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다보니, 그리고 어떤 일을 겪다보니 느끼게 된 것이 있어 이렇게 글을 올립니다.
장르 문학을 쓰고있고, 또 많이 읽고 있는 입장에서, 현재 장르문학을 읽는 독자님들은 대부분 킬링타임용으로 글을 읽으시는 것이라 가정할 수밖에 없어집니다. 많은 작가님들이 또한 그런 독자들의 선호에 맞게 책을 내시더군요.
판타지에 어떤 전형성이 있을 이유는 없다고 봅니다. 그런데 어느새 한국의 장르문학(저는 무협도 큰 의미에서 판타지라고 생각합니다)은 스스로 상상력을 제한하고 장벽을 만들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전에 한담에 올라온 글들을 보니, 오크나 오우거, 서클마법, 소드마스터 등이 등장하지 않으면 그 소설은 출판되기 어렵다고 합니다. 안 팔린다는 의미겠지요. 그런데 그런 이미지나 용어들은 장르문학 밖에서 통용되는 언어가 아니지요. 즉, 장르문학을 읽어본 경험이 있는 독자들에게만 통하는 그런 이미지나 용어들 아닐까요? 마치 의사가 자기들만 알아들을 수 있는 용어로 이야기를 나누듯이요. 물론 장르문학을 많이 접해본 독자들 입장이라면 이런 이미지들을 이용하는 것이 아주 편할 겁니다.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어지지요. 사람에 돼지머리를 한 몬스터가 나타났는데 그걸 오크라고 한다. 정도의 설명만 있어도 장르 문학 독자들은 아하! 하면서 거의 오크란 종족의 성격적 특성까지 유추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장르문학을 처음 접해보는 독자들은 어떨까요. 아마 이미지 생성이 장르문학 독자들처럼 잘 되지는 않을 겁니다.
즉! 현 장르문학에서 자주 사용되는 용어나 이미지들은 결국 반지의 제왕이나 D&D롤, 혹은 다른 유명 소설에서 구축한 이미지를 차용하는 것이며, 이는 곧 장르문학 독자들에게 우선 게임을 하든, 다른 유명한 책을 읽든, 영화를 보든 해서 그런 이미지부터 만들어와라! 라고 강요하는 것 밖에 안되는 것 아닐까요?
장르문학이 이런 바깥에서 이미 만들어진 이미지와 용어들을 자주 차용하면 차용할수록 장르문학계의 진입장벽을 더욱 높이게 되는 폐착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아닐까요? 또한 장르 독자들의 상상력을 고정된 이미지에서 벗어날 수 없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요?
저는 이 이미지의 고착화에 심한 거부감을 느낍니다. 트롤이란 용어를 사용하는 순간에 트롤의 피는 포션용이며, 재생력이 강하면서 어쩌구 저쩌구하는 이미지가 떠올라버리는데... 사실 트롤이란 이름을 썼다고 해서 무조건 그런 이미지에 고착된 생물을 그릴 필요는 없잖아요. 반지의 제왕만 봐도, 영화에 나오는 트롤은 한국 장르문학에서 나오는 오우거와 비슷한 존재이잖아요.
그런데 새롭고 독창적인 생물, 종족, 용어, 세계를 그려내는 작가님들의 글은 생각보다 독자님들이 잘 찾지 않으시더군요. 또 판/무에 자주 등장하는 용어를 사용했는데, 그 용어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이미지에 맞지않으면 논리적이지 못하다느니, 이 생물은 이럴리가 없다라느니, 이 기술을 배울 때 이런 과정은 이상하다느니 하며 비판하시는 분들도 계시더군요.
이해가 안 갑니다. 어째서 우리는 우리의 상상력을 제한 하려고 할까요. 대중성을 위해서라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어차피 이미 대중과 동떨어진 영역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판/무 시장에서 대중성을 찾는 것도 웃긴 일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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