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한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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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문체가 괜찮을까요?

작성자
Lv.2 호롱나무
작성
11.08.21 18:10
조회
1,353

사실 소설의 문체란 가장 소재와 주제에 적합한 것이어야겠지만,

글을 이제 막 써보기 시작하는 단계에서는 판단하기가 쉽지 않군요.

시점에 관한 것도 있을 거고, 얼마나 작가가 소설 속 세계를 자세히 표현하는지에 관한 것도 있을 거구요(예를 들어, 인물의 세세한 행동 및 심리까지 서술할 것인지에서부터, 역사 서적에서처럼 건조하게 fact인 것을 기술하는 마냥 쓸 수도 있을 테구요.). 또 그 문체가 풍요로운지 혹은 건조한지에 대한 것도 있을 거구요. 소설 속 상황에 맞추어 문체를 조금씩 바꾸는 것도 고려해보고는 있는데 어렵네요. 어떻게 보면 자신의 성향과 가장 잘 맞는 문체를 택하고, 소재나 주제 역시도 거기에 맞춰 택하는 것이 낫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사실, 이 글을 쓰게 된 것은 처음 시작하는 입장에서 어떠한 문체를 택해써나갈 것인지를 여러분께 조언 구하고자 함입니다. 저같은 경우는 위의상황을 고려해보면 약 3가지 정도의 문체가 나오는 듯한데(비슷해보이실 수도 있는데, 쓸 때의 느낌은 완전히 다릅니다^^)- 이 중 어떤 것을 선호하시는지 궁금합니다.

1번 : 보르헤스의 단편을 따라해보고자 하다보니 이런 문체가 되더군요. 개인적으로는 정확한 지명이나 시간 등의 서술을 최대한 줄이고, 몽환적인 느낌을 최대한 가미하며, 거시적인 입장에서 바라보려고 한경우입니다.

  이름 모를 한 신의 신전이 있었다. 먼 과거에는 그 교세가 번창했었지만 지금은 쇠락하였고,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혀져 버린 신이었다. 가끔 치열한 국가간의 아귀다툼에서도 멀어진 벽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그를 기리는 관용어를 사용하곤 했었지만 그 어원에 대해서는 기억하지 못했다. 그 신전은 한 위대했던 제국의 황제가 신에게 헌정한 곳이었는데 108개의 기둥과 99개의 방, 그리고 10개의 둥근 지붕으로 이루어졌고 수많은 벽화와 황금으로 치장된 곳이었다. 지금은 다 허물어져서 그 폐허만을 남겼으며, 어디에도 황금은 남아있지 않았다. 더군다나, 긴 세월이 흐르면서 그 신전은 바닷속에 잠겼다가 ...

2번 : 1번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인물들에 가까워지는 경우인데, 아마도 현대물 등은 다루지 못할 것 같습니다^^;

소년은 어렸다. 나이는 얼추 10세 전후다. 주변의 사람들은 피부가 붉었다. 그들과는 달리 소년의 피부는 붉지 않고 희었다. 팔과 다리는 가늘어 혼자 무언가를 잡거나 다른 소년들처럼 빠르게 뜀박질할 수 없을 듯 보였다. 가죽을 얼기설기 걸친 채로, 그들은 동굴 앞에 모여 살았다. 정확히 말하면 한 동굴과, 그 앞의 움막 여럿에 모여 살았다. 동굴 안에는 횃불이 몇 개 있었다. 소년만은 그 안에서 살았다. 움막 쪽으로는 나갈 수 없었다. 일종의 유폐자였다. 그는 호기심이 많았다. 동굴 안이 어두워서인지, 아니면 역설적으로 횃불이 밝게 타오르고 있어서인지는 모르지만 표정은 늘상 어두웠으나 눈만은 빛났다. 그 눈빛은 순수해 보이기도 하고 우수에 젖은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가끔, 일족의 여자애들이 또래 다른 수컷들의 것에서 발견할 수 없는 무언가를 보고 힐끔거리다 보초에게 쫓겨나곤 했다. 그 눈이 고등한 정신 수준을 약간이나마 짐작케 했다. 보초들은 소년을 위후 쿠웨다, 즉 왜요 도령이라고 불렀다. 그들은 소년에 대해 아는 것이 적었다. 물어보는 것이 있으면 귀찮았기에 퉁명스럽게만 답했다. 다만 알고 있는 것은 다르게 생긴 그 외모와, 빈약한 사지, 호기심, 그리고 결코 나갈 수 없도록 갇힌 그 상황 정도였다. 숲의 일족 중에서도 아지랑이 다리 족속임을 자랑스레 생각하는 그들은 못마땅해서 ‘위후-도령’이라는 말로 비꼬았다. 그 단어는 발음이 매우 독특했다. 보초들 역시도 족장의 아들(나므토(깨진 삵의 어금니))이 자랑스레 휘림프로부터 주워듣고 떠벌리는 것을 갖다 붙인 것이었는데, 많이 변질되었음에도 불구하고도 발음하기가 어려웠다. 때문에 매우 바보같다고 생각했다. 소년과 그들의 관계는 그것뿐이었다. 남은 것은 소리도 거의 내지 않고 타오르는 횃불과, 그 주위를 덮는 어둠, 그리고 자의식뿐이었다. 머리를 들면 보초들의 털가죽 뒤집어쓴 뒷모습이 반이나 가려버리는 바깥풍경이 있었다. 시간이 가면 밝아지고 다시 어두워졌다. 매우 흥미로운 것이었으나 그 답을 알 수 없었기에 관심을 거두었다. 어두울 때 남는 것은 공상이나 자기 자신에 대한 것 뿐이었다. 그것만이 유일하게 시간을 달래주고, 충족되지 못한 그의 욕망들을 죽였다. 어떻게 보면 죽였다기보다는 잠재우고, 그 안에 섞여 들어가고, 하시시를 피우는 것처럼 녹아내렸다고 보는 것이 옳으리라. 이것은 이내 밝을 때에도 번져갔다. 밤의 적막은 요요로웠다. 매혹적이었다. 숨 막힐 듯한 공상과 자의식이 넘치다 못해 미간을 뚫고 나올 것 같았다. 그에 반해 낮은 보초들의 드문드문한 말소리, 약간의 햇빛 외에는 다른 것이 없었다. 이제는 지긋지긋한 것들이다. 그 쉬익- 거리는 소리가 싫다. 이내 왜요 도령은 망상과 현실을 구분하기 어렵게 되어가고 있었다. 자의식을 인지하는 순간, 그 분명한 탑이 아지랑이처럼 이지러지는 것을 보는 것 같았다. 그 몽환의 마지막 순간에도 호기심은 있었다. 팔을 내밀었다. 붉은 살갗이 아니라 하얀 살갗이다. 고민했다. 나는 다른가? 이것이 최종적으로 얻어낸 유일한 화두였다.

3번 : 인물이 느끼는 세세한 것까지 다 서술하는 문체-입니다.(라고 생각합니다.) 소재를 조금 극단적인 것으로 잡아서인지 약간 하드보일드 쪽으로 가게 되는군요. 1번과 2번은 아마도 조금 풍요로운 문체 쪽으로 가려고 노력하는데에 반해...

1일

  지독한 냄새가 난다. 무언가 썩는 냄새 같기도 하고, 인분 냄새인 것 같기도 한데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 벌써 몇 시간이나 이곳에 있었던 것 같은데도 냄새는 쉬 가시지 않는다. 눈을 조심스럽게 뜬다. 믿지는 못하겠지만, 목장인 것 같다. 조심스럽게 둘러보니 철조망을 이용해 10평방미터 가량으로 나뉜 구획마다 앉을 틈도 없이 살찐 수컷으로 가득 메워져 있다. 내 앞에도 흐리멍텅한 눈을 한, 살찐 수컷들이 가득하다. 뜨겁고 끈적거리는 털 난 살갗들이 내 피부에 닿는다. 그 수컷들 중 하나가 머리를 돌려 나를 바라본다. 그에게는 표정이 없다. 헤 벌린 입가로 침줄기가 흘러내려, 투실거리는 턱살 위에서 인분 찌꺼기들과 섞인다. 이내 그는 다시 고개를 돌려 정면을 향한다. 그의 등, 그의 궁둥이, 그리고 다리가 내 몸에 달라 붙기에 뒤로 물러나려 했지만, 뒤에도 살덩어리가 있는데다, 다리를 움직이기도 힘들다. 내려다보니 무릎 아래로 질척거리는 인분의 늪이 가득 메우고 있다. 푸드득 푸드득 소리가 난다. 대각선 앞쪽쯤 되는 위치의 남자가 선채로 배설하고 있다. 두터운 엉덩이가 움찔거리면서 흑갈색의 죽 같은 것을 쏟아내고, 그 일부는 그의 허벅지를 타고, 다른 일부는 그대로 그의 뒤에 있는 남자에게 쏟아진다. 살짝 욕지기가 드는 장면이다. 그러나 배설한 자나 배설물을 뒤집어쓴 자 둘 다 표정의 변화가 없다....

가장 느낌이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을 선택해주셨으면 합니다-

(한담의 목적에 맞는지 모르겠네요.. 아니라면 삭제하겠습니다.)


Comment ' 5

  • 작성자
    창조적변화
    작성일
    11.08.21 18:31
    No. 1

    저는 개인적으로 3번이 제일 마음에 드는군요. ㅎㅎㅎ

    찬성: 0 | 반대: 0 삭제

  • 작성자
    Lv.2 호롱나무
    작성일
    11.08.21 18:42
    No. 2

    창조적변화 // 감사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31 무저울
    작성일
    11.08.21 19:16
    No. 3

    저도 개인적으로 3번...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82 로드뱀피
    작성일
    11.08.22 00:10
    No. 4

    문체는 잘 모르겠지만 ...
    문단의 호흡(길이)에도 신경을 쓰심이 좋지 않을까요?

    왜냐면, 개인차가 물론 크긴 하겠습니다만; 장르소설이 가지는 특성상 읽는이의 예상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 내용들이 태반인데, 호흡이 너무 길면 불편하고 지루하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창조적변화
    작성일
    11.08.22 09:15
    No. 5

    저도 좀 길어 지는것 같아 한 마디 덧붙일까 했는데 로드뱀피님이 지적해주셨네요. 그나마 3번이 머릿속에 제일 잘 그려지는 듯해서 3번이라고 말씀드렸어요. 2번은 너무 길어서 그림이 잘 안그려지고 1번은 3번보다는 짧지만 오히려 3번이 전 더 이해가 잘되는군요. 잘 읽히네요. ^^
    이렇게 열심히하시니 좋은글이 나올듯한 느낌이 팍팍 드네요... 홧팅하세요~~

    찬성: 0 | 반대: 0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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