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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말, 교토 : 신센구미 혈풍록

작성자
Lv.29 스톤부르크
작성
12.02.27 23:23
조회
2,821

작가명 : 시바 료타로

작품명 : 신센구미 혈풍록

출판사 : 창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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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세의 시대에 명예를 찾아 허망하게 사라져간 무사들의 검과 사랑, 그리고 삶의 애환을 담은 신센구미의 결정판.

피비린내 나는 혈투로 얼룩진 바쿠후 말기 격변기의 무사 조직인 <신센구미> 대원들의 파란만장한 일대기를 그린 걸출한 역사소설이다. 곤도 이사미, 히지카타 도시조, 오키타 소지, 나가쿠라 신파치, 사이토 하지메, 하라다 사노스케, 야마자키 스스무 등 각각의 캐릭터들마다 독특한 매력을 가진 역사적 인물들의 활약상이 박진감 넘치게 펼쳐진다.

신센구미 초기 내부 권력다툼을 다룬 「아부라노코지의 결투」에서부터 오키타 소지의 「키쿠이치몬지」에 이르기까지 총 15편의 단편들을 묶은 소설로 각 장마다 다양한 캐릭터의 무사들이 등장하여 다양한 인간 군상들의 위선과 이데올로기적 허상이 적나라하게 파헤쳐진다.

신센구미를 현상 유지하기 위해 그들은 다음과 같은 살벌한 조직 규범을 정하고 있었다.

一. 무사도를 어기지 말것

一. 국(신센구미)을 이탈하는 것을 불허함

一. 마음대로 돈을 모으는 것은 불가

一. 마음대로 소송을 취급하는 것은 불가

一. 사적인 투쟁을 불허함

이를 어기면 할복!!

-----------------------------------

단순히 오키타 소우지에 대한 자료가 필요해서 참고용으로 읽게 된 책이었습니다. 그래서 오키타 소우지의 이야기인 '오키타 소우지의 사랑'과 '키쿠이치몬지'만 우선 읽었는데...

워낙 재미있어서 결국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어 버렸네요.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틈틈히 읽은터라 꽤나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사실 시바 료타로 소설을 제대로 읽어 본 것도 이 '신센구미 혈풍록'이 처음. '언덕 위의 구름'은 드라마로 봤지만요.

짤막 짤막한 단편이 모인 소설이고, 진지하게 역사적 시류를 주목하기보다는 각각의 단편이 등장인물 개개인을 조명하는 편이라 읽기는 매우 편했고, 내용도 다채로웠습니다.

무엇보다 '역사 소설'에 가질 수 있는 선입견, '어렵다', '딱딱하다'라는 인상이 거의 없었어요. 이건 제가 막말 시기와 신센구미에 대해서 최소한도의 사전지식(대부분 만화 지식이지만...)을 가지고 있던 덕이기도 하겠습니다만.

그것과는 별개로, 각 인물의 짜임새나 중요한 부분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때론 부드럽고, 때론 비장하고, 때론 담담하게 서술하는 간결한 문체가 정말 좋았습니다. 쓸대없이 어려운 말을 써가며 시대상을 말하기 보다는, 오히려 '현대'의 시선으로 부담 없이 '과거'를 볼 수 있게끔 써 져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

여러 만화등에서 미화되기도 하고 각색되기도 하면서 두고두고 우려먹히는 신센구미입니다만, 사실상 그 '신센구미 미화'의 원조가 이 시바 료타로라고 하더군요(...). 보다 먼저 신센구미를 재조명 한 소설가는 시바무라 칸이지만 실질적인 영향력은 시바 료타로의 '타올라라 검!'과 '신센구미 혈풍록'이라고...

'타올라라 검!'의 경우 신센구미 부장이었던 히지카타 도시조의 일대기를 중심으로 다룬 소설이라 하고, '신센구미 혈풍록'은 그와 동시기에 연재된 단편들.

타올라라 검!의 역자후기를 보니 시바 료타로의 대표작이기도 한 '료마가 간다!'와 '타올라라 검!', '신센구미 혈풍록'은 동시기에 연재된 작품들이라고 합니다.

좌막파의 대표적인 무력집단인 신센구미와, 대표적인 양이지사인 사카모토 료마를 동시기에 다룬 이유에 대해서 작자인 시바 료타로는 그들의 이념을 떠나 '그 시대의 사나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고 설명했다고 합니다.

***

전체적인 내용은 신센구미 내부 인물들에 얽힌 굵직 굵직한 사건들을 하나씩 하나씩 다루는 형식입니다. 무엇보다 '인물 중심'이지요. 신센구미 이야기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케다야 사건"도 신센구미와 당시 교토의 전체적인 상황 보다는 '야마자키 스스무'라는 신센구미의 대원(감찰관)의 개인사를 중점으로 두고 서술합니다.

'그 시대의 사나이들을 다루고 싶었다'라는 시바의 뜻대로, 신센구미라는 하나의 단체에 소속되어 있으면서도 하나하나의 인물들은 각자의 배경과 성격, 특색을 가지고 차별화되어 움직입니다.

대범하고 거침이 없어 장부의 그릇이지만 사사로운 것을 신경쓰지 못하고 자신의 고집으로 때때로 일을 그르치는 곤도. 철두철미하고 살벌한 엄격함 속에서도 하이쿠를 짓거나 부하대원을 신경쓰는 히지카타, 천부적인 검술 실력을 가졌으나 무언가 세태와는 동떨어진 듯한 기묘한 성격을 가진 오키타. 그 외에 조연부터 단역으로 거론된 인물 하나하나가 '막말 혼란기'라는 시대상에서 그 자신의 인물됨됨이와 여러가지 사건들을 겪으며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모습들이 인상적으로 소개됩니다.

***

다만 신센구미 자체가 파국으로 끝난 조직인 만큼, 대부분의 단편들이 씁쓸한 결말인 것은 어쩔수 없네요. 각 단편의 주인공들이 결국 죽어나가는 걸로 끝인 파트가 수두룩하니 이거 원(...).

어찌 보자면 '적과의 싸움'보다는 '내부와의 싸움'에 할당된 파트가 더 많지 않나 합니다. 어째 칼 쓰는 무사들이 나오는데, 적을 베는 장면보다 같은 신센구미 대원(혹은 이탈 신센구미 대원이나 첩자 등등)을 베는 장면이 더 많은 것 같아요.

엄격한 국중법도로(라기 보다 정말 조폭들에 가깝습니다) 규율을 유지하는 신센구미 내부에서 나름 '정치적'인 식견을 가지고 행보를 걷던 자도, 사사로운 욕심으로 움직이던 자도, 가족을 얻어 정으로 약해진 자도, 결론은 내부 숙청.

그 외에도 '피리부는 무사'나 '오키타 소지의 사랑' 파트의 경우, 격동의 시대에 태어나 여러 이유로 개인적인 소망을 이루지 못하는 그 애절함이 꽤나 절절하게 나타나 있었습니다.

***

무사를 다룬 소설이다 보니 칼부림 장면이 상당히 자주 나옵니다. 옛날 문피아에서 어떤 분이 "일본 소설의 전투장면은 일격에 승부가 나는 경우가 많아서 재미가 없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과연 단칼 승부가 이런거구나~ 라는 생각이 들긴 했습니다.

그 어떤 검술의 달인이라고 해도, 한 순간의 빈틈을 허용하거나 불의의 기습, 다수의 습격을 받으면 그대로 불귀의 객이 되어버리니.

그렇다고 해서 '전투장면이 재미없느냐' 하면 딱히 그런건 아니라서, 오히려 그 검세 하나하나가 꽤나 단순하게 머리속에 연상되는 터라 상당히 사실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장황한 묘사같은게 없는데도 상당히 '분위기가 사는' 전투 장면들이 많았습니다.

그와 별개로 담담하게 서술되는 것에 비해 꽤나 잔인한 장면이 많은건...

***

... 진지하게 감상글을 쓰긴 했는데, 아무리 봐도 이 소설의 가장 임팩트 있는 단편은 "미소년 검객 소자부로".

어느날 신센구미에 들어온 남자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의 미모를 가진 검객!, 신센구미에 휘몰아치는 동성연애의 풍파!, 평범한 노멀남 야마자키의 가슴까지 두근거리게 하는 마성의 게이!, 삼각관계와 질투로 휘몰아치는 대내의 피바람!, 수많은 남자들의 욕망의 대상이 되어 결국 괴물이 될 수 밖에 없었던 마성의 '미'!

이건 무슨 탐미계 야오이물인가요(...).

하여간 신센구미 혈풍록을 다 읽게 만든 주범. '오키타 소지의 사랑'과 '키쿠이치몬지'를 읽은 후 그냥 제목이 신경쓰여 읽었는데, 결국 미친듯이 ㅋㅋㅋㅋㅋㅋㅋ 거리며 책에 빠져들었습니다. 과연 신센구미가 동인계에서 두고두고 우려먹히는 이유가 있었구나. 아니, 70년대에 국민 작가가 이딴 짓을 저질러났으니 그야 안 써먹힐리가 있나(...).

***

그와 별개로 인상적이었던 단편은 역시 '오키타 소지의 사랑'. 신센구미 혈풍록 전체적으로 로맨스가 드문드문 등장하는 소설이긴 했습니다만, 이 단편이야말로 정말 순수하게 '로멘스'로 시작해서 '로멘스'로 끝나는 애절하고도 씁쓸한 연애담 이었으니까요. 혼자서만 붕 떠있는데, 결코 안 어울리는 것은 아닌, 그런 이야기.

무엇보다, 수줍음 많은 오키타 소지와 의원집 딸 오유 아가씨의 설레임 가득한 초딩스러운 풋풋 연애를, "내게 맡겨!"라며 호언장담하며 멋대로 나섰다가 흙발로 짓밟아버리는 곤도는 아무리 봐도

Attached Image

이거로 밖에 안보입니다.

은근히 싱크로 쩌네, 은혼.

***

신센구미에 대해 다룬 논픽션 연구서인 '최후의 무사 신센구미'도, 시바 료타로의 소설 '타올라라 검!'도, 현재로서는 절판. '신센구미 혈풍록'도 도서관에서 읽은거니 개강하면 학교 도서관을 한번 뒤져봐야 할 것 같습니다.

"결국 정치 깡패일 뿐인데 미화한다"는 등의 논란이 있는 신센구미입니다만, 뭐 그렇게 써먹히는 데는 그만큼의 소재적 역량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니까요. 시바 료타로의 말 마따나 '그 시대를 살다 간 사나이들'이란 면에서, 신센구미는 확실히 상당히 매력적인 호기심 대상입니다.


Comment ' 5

  • 작성자
    Lv.9 [탈퇴계정]
    작성일
    12.02.28 10:38
    No. 1

    시바 료타로 필법이 건조한 듯 하면서 굉장히 임팩트 있어서 좋지 않나요.^^ 이 소설도 한 번 절판 됐다가 다시 나왔던 걸로 기억합니다(제가 구하느라 뛰어다녀서... 기억해요...)
    그 사이 타올라라 검도 절판됐군요;; 타올라라 검하고 료마가 간다를 같은 시기에 연재했다고 들었는데 그 부분도 재밌고요. 같이 막말 다룬 '막말의 암살자들'도 재밌어요(이쪽은 유신지사들 위주인 듯한...)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9 카레왕
    작성일
    12.02.28 23:02
    No. 2

    시바 료타로 작가 작품은 료마가 간다 밖에 읽은 게 없습니다. 굉장히 역사 인물 소설로서 재미 있게 풀어나가면서 적절히 작가 나름의 해석도 곁들인... 독자 입장에선 이상적인 역사 소설이었습니다.

    아, 그리고 고하토.... 대학교 2학년 때 보고 뿜었...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 [탈퇴계정]
    작성일
    12.02.29 01:13
    No. 3

    카레왕님, 글 쓴 분이 인상적이라고 하신 '미소년 검객 소자부로'가 고하토의 원작이에요.
    전 정작 그 편은 그다지 인상에 안 남았는데 의외로 깜짝 놀라는 분들이 많군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29 스톤부르크
    작성일
    12.02.29 23:32
    No. 4

    문장을 맺고 끊는게 정말 절묘하고 강렬하죠. 다년간에 걸쳐 벌어지는 일을 굉장히 자연스레 술술 서술하는게 참 분위기 좋더군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43 이게뭐야
    작성일
    12.03.01 21:44
    No. 5

    이거 언제 나왔어요? 몇년전에 신선조 관련물 찾다가 타올라라 검밖에 없어서 그거만 사봤었는데...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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