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성진
작품명 : 더 로드 (6권까지, 현재 7권 출간 중)
출판사 : 청어람
저는 온라인 게임을 전혀 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오락실 게임에서 게임이 진화할 때쯤 손을 떼었거든요. 놀기 위해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게 저에게는 좀 낯설었습니다. 귀찮기도 했고요.
‘ 보글보글’ 같은 몇몇 오락실 게임은 최종 라운드까지 갈 정도로 몰입했지만, 할 때마다 돌출 상황이 등장하는 ‘새로움’보다는, 어디쯤 가면 뭐가 있고 어디를 깨면 아이템이 등장한다 같은 ‘익숙함’을 더 선호했던 것 같아요. 머리를 쓰며 하는 오락보다는 몸에 익어 편하게 시간을 잊을 수 있는 게임이 더 좋았죠. 그래서인지 온라인 게임에는 그다지 매력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이미 놀거리가 잔뜩 있는데 공부까지 하며 새로운 놀이를 찾을 이유는 제게 없었거든요.
그래서일 겁니다. 온라인 게임을 배경으로 하는 게임소설이 제게 낯선 즐거움을 선사하는 것은. 전혀 모르는 세계이다 보니, 오히려 재미있더군요.
차원 이동을 소재로 한 판타지를 볼 때 현실과 이계가 중복되어 그려지면, 대개는 둘 중 한 곳을 다룬 이야기가 재미없어지기 쉽습니다. 이계 쪽 이야기가 재미있으면 현실 쪽이 재미없고, 현실 쪽 이야기가 재미있으면 이계 쪽이 재미없달까요? 이는 글에서 다룬 이야기의 방점이 둘 중 어느 쪽에 찍혀 있냐에 따라 갈리는 듯합니다.
실컷 몰입해 읽던 글의 세계가 갑자기 바뀌면 글 안의 현실감이 투두둑 떨어지기 마련이니까요.
그런데 게임소설은 좀 다르더군요.
게임 속 세계와 현실 세계가 둘 다 글 속의 현실입니다. 게임 속 이야기가 나와도, 게임을 끝내고 현실 이야기가 나와도 자연스럽습니다. 여타 장르에서는 발견하기 어려운 장점이지요.
하지만 게임소설들을 한꺼번에 보다 보니, 어느덧 재미가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가상현실게임에, 게임으로 돈을 버는 다크게이머, 유저보다는 NPC와 더 인간적 관계를 맺은 채 퀘스트 해결을 해나가는 줄거리들이 거기서 거기인 글이 참 많았거든요.
그러다 얼마 전, <더 로드>를 보았습니다.
게임소설 <더 로드>는 재생물과 게임소설이라는 두 장르를 한데 엮은 출발을 보여 줍니다. 세부 장르의 크로스오버는 언제나 새로운 재미를 창출하죠. 익숙한 장르들을 섞더라도 그 혼합을 처음 보았을 때는 역시나 ‘새로움’이 느껴지니까요.
막강한 주인공이 등장해 시원시원하게 글을 전개한 <수신호위>도 재미있게 보았지만, 게임소설 <더 로드>는 또 다르더군요.
무협인 <수신호위>를 읽을 때는 어딘가 망설이는 기색이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더 로드>에는 그런 망설임이 전혀 보이지 않더군요.
글의 세계관을 완전히 장악한 채 자신만만하게 썼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각 권의 말미에 다음 권에 대한 기대감을 주는 스토리텔링에는 여유마저 느꼈으니까요. <수신호위>를 볼 때는 보지 못했던 면이었죠.
5권부터 보여 준 ‘미스터리’의 요소가 조금 아쉽긴 했습니다.
제가 <더 로드>에 매력을 느낀 이유는 게임소설과 결합한 재생물이라는 점 때문이었는데, 그것이 실체를 알 수 없는 미스터리로 치환되었더군요.
독자 입장에서는 약간의 배신감(?)마저 느꼈습니다만, 워낙 시원시원하게 전개된 글이라 읽는 데 무리는 없었습니다. 설정이야 뭐 어디까지나 창조자의 몫이니까요.
1인칭 소설이지만, ‘나’가 주인공 한 명이 아니라 때때로 다른 등장인물의 1인칭으로 화하는 것은 조금 불만입니다. 한 텍스트 안에 신독도 ‘나’이고, 성진도 ‘나’라면 읽는 입장에선 몰입이 깨지는 화자의 중첩이니까요.
이 글은 1인칭과 3인칭을 혼용한 복합시점의 글이기 때문에 ‘나’는 주인공인 신에게 한정하는 것이 당연하다 봅니다.
하지만 강약을 조율하다 각 권의 말미에 힘을 줘 기대감을 증폭시키는 스토리텔링이 정말 좋더군요.
쉴 새 없이 한 번에 다 읽었으니 ‘몰입도’라는 면에서 엄지를 들 수밖에 없습니다.
부디, 다른 장르(출간 중인 수신호위)를 쓸 때도 이번 같은 자신감을 보여 주었으면 합니다.
Comment '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