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무령전기
작가 : 정욱
정규연재란 연재중
한담란에서 참 맛깔스런 추천을 보고 접하게 된 무령전기에 대해 몇자 적어봅니다.
다소 길어질 것 같습니다. 편의상 반말을 사용함을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
문관의 신분으로 무관들도 하지 못한 업적을 쌓은 원숭환 장군. 하지만 더러운 권력 투쟁에 밀려 역적의 누명을 쓰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다. 원숭환 장군의 서자인 무령은 부친에게 억울한 누명을 씌운 이들에게 복수를 다짐하며 힘을 키우는데...
정말 진부하기 짝이 없는 소재다. 역적누명. 복수. 그런데 말이다. 식상하다고는 하지만 이런 소재를 최근에 본 적이 있는가? 왕따가 무림을 가거나 천마가 자빠져 누구 몸속에 들어가는 내용, 싸가지 없는 제자가 사부에게 반말을 내뱉는 내용, 복수는 뒷전이고 삼처 사첩 연애질만 하는 내용은 많이 봤지만, 최근 몇년 사이 저런 '진부하기 짝이 없는 복수극'을 본 기억이 별로 없다. 그래서 오히려 신선하게 느껴진다면 이상한 것일까?
책으로 따지면 한 권에 좀 못미치는 분량이 올라온 지금, 그다지 흠잡을 만한 곳이 없다. 무난하고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이야기.
복수에 눈이 멀어 자칫 야수의 길로 빠져들지 모를 무령, 그를 옆에서 때론 스승처럼, 때론 형님처럼 이끌어주는 상중명.
입으로는 협을 외치며 주먹으로는 그저 마음에 안드는 놈들 두들겨 패기에 바쁜 과격한 이야기도 아니요, 최근들어 보기 힘든 진짜 '협'을 그린 작품이다.
오타와 비문이 난무하지도 않는다. 글을 써보면 알겠지만, 아무리 공들여 써도 오타는 필연적으로 존재한다. 하지만 그런 것을 찾아보기 힘든 것을 보면, 요즘 연재글들에서 도무지 찾아보기 힘든 '퇴고'의 과정을 거쳤다고 생각된다.
이런 무령전기이지만 물론 단점도 존재한다.
첫째, 다소간의 개연성. 개연성이라는 것이 별다른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아무리 허황된 내용이라도 -달빛 아래서 자장가를 부르며 항문에 검을 꼽고 휘두르면 천하제일 고수가 될 수 있다 같은- 작품 속에서 '정말 그럴싸한데?' 하고 느끼게 하는게 바로 개연성이라 생각한다.
그런 면에 있어서 무령이 우발적이지만 첫 살인을 저지르고 느끼는 심경이라던가, 허도인이 일행에 합류하는 부분이라던가, 은인의 딸이 자신의 신념과 망설임 때문에 죽음 직전에 처했을때 보이는 모습은 너무 급박한 호흡으로 넘어가서 그런지 그럴듯해 보이긴 하지만, 무언가 부족한 느낌이 들었다.
둘째, 시점(時點)의 잦은 전환이 독자들에게 혼란을 줄 수 있다.
물론 무리한 전환은 아니다. 자연스럽게 과거의 여러 시점과 현재를 넘나든다. 하지만 무엇이든 과하면 부족하니만 못하다 하지 않았는가.
시점을 오가면서 이야기의 큰 줄거리를 놓치는 일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시점 때문에 혼란을 느낀 독자의 리플도 본 것 같다)
셋째, 초반에 한자가 다소 많이 쓰인 것이 보인다. 물론 한자의 적절한 사용은 오히려 환영하지만, '도(刀)' 같이 한자 없이 누구나 이해할 수 있고, 너무나도 익숙한 단어까지 한자를 사용하는건 한번쯤 생각해 봐야 할 문제같다.
주관적인 기준으로 볼 때, 2% 부족한 작품이다. 아니, 5%쯤 부족한 작품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무령전기가 책으로 나온다면, 나는 서슴없이 지갑을 벌릴 것이다. '대가'라고 불릴 만한 몇몇 작가분의 작품들을 제외하면, 20% 이상 부족한 작품들이 출판되고 또 팔려나가는 현실에서 첫 작품이 이정도라면, 이 작가의 작품은 첫 작품부터 소장할 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스타일리스트들을 좋아한다. 전 작품에 걸쳐 얽히고 섥힌 설정은 둘째치고 먼치킨 무협을 정말 '오, 그럴싸한데?' 하는 생각이 들도록 포장해내는 풍종호님. 감미로우면서도 애틋한 진산님. 고독한 길을 걷는 용대운님의 작품을 좋아한다. 시류에 편승하지 않고 자신만의 향기를 간직한 그런 사람들을 좋아한다.
지금까지의 무령전기는 요즘 '트렌드'를 전혀 따르지 않는다. 하지만 옛 무협의 향기가 나는듯한 무령전기. 전형적이지만, 그런 소재로 '제대로 된 작품'을 써내는 작가. 나는 정욱이라는 작가가 이 향기를 끝까지 간직한 작가가 되길 바란다.
Comment '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