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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룡왕1,2권 감상

작성자
Lv.74 수달2
작성
10.12.24 20:46
조회
2,459

작가명 : 적룡왕

작품명 : 김형석

출판사 : 파피루스

0.

소설을 이루는 몇 가지 근본 요소들이 있다. 인물, 배경(세계관), 서사(이야기). 이 중 서사를 구상할 때, 작가는 이야기의 진행 속도를 어느 정도로 맞출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배경이나 인물에 대한 묘사가 섬세하고 방대할수록 서사의 진행속도는 느려진다. 반대로 이야기의 속도감을 빠르게 조절하기 위해서는 사건의 진행과정 자체를 서술하는 것에 집중해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배경이나 인물의 감정, 심리에 대한 세밀하고 정교한 묘사를 어느 정도 생략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적룡왕은 글을 서술함에 있어 후자에 집중하고 있다. 인물의 감정과 심리에 대해서는 분량을 할애하고 있지만 사건이 발생하는 장소에 대한 공간적 묘사나 시간적 설명(배경에 대한 서술)이 미진한 구석이 있다. 결과적으로 사건 진행이 쾌속하여 읽기에 시원시원하고 호쾌한 맛이 있지만, 독자가 작품에 감정이입하기 위해 필요한 지표 자체가 너무 휙휙 지나가는 바람에 외려 몰입감을 얼마간 해치게 되었다.

본래, 소설의 기반이 되는 ‘배경’ 위에서 각각의 ‘인물’들이 하나의 흥미로운 ‘이야기’를 엮어나감에 있어 모든 요소가 다른 요소들에 압도되지 않은 채 각자의 의미를 뽐내면서도 그것들이 결합하여 다시 새로운 하나의 총체적 의미를 만들어내도록 구조화하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적룡왕은 균형 잡힌 소설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1.

그러나 오엔이라는 인물 자체에 대해서는 좀 더 집중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작가가 스피디한 진행에 초점을 맞추면서도 주인공 오엔의 내면 묘사에는 공을 들이고 있으며, 강한 인간 이라는 테마로 이야기해볼 만한 여지가 충분하기 때문이다. 전작 [마도공학자]에서도 다소 빠른 사건 진행 속에서 작가가 집중하고 있던 지점은 렌 이라는 인물 자체였다.

렌은 전설 정도로 치부되는 마도공학의 전인으로서, 오엔은 과거의 절대자 광왕으로서 그 강인함을 드러낸다. 그러나 그 강함의 성격은 확연하게 다르다.

먼저, 렌의 경우 작품의 시작부터 끝까지 결코 혼자만의 힘으로 싸우지 않는다. 렌은 개인 차원의 신체적 무력이 작품 내 다른 인물들과 비교하여 현저히 떨어진다. 초반에는 마도공학기술을 사용할 시간을 벌기 위해 동료들의 호위를 받아야 했고, 마장기를 제작하여 혼자 싸울 수 있게 되었을 때에도 종국에는 불안정한 동력을 제어하기 위해 다른 등장인물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이처럼 렌은 강력하지만 혼자서는 결코 무적이라 할 수 없는 불완전한 모습을, 그렇기 때문에 도리어 인간적인 면모를 보인다. 렌은 소중한 이들에게 의지할 줄 안다. 동시에 그들에게 큰 의지처가 되어준다. 이것이 렌이 강한 이유이다. 복잡한 이해관계로 얽혀있어 자칫 혼란과 폭력으로 점철될 수 있는 사람들의 중심에 서서 그들이 서로에게 의지할 수 있게끔 만드는 것이 렌의 강함이다. 타인과의 신뢰와 협력을 통해 렌은 진정으로 강한 힘을 얻고, 마침내는 절대적이라고 해도 좋을 마지막 적과 싸워 이겨낸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렌이 기본적으로 타인의 선의를 믿는 인간이며, 그 믿음이 옳다는 신념이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이 꺾이지 않는 불굴의 신념이 진정한 강함의 한 방식이라는 것을 작가는 렌이라는 인물을 통해 [마도공학자]에서 그려내고자 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이에 비해, 광왕 오엔은 다르다. 조금씩 드러나는 그의 과거사에 대한 내용과 그의 언행으로 짐작해보면 오엔은 오로지 그 홀로 드높은 오만한 절대자이다. 그는 렌과 달리 막대한 힘과 기오막측한 기술들을 바탕으로 전천후 능력을 발휘하며 앞을 가로막는 적들을 혼자서 짓밟는다. 이러한 면모는 마치 [마도공학자]에서 세계의 모든 것을 주재했던 유아독존적 절대자를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과연 이러한 강함이 인간의 강함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 홀로 완전무결한 절대적 존재는 인간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다. 그것은 차라리 신적이다. 그리고 신적인 강함은 [마도공학자]의 마지막에서 이미 한 번 몰락했다. 바로 렌의 인간적인 강함에 의해서.

여기에 [적룡왕]의 감상 포인트가 있다고 말하면 지나친 것일까. 주인공인 오엔의 전생은 광왕인데 어째서 작품의 제목은 적룡왕인가? 작품 내 역사 속 영웅들인 성왕 패왕 군왕 용왕 중 용왕의 시대가 가장 안정적이고 평화로웠다고 했다. 다시 여기에 적에게는 가차 없이 붉은 피를 흩뿌리는 모습에 ‘적’ 한 글자가 붙어 신적인 강자에 가까웠던 광왕이 진정으로 인간적인 강자 적룡왕으로 거듭나는 이야기가 전개되지 않을까 싶다. 오엔은 잔인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에게 적대시 하는 존재에 한해서만 자비를 베풀지 않았다는 점이다. 가족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있고, 자존심을 지킬 수 있는 능력과 신념이 있는 자라면 충분히 동등한 친우로서 대우하려고 한다. 타인과 더불어 살아가려는 인간적인 모습이 오엔에게는 분명히 남아있다. 그 높은 프라이드 때문에 잘 드러나지 않을 뿐이지, 그는 나홀로 잘난 존재라기보다는 오히려 인정할 만한 이는 인정하고 신뢰할 수 있는 면모를 내면에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는 광왕이지만 이제 단순한 광왕이 아니라 동시에 농노로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오엔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그에게는 변화의 여지가 있다. 그는 작품의 말미에서도 강력한 카리스마적 존재로서 우뚝 서있겠지만, 동시에 좀 더 주변을 살필 수 있는 인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2.

악마의 권능이라는 재밌는 설정이 오엔이 그저 자존광대하기만한 신적 존재로 귀결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악마의 권능이 부과한 선천적 살의에 대해 오엔은 이미 불쾌한 저항감을 느끼고 있으며, 악마의 권능이 다른 악마의 권능을 흡수할 수 있다는 사실은 결국 모든 악마의 권능이 한 자리에 모여 탄생하게 될 모종의 절대적 존재를 예감하게 한다. 그 신적 존재와 정면 대결하며 오엔은 비로소 진정한 강자로 거듭나게 되지 않을까 싶다.


Comment ' 4

  • 작성자
    Lv.55 sard
    작성일
    10.12.24 22:34
    No. 1

    좋은 감상 입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79 키라라라
    작성일
    10.12.25 01:38
    No. 2

    뇌가 없는 주인공 같아서 좀... 그 초반에 나오는 뭐시기 후작인지
    뭔지도 정신병자 같고요. 전작들에 비해 상당히 퀄러티가 낮아졌다고
    봅니다.. 전.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50 묵현사
    작성일
    10.12.25 19:20
    No. 3

    뭐랄까, 감상글의 퀼리티가 매우 높은 것 같네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천기룡
    작성일
    10.12.27 00:32
    No. 4

    흠... 감상글만 봐서는 너무 보고 싶은데
    밑에 댓글이....ㄷㄷㄷ
    고민되네요...

    찬성: 0 | 반대: 0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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