅니다.
마음을 준 상대의 배신만큼 참담한 슬픔도 없을 겁니다.
그러나, 청룡만리는 그런 비극의 냄새를 명랑한 필체와 자극적인 상황 설정으로 슬쩍 비켜가고 있습니다. 가려져 잘 보이지 않지요.
전에 쓴 감상문에서 청룡이 작가의 페르조나가 아닐까 한 적이 있습니다.
청룡의 결말이 해피엔딩은 아니더라도 편안한 것임을 바라마지 않습니다. ^_^
웃는 가운데 삶의 역설을 발견하고 싶은 분들에게 이 책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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