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월영신
작품명 : 천하제일 이인자
[ 미리니름 있습니다 ]
요즘 개학하고, 적응하기도 힘들고 복잡한 일이 많아서 상당히 오랜만에 무협에 손 댔습니다. 머리 아프고, 복잡한 이야기는 읽기 귀찮아서 전에 언뜻 '키잡 무협'이라는 얘길 들어서 나름 인상에 깊게 남았던 천하제일 이인자를 뽑아들게 되었습니다.
...어라, 재밌네.
솔직히 별로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초반부도 그냥저냥이였고, 련주의 무공을 열 가지나 얻었을 때는 '무공을 이렇게 많이 주는 걸 보니 한두 개만 쓰고 다 묻히겠구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왠걸, 읽다 보니 '금룡진천하'와 '천년용왕'에서 유쾌한 부분만 뽑아낸 듯한 기분이 들더군요. 상기 두 작품은 읽다가 답답해서 집어 던져버렸는데, 천하제일 이인자는 손에 든 순간 무슨 접착제라도 붙여놓은 것처럼 순식간에 막권까지 읽어내려갔습니다.
주인공 진백천은 적당히 시원시원하면서 감정이입하기 굉장히 좋았고, 가히 두 자리 수에 가까운 히로인들도 모두들 하나 하나 매력이 있었습니다. 대부분 이런 류의 무협에선 히로인들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경우가 태반인데, 천하제일 이인자는 그런 문제는 거의 없더군요. 뭐, 존재감 자체가 흐릿한 녀석은 몇몇 있지만서도.
천하제일 이인자에서, 독창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설정은 하나도 없습니다. 잡기에 능한 주인공이라는 것은 이미 황규영 작가님 작품이 가지고 있는 심볼이나 마찬가지이고, '진백천'이라는. 적당히 사악하면서 돈 밝히는 캐릭터도 결코 낯설지 않은 모습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부하다기보단 재밌습니다. 작가는 기존에 '성공한', 혹은 '먹힌' 설정들을 이곳 저곳에서 끌어와서, 하나의 작품을 완성한 겁니다. 어찌 보면 달빛 조각사도 이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겠네요.
단, 제 과한 염려일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패턴은 한두 번은 통할지 몰라도, 그 이상으로는 안통한다는 겁니다ㅡㅡ;; 이곳 저곳에서 설정을 끌어오는 것은, 오히려 창작보다도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일정한 주기를 둔다면 괜찮을지 모르겠지만, 이런 패턴의 글을 연속해서 써낸다면 결국 독자들이 떠나게 될수도 있습니다. 뭐, 앞서 말한대로 과한 걱정이였으면 좋겠지만.
작품에서 몇 가지 아쉬운 점을 꼽는다면, 결코 12권에 완결낼 분량이 아니였다는 겁니다. 주인공이 기억 상실에 걸린 후부터의 급전개, 그리고 12권에서의 급전개. 특히 12권의 급전개는... 2권 분량으로 나누는 게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뭐, 확실히 11권에 긴장감을 한 번에 몰아간다는 기분으로서는 나쁘지 않았습니다만, 작가분께서 약간 욕심을 부린 듯한 기분이 듭니다. 게다가 마감에 쫓긴건지 인명이 바뀌었다던가, 설정에 미묘한 오류라던가 하는 것도 상당히 눈에 띄더군요. 아쉽습니다.
그래도 결말 자체는 좋았습니다. 특히 진백천의 스승 군단(...)들이 몰려드는 장면과, 련주가 진백천을 떠올리는 장면은 명장면입니다. 유설영 비중좀 늘리고, 이 장면에서 좀 더 공을 들이는 것도 나쁘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지만, 뭐. 이미 완결난 소설을 갖고 더 뭐라고 말하기도 그렇군요. 떡밥이 회수되지 않은 것도 아쉽지만, 오히려 이 정도로 끝낸 게 좋았을지도 모르겠네요.
아. 근데 작가님, 후기에 덕협지니, 오덕지니 하는 소리를 듣는다고 하셨는데.
...맞잖아요? 본격 덕후인 제 눈에 보이는 가히 샐 수도 없는 패러디들. 당장 생각나는 것들만 해도 슬램 덩크, 데모노포비아, 프린세스 메이커, 페이트 스테이 나이트 등등. 정밀하게 뒤져보면 더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뭐, 오랜만에 즐겁게, 아무 생각 없이 재밌게 읽었던 것 같습니다. 두서 없는 글이지만, 잘 읽어주셨습니다.
P.S 유설영의 별호였던 폭...은 역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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