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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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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SanSan
작성
07.10.10 12:23
조회
1,696

작가명 : 별도

작품명 : 검은여우 독심호리

출판사 :

1. 본 시리즈와 제임스본드 시리즈의 차이?  

뜬금없지만, 잠시 영화 이야기를 해보자. 제임스본드 시리즈를 보며 난 항상 느꼈던 점이 있다. 이게 스파이 주역의 첩보물인가 첨단장비가 주역인 공상과학물인가. 어디에도 '스파이'에 대한 진지한 고찰이 보이지 않았다. (제임스 본드 시리즈 팬 분들께 미안한 이야기이긴 하지만) 여자 꼬시기 좋아하고 폼 잡기 좋아하는 멋드러진 신사가 나와서 오만 첨단장비를 써서 별 시덥잖은 음모를 깨부수고 막판에 여자랑 침대에서 뒹구는 것 뿐이지 않은가.

그러다 본 시리즈를 접하게 되었다. 아, 이거 정말 대단하다. 액션? 물론 굉장하다. 스토리? 좋지. 그러나 그보다 내가 감탄한 점은, '도대체 훈련받은 특수요원이란 녀석이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 깊은 고민이 보인다는 것이다.

그저 평범하게 거리를 걸어가면서도 항상 사주경계를 잊지 않는다. 흘러가는 인파 속의 아주 사소한 위화감도 놓치지 않는다. 철저하게 자기를 감추고, 항상 우위를 확보하려 노력하며, 어떤 극한 상황에서도 끔찍한 훈련을 통해 갈고닦은 저력을 발휘한다.

고민한 깊이가 다른 것이다. 겉을 핥고 끝나는 게 아니라, 속까지 파고든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본 시리즈를 너무나 좋아한다. 그리고 난 독심호리에서 그런 면을 발견했다. 기존의 무협에서는 쉬이 보지 못한 심도있는 고찰을 느꼈다. 그저 분위기만 잡으며 강력한 무예와 냉혹한 손속 운운 하는 묘사로 대충 겉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머리를 쓰고 상황을 분석하며 최선을 선택하는 그런 주인공을 만나볼 수 있었던 것이다.

2. 영리하고 교활한, 검은 여우  

여우는 (적어도 이미지상으로는) 영리하다. 이 책의 주인공 '강' 역시 영리하다. 결정적으로 여타 무협과 다른 점은, 말로만 영리하다로 끝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엄청난 수련을 거쳤다면서 실제로 강호에 나오면 칼질만 하지 그 훈련의 성과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도 않는 애들이 참 많다. 도무지 알 수 없는 정보를 당연하다는 듯이 알고, 추리해 내는 어이없는 천재들도 많다. 사고과정은 그냥 생략하고 머리가 좋으니 안다는 식의 막가파도 적지 않다.

강은 다르다. 그는 물론 원래부터 매우 영리했다. 영악하다는 편이 더 어울리리라. 하지만 그는 지옥훈련을 통해서 그것을 더욱 갈고닦고, 훈련에서 배운 것을 썩히지 않는다. 그리하여 강의 통찰력이 더욱 더 예리해지고, 다양한 상황에 대한 대처능력이 증가하는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강은 '요원의 탈을 쓴 주인공'이 아니라 '주인공인 요원'이다.

주변지형지물을 이용하고, 적절한 시기를 가늠하며, 사람의 심리를 파헤치고 이용한다. 방심하지 않고 상황정보를 끊임없이 갱신하며 분석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미리 대비하고 적절히 대응한다.

이런 모습은 하루이틀 대충 고민해서 펜을 잡아서는 절대로 써낼 수 없는 것이다. 머리 아플 정도로 고민하고, 작가 스스로가 수도 없이 요원의 입장, 강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고민해야만 쓸 수 있는 것이다.

3. 기계적이며 유능하다  

요원인 강은 기계적인 존재라 표현하고 싶다. 시키는 것만 할 수 있다는 부정적 의미가 아니라, 흐트러짐 없이 필요한 것을 수행하고 배운 것을 써먹을 수 있다는 긍정적 의미에서. 냉혹하다거나 잔인하다는 표현은 좀 어울리지 않는듯 하다. 그는 임무 수행을 위해, 혹은 자신의 생존을 위해 행동하지 복수나 사적인 감정이라는 행동원리를 따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계적이다.

목적을 위해서는 속마음을 숨긴 채 타인에게 접근하고, 속이고, 명예롭게 모든 은원을 정리하고 은퇴한 이라도 처리하고, 누군가를 희생시키며, 거리낌없이 살인을 행한다. 또 그런 임무 수행에 있어서 스스로가 가진 다재다능함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그 상황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파악해서 행한다. 그러니 유능하다.

4. 그러나 인간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은 인간적이다. 단순한 살인도구가 아니다. 이 점이야말로 강을 매력적이게 하는 것이 아닐까? 그는 목적을 위해 무엇이든 한다. 그러나 그 목적이 '자신만의 이익, 생존'이 아니기 때문에 그러한 단호함이 더욱 빛을 발한다.

그는 '나만' 살아남고자 하지 않는다. '모두가', 혹은 그게 불가능하다면 '가능한 많은 이가' 살아남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다. 그렇기에 목적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 강의 모습이 훨씬 더 멋진 것이다.

철저히 개인을 양성할 목적인 기관에서 유대감을 형성하고, 모두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고, 최대한 많이 살아남기 위해 애쓰는 강의 모습을 냉정하고 철저한 인간이라고 단순하게 평가할 수는 없다. 그가 사람을 끌어들이고, 계략을 꾸미고, 그리고 스스로를 던지며 저항해서 결국엔 목적을 달성하는 모습은 이제까지의 무협에서 보기 힘든 최고의 명장면 중 하나였다.

특히나 행수 훈련 마지막 부분의, 후창은 '려원'. 이거 왠지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읽어본 이라면 알 것이다. 아쉽게 끝난 한 행수의 삶을. 그녀를 생각하는 강의 모습, 너무나 눈부시지 않은가.

5. 즐거운 성장과정  

독심호리의 가장 큰 즐거움으로 빠질 수 없는 것이, 주인공 강의 성장 과정이다. 강이 조금씩 조금씩 강해지는 모습을 너무나 맛깔나게 그려내고 있어서 그걸 읽는 것만으로도 흐뭇했다. 90% 이상의 다른 무협 주인공처럼 절세무적의 검법같은 걸 익히지는 못했지만, 여기서 조금 저기서 조금 필요한 능력을 얻어가기 시작한다.

더 멋진 것은 강이 자기가 필요한 능력을 스스로 선택해서 맞춤식으로 강해져 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대다수의 다른 요원들처럼 독문무기를 섣불리 고르지 않고, 다양한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여러 무기에 숙달하는 쪽을 선택한다. 그러면서도 일격필살을 이루기 위한 길을 자기 나름대로 생각해서, 그것을 요구하고 배워낸다. 이것도 다 '조직'이라는 특수한 환경이 갖추어져 있고, 강이 안목이 있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오마의 과거에 얽혀들면서 몇가지 절세의 무공도 익혀낸다. 그 중 상당수는 불완전한 것이고, 억지로 배운 것도 있지만 바쁜 임무 수행의 와중에도 틈틈히 강해져 가는 그를 보는 것은 유쾌한 일이다.

6. 먼치킨?  

내가 보기엔 그는 먼치킨이 아니다.(적어도 아직은 아니다) 이렇게 많은 힘을 얻지만, 먼치킨으로 일직선 고고 하지 않는다. 무력이 모자라 동료를 구하러 들어갔다가 죽음의 위기에 처하는 먼치킨물은 본 적이 없다.

비록 강의 무력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적절히 강도를 조절함으로써 아슬아슬한 재미를 놓치지 않고 있다. 뭐니뭐니 해도 독심호리 최고의 재미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강이 자기의 놀라운 상황대처능력과 계략을 발휘하며 날카로운 무력을 더해서 위기를 헤쳐나오는 그런 모습 아닐까?

강이 먼치킨이라면 이런 재미는 포기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지금의 속도조절은 너무나 마음에 든다. 마치 전략시뮬레이션 게임을 하면서 최대한 머리를 짜내어 난해한 미션들을 해결해 나가는 듯한 그런 기분이 든다고나 할까? 강이 그 스테이지를 클리어하면 마치 나도 같이 클리어 한 것처럼 짜릿하다.

7. 복잡하지만 어지럽지 않다  

겨우 두권 분량밖에 안되지만, 독심호리는 상당히 복잡다단한 이야기다. 작게는 요원들간의 관계나 동창 고위인물들 간의 알력에서, 크게는 오마의 이야기와 황실과 무림의 관계에 이르기까지. 거기에 강의 개인적인 사정까지 끼어들면 꽤나 복잡하다. 그러나 그것을 전혀 느끼지 못할 정도로 차분하게 풀어내고 있다는 점이 멋지다.

이야기가 복잡하다. 그렇기 때문에 앞을 예측하기 어렵고 두근두근한다. 그런데도 어지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강의 뒤를 편안하게 따라가며 이야기를 즐길 수 있다. 말로는 쉽지만 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이 부분만큼은 정말 「글솜씨」라고밖엔 표현할 수 없다. 별도님께서 이야기를 풀어내는 능력은 정말 경이롭다.

8. 총 평  

탄탄한 스토리는 눈을 뗄 수 없게 만들며, 강이 지닌 독특한 유형의 카리스마는 그를 사랑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무림에서 펼쳐지는 진짜배기 특수요원 이야기를 보고 싶은 분이라면 필독. 주인공이 먼치킨이어야 하는 분이라도 취향을 커버할 수 있을 것이다. 절대적인 무력을 보유하고 있지는 않아도, 강은 다른 의미로 정말 강하니까. 근래 보기 드문 수작임을 보증한다. 강력추천.

http://blog.naver.com/serpent/110022432297


Comment ' 4

  • 작성자
    Lv.20 인의검사
    작성일
    07.10.10 19:45
    No. 1

    현재 무협 작가님 중에서 가장 '머리 좋은 캐릭터'를 그려내시는 분은 별도님이 아니실까 합니다. ^^
    본인이 똑똑하거나, 본인은 막가파인데 애인이 똑똑하거나... ^^;
    칠독마, 패왕, 독심호리 모두 분야는 다르지만 '천재'와 '지도자'는 어떤 사고를 하는지 명백한 흐름을 보여주시죠. ^^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27 서희(曙曦)
    작성일
    07.10.11 09:32
    No. 2

    아아, 두말 할 것 없이 모두 동감//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산아이
    작성일
    07.10.11 17:35
    No. 3

    참 재미있습니다.
    다만, 주인공이 아직 너무 어리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린 주인공이 너무 뛰어나니까 평범한 독자로서는 조금 거리감이 든달까요.

    뭐 천재를 범인이 어떻게 이해하겠습니까.
    그 점만 아니라면 정말 재미있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8 moa
    작성일
    07.10.11 18:24
    No. 4

    그거야 나이대에 따라서 다른 문제일 수 있고, 또 어디에 중점을 두고 보느냐에 갈리는 개인적인 문제라서 작품상으로 흠잡을 부분은 아니라고 봅니다 ㅎ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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