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력 2222년이 눈앞에 다가오고 있었다. 16세기의 혁명기 이후에도 남부 대륙을 중심으로 한 전 대륙은 수많은 사건, 그리고 전쟁을 겪어가며 급변을 멈추지 않았다. 신화 시대의 종말으로부터 쌓여져온 국가 간의 응어리들은 전쟁이란 모습으로써 화려하게 그 모습을 드러내었고, 누군가의 말대로 발전의 원동력이 된 전쟁으로 인해 대륙의 문명은 산업 시대에 견줄 만큼 빠르게, 그리고 오랫동안 발전해왔던 것이다.
그런 학생들의 머리를 괴롭히는 여러 가지의 역사들이 있었지만.
역사가, 음유시인, 문학가들은 전부 입을 모아 16세기의 혁명기를 칭송하기 바빴다. 전혀 차원이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등장과 젊은 왕자의 과격한 반란. 무모하지만 그래서 더욱 흥미를 가지게 하는 레이니아의 전쟁 기록 등.
남부 대륙의 근현대사 점수보다 혁명기 시대를 다룬 시험 점수의 평균이 훨씬 높다는 것만 봐도 그것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이미 사오백년은 지난 일이었지만 누군가가 쓴 소설이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것 같이 재미있는 혁명기의 이야기들에 사람들이 흥미가 없을 리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제국력 2222년 2월 22일. 에르네스트는 매우 흥미가 가면서도 등골에 소름이 돋을 수밖에 없는 비범한 물건을 발견하게 되었다.
[에르네스트 & 리오네르 전기]
에르는 설명서를 들고 있는 손을 벌벌 떨면서도 그것을 계속 읽어나갔다.
"플레이어 캐릭터로써는 리오네르와 에르네스트를 선택할 수 있으며 각각 별개의 시나리오가 진행됩....으아아아아악!!"
자신도 모르게 그 종이 조가리를 손에서 떨어트려 버린 에르. 에르는 세상 무너질듯 한번 한숨을 쉬고 떨어진 설명서를 주으며 중얼거렸다.
"이런 뇌가 전부 푸딩으로 되어 있는 놈들, 내가 죽은 줄 아니까 이런 걸 만들 수 있는 거겠지. 씁, 저작권 관련으로 고소미나..."
말은 이렇게 하고 있지만 에르는 내심 '재밌겠다!' '나도 이제 유명인 뿌뿡!' '나의 패도를 다시 한 번!' 따위의 괴성을 질러대며 기뻐하고 있었다.
화려하게 꾸며져 있긴 하지만 절대 들어가기는 싫은 관처럼 생긴 가상현실 게임기. 작동 동력은 마나였다.
전기를 마나로 변환시키는 도구까지 탄생하면서 전기의 지분은 점점 그 발을 뻗어나갔지만, 매우 체계적인 교육 커리큘럼으로 시민의 80%를 마법사로 만들겠다는 소위 '마법도시 임펠레나' 정책 덕분에 아직까지 마나는 그 위치를 지키고 있을 수 있었다.(물론 아직은 20% 정도지만)
자기 자신이 마법사라 굳이 마나를 조달해 올 필요가 없는 에르는 관(게임기)로 들어가 뚜껑을 닫았다. 잠깐 어두워지나 싶더니 금방 은은한 빛이 가득 차는 게임기 안.
[에르리오 전기에 오신 것을 환영합네다. 아직 계정이 없습네다. 계정을 만들겠스무니까?]
"그래."
[계정 이름을 입력해주씹쇼.]
"에르네스트."
[이미 사용 중인 이름입네다.]
"......에르."
[이미 사용 중인 이름입네다.]
"에루."
[이미 사용 중인 이름입네다.]
"에라."
[이미 사용 중인 이름입네다.]
"에류."
[이미 사용 중인 이름입네다.]
"...에로?"
[계정등록 되셨습네다. 감사합쇼. 참고로 신원 확인은 신체검사를 통해 자동으로 이루어집네다.]
지금까지 자신과는 큰 상관 관계가 없었던 단어를 왠지 지금부터는 자주 외쳐야 할 것과도 같은 변태스러운 기분이 들며 에르는 절망이 게임기 안에 가득 차는 것을 느꼈다.
[캐릭터가 하나도 없습네다. 생성하시겠스무니까?]
"그래."
대답을 하자 눈앞에 에르네스트와 리오네르의 모습이 뜨며, 에르에게 흑백논리에 의한 선택의 강요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역시 왕자라서 나보다 더 멋지게 만들어 놓은 건가. 쳇. 더러운 세상.'
참고로 그 두 개의 캐릭터는 원본 100%의 재현율을 보인, 게임원화가들의 그림밀레가 듬뿍 담긴 역작이었다. 항상 화장실에 달린 거울만 본 에르는 그것을 알 수 없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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