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싹이 자랐다.
처음에는 무슨 일인가 했다. 벌써 어머니와 연락을 끊어온지 10년은 넘어가고 있던 중이었다. 그런데 택배가 왔다. 그 사람이 보내준 작은 씨앗 몇 개가 상자 안에 들어있었다. 한창 바쁘게 근무를 하고 있던 나는 그 씨앗을 적당히 서랍 구석탱이에 박아두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났을까.
"......"
갑자기 씨앗 생각이 난 나는 서랍을 열어 그것을 꺼냈다. 그리고 처음으로 원예점에 가서 화분과 흙을 사왔다. 원예점 아줌마가 알려준대로 씨앗을 심고 물을 줘봤다. 하는 김에 흙에 영양제도 꽂아넣었다. 이렇게 다 해봤지만 씨앗은 자라지 않았다. 물론 씨앗이 하룻밤만에 자랄 일은 없겠지만, 나는 그걸 알면서도 아쉬운 감정이 들었다. 그리고 오늘, 드디어 새싹이 자랐다. 푸른 쌍떡잎을 보며 나는 어머니가 이 씨앗을 왜 내게 주었을까 다시 한번 생각해보았다.
어머니와 나의 사이가 비틀어지기 시작한 것은 내가 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이었다. 시골이었지만 꽤 개발이 되어서 생활에 불편함은 없었던, 그런 시골에 살고 있던 나는 중학교에 들어갈 나이가 되었다.
"좀 나중에 가면 안 되겠니? 여기서는 학교까지 멀기도 하니까..."
어머니가 말끝을 흐렸다. 우리 집의 경제 사정이 안 좋다는 건 그때의 나도 알고 있었지만, 어린 마음에 어머니가 얼마나 미웠는지 모른다. 그래서 나는 어머니와 대판 싸웠다. 나는 울분이 터져 눈물까지 쏟으며 싸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렇지만 난 결국 1년 동안 학교를 가지 못 했다. 아마 그 학교를 가지 못 했던 1년 동안 어머니와 제대로 된 이야기를 나눠 본 적은 없었을 것이다.
조금씩 조금씩 줄기가 자라기 시작했다.
이건 무슨 식물일까? 줄기만 봐서는 도대체 무슨 식물인지 알 수가 없었다. 꽃이라도 피면 알 수 있겠지만 혹시라도 꽃이 안 피는 식물이라면 정말 무슨 종인지 알 수 없게 돼버릴 것이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별로 알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남들보다 1년 늦었지만 어떻게든 중학교를 나온 나는 또 다른 난관에 봉착하였다. 학비라면 어느 정도 있었지만, 이 지역에 고등학교가 없었던 것이다. 여기서 가장 가까운 학교는 다른 지역에 있었는데 그곳은 버스를 타도 오고가는데 3시간은 넉히 걸렸다.
"저 서울로 갈게요."
"지금 뭐라고 했니?"
"어차피 이사 가려고 해도 돈 없어서 못 할테니까, 나 혼자서라도 서울 가겠다고요."
"아니, 요즘같은 험난한 세상에 너 혼자서 가면 어쩌니..."
"아, 필요 없어요!"
이미 모자 관계는 비틀어져 있을대로 비틀어져 있었다. 나는 그 사람의 말을 무시하고 혼자 서울로 갔다. 어머니는 불안했는지 끝까지 날 막았지만 이미 귀를 꽉 막고 있는 나를 어떻게 할 수는 없었나 보다. 결국 나는 혼자서 서울생활을 시작했다.
잎이 몇 개 정도 나왔다.
잎을 만져보니 까칠까칠한 털이 느껴졌다. 아직은 내 손가락보다 작지만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내 손바닥만해 질 지도 모르지. 나는 은근히 잎이 커지길 기대하면서 그것을 툭툭 건드렸다.
혼자서 이겨내야하는 서울생활은 힘들었다. 성적도 잘 받아야 했고 돈도 자기가 직접 벌어야 했다. 가난하다고 다른 친구들에게 따돌림 당했던 적도 있다. 그렇게 지옥같은 삶을 살았기에 어머니를 추억할 여유는 없었다. 그렇게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명문은 아니지만 자랑스럽게 이름을 댈 수 있는 대학에 들어갔다.
그때부터는 그나마 평평한 삶이 계속되었다. 장학금을 받았기에 돈 문제도 크게 없었고 그래서 어머니를 생각할 여유도 충분히 있었지만, 이미 내 머리 속에서 그 사람의 존재는 희미해져 있었다. 대학을 졸업하자 다시 힘겨운 삶이 시작되었다. 흔히 말하는 '취업난' 때문에 나는 여러 회사를 전전긍긍하며 어렵게 살아갔다. 그로 인해 어머니의 얼굴은 자꾸만 희미해져 갔다.
꽃봉오리가 올라왔다.
꽃이 필 생각을 하니 점점 기대가 되어갔다. 마음 같아서는 물을 한 바가지라도 퍼붓고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식물이 죽어버릴테니 적당한 양을 주고 참았다. 물을 많이 준다고 꽃이 빨리 피는 건 아니라고 당연히 알고 있었지만, 왠지 몰라도 이 식물만 보고 있으면 난 바보가 되어버린다.
난 왜 이걸 좋아하는 걸까. 나도 잘 모르겠다. 그냥 보고 있으면 빨리 자라게 하고 싶고, 지켜주고 싶고, 보살펴 주고 싶다. 별로 예쁘지도 않은 식물인데도 난 그렇게 느꼈다.
취업난을 이겨내고 겨우 회사에 취직한 나는 한번 고향을 찾아갔었다. 그 사람은 누군지 못 알아볼 정도로 늙어있었다. 한편 나는 누군지 몰라 볼 정도로 성숙해져있었다. 어릴 적의 한(恨)들은 이미 잊어버린 나였기에, 좀 더 어머니에게 다가갈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것 뿐이었다. 하룻밤 정도밖에 못 있다가 난 다시 서울로 상경해야 했다.
"추우니까 옷 단단히 입고. 자, 목도리 매고 가."
"......"
그 사람의 목소리를 듣자, 어머니의 얼굴이 다시금 선명해 지는 듯 느껴졌다. 내가 꽃봉오리를 바라보기만 하면 바보가 되는 것처럼 이 사람, 아니 어머니도 나만 보면 바보가 되었던 것이 아닐까. 나는 그 사람의 손을 한 번 잡아준 뒤 서울로 떠났다. 그 때부터 10년이 지나서, 나에게 씨앗이 배달된 것이었다.
아직 꽃은 피지 않았다.
그 사람 생각이 난 나는 고향역까지 가는 기차표를 끊고 기차를 탔다. 그리고 나는 장남으로서, 어머니의 장례식에 참석했다.
내가 장례식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이미 꽃은 말라죽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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