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끝나고 집에 오니까 동생 녀석이 벽에다 못을 박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한다는 소리가, "형, 망치 못봤어?" 합니다.
"네 손에 든 건 뭐냐?" 했더니, "뒤져도 안나오길래 샀어." 그럽니다.
지난 번에도 못 찾아서 사온 적이 있었지요.
제가 뒤져 보니까 크고 작은 망치가 다섯 개나 있더군요.
제대로 찾아보지도 않고 새로 사는 성격이라, 낭비라면 낭비겠지요.
물론 있는 것을 또 사는 경우가 없지는 않습니다.
빈손으로 나갔다가 소나기라도 내리면 우산을 사지 않을 수는 없겠지요.
집에 와서 쌓인 우산을 보면 다음부터는 꼭 챙겨야지 하는 다짐을 하곤 합니다.
여러가지로 말이 많은 소위 "번역투"에 대해 몇 가지 이야기를 하려 합니다.
어학을 연구하는 분들은 우리말을 파괴하는 것이라고 매우 싫어합니다.
하지만 전문적인 지식을 갖추지 않은 상태에서는 왜 그렇게 화를 내는지 알 수가 없지요.
보통은, "말"이라는 것이 원래 변하면서 흘러가는데 그게 무슨 큰 일일까 하고 생각합니다.
시인들이 새로운 "말"을 만들어내는 것처럼 많이 쓰고 있다면 받아들이면 되는 게 아니냐 하고도 흔히 얘기하지요.
그에 대한 답은 뒤로 미루고, 어떻게 해야 좀 더 경제적이고 "간결한" 글을 쓸 수 있는지 몇 가지 생각을 말하도록 하겠습니다.
사실, "번역투"라는 말 자체로 우습게 느낍니다.
번역이면 번역이지, "번역한 어투"라는 말이 도대체 왜 나왔는지.
큰 이유 중에 하나가 "신조어"를 많이 만들어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신조어 즉, "새로운 말"을 왜 만들게 될까요?
현재 있는 말로 그 뜻을 표현하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① 문화가 변하면서 새로 생기는 말
② 외국어를 우리말로 바꾸기 힘들어서
③ 현재 있는 말로 제대로 표현하기가 어려워서
④ 새롭고 신선한 느낌을 전달하기 위해
⑤ 멋있으니까(개성 표현 ^^)
이 정도로 나눌 수 있겠지요.
아까 제 동생 얘기를 한 것은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입니다.
필요한 것이 있으면 잘 찾아서 써야지, 당장 급하다고 새로 사는 건 낭비겠지요.
어쩔 수 없거나 반드시 필요한 경우는 인정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구요.
①, ②는 당연한 것이므로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물론 될 수 있으면 있는 데서 찾아 쓰는 게 좋지만 그렇게 할 수 없으면 어쩔 수 없습니다.
새로 만드는 수 밖에.
그럼 ③, ④, ⑤는 잘못된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③, ④, ⑤ 역시 절대 그른 것이 아닙니다.
다만, 제대로 찾아보지도 않고 그렇게 한다면 그건 분명히 잘못이고 낭비입니다.
수많은 글을 접하고도 부족해서 방방곡곡 숨어 있는 방언까지 찾아서 글을 쓰는 사람이, 그래도 적당한 말이 없기에 "새로운 말"을 만들었다면 어떻게 할까요?
고개를 끄덕거려야지요.
문학에서 인정하는 부분입니다.
③, ④, ⑤의 경우도 그렇게 찾아보고 적용하는 것이라면 문학에서는 인정합니다.
그러나 제대로 찾지도 않고 망치만 계속 사온다면 당연히 부모님 혹은 형에게 한소리 듣겠지요.
그것도 계속 반복되면 그렇게 간단하게 끝나지는 않을 것입니다.
"번역투"가 그런 이유로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더구나, 이 바쁜 현대 사회를 살면서 경제적이지도 않으니 더 문제입니다.
번역투는, 한 번이라도 자판을 더 두드려야 하고 한 글자라도 더 읽어야 하고 한 번쯤 더 생각해야 이해가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지요.
아래 예문을 음미해 보시기 바랍니다.
(* 표시는 어색하거나 바르지 않다는 뜻입니다.)
- 번득이는 칼날에 *찢겨져 *가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 번득이는 칼날에 *찢겨져 *있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우리말에 크게 영향을 끼친 영어를 살펴 보면, "수동태"와 "진행형"이 있습니다.
자신의 의지로 어떠한 행위를 한다기 보다는 타인의 의지나 상황에 따라 어떠한 행위를 할 수 밖에 없다 라고 말하는 것이 "수동태"입니다.
주로 어떠어떠한 "상태"이다 라고 표현하지요.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영어는 위아래의 구별이 없기에 예의가 부족한 언어이다 라고 말하기도 합니다만 그렇지는 않습니다.
예의를 갖추거나 완곡하게 말할 때 "수동형"을 쓰지요.
또 어떠한 사건이나 동작이 계속되는 것을 표현하려고 "진행형"을 씁니다.
일어 역시 같은 의미로 "수동형"을 많이 씁니다.
분명 자신의 의지로 했음에도 한 발 떨어져서, 상황이 그러하기에 어쩔 수 없이 했다 라는 뜻을 담고 있지요.
우리말에도 이와 비슷하게 쓰는 "보조 동사"가 몇 있습니다.
- (아/어)가다, - (아/어)오다 : 사건이나 행위의 "진행"을 뜻함
- (아/어)있다 : 어떠어떠한 "상태"를 뜻함
- (아/어)지다 : "상태"와 "진행"을 뜻함
"상태"와 "진행"을 뜻하기에 주로 "번역투"에서 많이 나타납니다.
뜻을 보조하고 있으므로 당연히 주된 뜻을 지닌 "본동사" 뒤에 따라 옵니다.
예전부터 써온 말이지만 "번역투"에서는 "중복"해서 쓰고 있어서 문제가 됩니다.
위의 두 예문이 별로 어색하지 않을 것입니다.
워낙 흔하게 쓰고 있어서 익숙하기 때문이지요.
관련이 있는 말들을 나눠 보겠습니다.
- 찢다 : 주된 뜻을 지닌 본동사
- 찢기다 : 본동사에 "-기-"가 붙어 수동, 피동의 뜻을 추가
- 찢겨지다 : "찢기다"에 "-(어)지다"가 붙어 진행, 상태의 뜻을 추가
- 찢겨져 가다 : "찢겨지다"에 "-(어)가다"가 붙어 진행의 뜻을 추가
- 찢겨져 가는 : "찢겨져 가다"에 "-는"이 붙어 진행, 상태의 뜻을 추가
- 찢겨져 있다 : "찢겨지다"에 "-(어)있다"가 붙어 상태의 뜻을 추가
- 찢겨져 있는 : "찢겨져 있다"에 "-는"이 붙어 진행, 상태의 뜻을 추가
- 찢어지다 : "찢다"에 "-(어)지다"가 붙어 진행, 상태의 뜻을 추가
가만 보면 "-(어)지다", "-(어)가다/-(어)있다", "-는" 다 같은 뜻인데 세 번이나 쓰이고 있습니다.
필요하지 않은데 중복이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가운데 부터 하나씩 지워 나가지요.
찢겨져 가는 -> 찢겨 가는 -> 찢기는
찢겨져 있는 -> 찢겨 있는 -> 찢긴
- 번득이는 칼날에 *찢겨져 *가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 번득이는 칼날에 찢기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 번득이는 칼날에 찢어지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 번득이는 칼날에 *찢겨져 *있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 번득이는 칼날에 찢긴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 번득이는 칼날에 찢어진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좀 더 간결하다고 느끼지 않으세요?
글을 쓰다가 "-(아/어)지다"를 쓰게 되면 한 번만 더 생각하면 됩니다.
본동사에 "-이, 히, 리, 기, 우, 구, 추" 등이 붙은 수동, 피동의 뜻을 지닌 말이 없는지.
또, 상태와 진행을 뜻하는 말이 중복해서 쓰인 것은 아닌지.
깔끔하고 간결하게, 좀 더 경제적이고 어법에 맞는 글쓰기를 할 수 있습니다. ^^
(연재글에서 많이 보여서 참고하시라는 의미로 적습니다. 이와 연관된 "-(이)*되어지다", "-(으로)*결정/*특징/*한계지어지다", "-(에)*안들어가지다"에 대한 글을 다음에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Comment '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