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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정담

우리 모두 웃어봐요! 우리들의 이야기로.



작성자
Lv.4 인력난
작성
11.11.07 12:36
조회
589

“그, 그러니까! 오빠한테 접근하지 마세요!”

어떠냐고 묻는다면, 그야…… 조금 애매한 고백이었다.

앞뒤 볼 것 없이 뛰어드는 것이야 예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기쁘냐고 묻는다면 솔직히 미묘한 정도랄까.

사실 기쁘기보다는 당황스러웠다.

당황스러움으로 얼어붙었다.

얼어붙었다는 표현을 쓰는 것이 맞는지 모르겠다. 여기서는 ‘굳었다’ 내지 ‘멈췄다’ 라는 표현이 어울릴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현실을 직시하지 못한 채 이런 시시껄렁한 생각이나 하는 내 머리가 멈춰버렸다는 말이다.

고백.

늦가을 햇볕처럼 내리쬐는 조명등에 이마를 타고 땀이 흘렀다. 공기는 텁텁하고 오늘따라 유난히 침이 마른다. 무심코 손을 내려다보니 배어나온 땀으로 촉촉이 젖어있다.

녹슨 자전거를 밀듯이 삐걱거리는 머리를 돌려 오늘 있었던 일을 되짚어 본다. 언제나와 같은 규정된 복장, 규정된 시간에 집을 나서 학교로 들어온 일이 생각났다. 다른 점이 있다면 내가 조금 일찍 일어난 정도다.

분명 저번에 나눠준 종이에는 [금일 1학년의 입학식이 있을 터이니 대강당에서 전 학년이 모여 축하해준다.] 따위에 소식이 적혀 있었다. 그에 따라 본의 아니게 일찍 일어난 나는, 하얀 교복셔츠를 단정하게 다려 먼저 출발하는 동생의 손에 넘겨주었다. 고작 그 정도의 차이, 그 정도의 아침이었을 뿐이다. 특이한 점은 아무것도 없었다.

1교시가 시작하기 전에 도착한 강당은 딱히 묘사할 것도 없는 흔하디 흔한 강당이었다. 가운데 보이는 사열대와 넓은 층계참, 2층에는 신입생을 제외한 학생들이 앉아 있고 이제 막 들어온 1학년들은 강당 가운데에 가지런히 도열해 있었다. 본래라면 동급생들과 같이 나 또한 2층에 있었을 일이나, 주임선생에 인도로 1층 구석에 있는 엠프 바로 앞에 서게 된 것이다. 얼핏 듣기론 자신이 무슨 상을 받는다는 것 같았으나, 위치상의 문제로 둥둥거리는 엠프의 진동만이 나의 몸을 시끄럽게 감싸고 있었다. 차라리 고개를 숙이는 편이 나은지라 듣는 둥 마는 둥 그렇게 입학식을 때우고 있는 참이었다.

“────────다!”

“……어?”

필사적으로 점심메뉴를 떠올리던 내가 고개를 든 것은 그때였다. 희미하지만 또렷하게 들리는 여학생의 목소리, 엠프를 통해 울려 퍼지는 그녀의 미성은 무척이나 아름다웠고 청초하게 피어나는 난초를 연상케 했다. 무엇보다, 가늘고 새된 그 목소리는 나에겐 무척이나 낯익은 자의 것이었기에 도저히 지나칠 수 없었던 듯싶다.

“에─엑?”  

목소리 뿐만이 아니다. 새하얀 강단위에 선 가녀린 실루엣은 너무나 익숙했다. 도톰한 입술과 어깨까지 내려오는 검은 머릿결, 머리부터 발끝까지 말끔한 그녀의 복장은 그녀의 청초한 분위기와 어울려 학생회장, 내지 학년의 톱이라는 인상이 강했다. 아니, 실제로도 강단에 나가 연설을 하는 것을 보니 신입생 중에서도 톱만이 설 수 있다는 그 유명한 ‘대표연설’이다. 나중에야 소리 소문 없이 잦아들긴 하지만 그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학기 초에는 유행에 가까운 인기를 끌게 된다…… 라는 것이 나의 주된 인식이었다. 아르바이트 파트너인 레이나가 나중에 대표연설을 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도 상당히 놀랐었다. 2학년 톱인 그녀가 아르바이트나 하고 있다는 것도, 1학년 때부터 남자친구가 없다는 것도.

궁금하여 되묻는 나에게 레이나는 왠지 섭섭한 얼굴이 되었던가.

그래, 그 일은 그렇다고 치고,  

강단에 선 소녀는 말을 이었다.

“그, 그래서 저희 후배들은 최선을 다해 이 학교를 빛내도록 하겠스,(이 부분에서 혀를 깨물었다)습니다. 끝으로 존경하는 선생님과 이 자리를 참석해주신 모든 선배님들 정말 감사드립니다!”

짝짝짝!

“……정말 누구 닮아서 말도 제대로 못하네.”

“뭐, 나쁘게 생각하지는 마.”

“이, 이, 멍청이가……! 난 지금 널 놀리는 거라고! 저 녀석한테는 아무 감정 없어!”

왠지 화를 내버리는 2학년 톱, 자칭 레이나.

내 뒤에는 레이나가 서있었다.

외국자녀인 그녀의 머리는 노란색에 약간 초콜릿을 가미한듯한 따스한 감색이다. 추운 기가 덜가신 봄이었기에 베이지색 블라우스를 걸친 그녀의 모습은 웅크린 주머니쥐를 떠올리게 했다……라고 해도 이런 말을 했다간 정강이를 걷어차이겠지.

“그래서, 이번 아르바이트는 어디서 할래?”

갑자기 화제를 돌리는 레이나.

“음…… 근처에서 코믹페스티벌인가 한다는데 그곳에 알바 하는 건?”

“기각.”

“어째서?”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거절하는 레이나에게 물었다.

“인형 옷이라면 질색이야!!! 멍청한 꼬마들이 발길질을 한다고, 언젠가 사그리 붙잡아서 인두로 지진 후에 토막토막내서 개먹이로 던져주겠어, 크흐흐─.”

“……어, 미안……”

뭐랄까……진심으로 미안했다. 녀석은 모르겠지만 피니쉬를 날린 건 나였는데.

레이나는 흥, 하는 소리와 함께 만족한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사과한다면야 어쩔 수 없지. 뭐…… 네가 부탁한다면 이번 아르바이트도 갈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음…… 그러니까 인형 옷을 입는 것은 아냐. 축제에 맞는 옷으로 갈아입어야 하지만 개방된 좀 더 특별한 옷이라고 했어.”

“특별한 옷이라면 역시 나 같이 특별한 사람이 입어야지!”

어째선지 기세등등해서 내 등을 마구 내려치는 레이나였다.

그쯤에선, 강단에 선 소녀가 내려오려 하는 중이었다. 여운이 남은 탓인지 아쉬움으로 살짝 벌어진 입술, 부끄러움으로 상기된 얼굴은 여전히 붉었고 다리는 아까보다도 후들거리는 것 같았다. 그래도 가늘게 떨리는 마이크가 다시 올라가기 전까진 모두가 아무 생각이 없었다. 아니, 방심해있었다는 말이 맞을지 모른다. 실제로 소녀가 다시 마이크를 잡았을 때 아무도 제지할 생각을 못했으니까.  

“마, 마지막으로 말할게요!”

하얗게 다린 셔츠.

“이건 경고에요!”

그야 있는 힘껏.

소녀는 정말 있는 힘껏 외쳤다.

“우리 오빠는 내거니까 오빠한테 접근하지 마세요────!!!!!!!”

무슨 일인지 말 한번 더듬지 않고 순식간에 말해버린 소녀.

잘 다려진 하얀 셔츠를 입은 소녀는 아까 먼저 나갔던 나의,

친여동생이었다.


Comment ' 2

  • 작성자
    Lv.9 콤니노스
    작성일
    11.11.07 13:48
    No. 1

    그냥 다 떠나서, 소재가 음...좋게 말하자면 무지막지하게 취향 탈 소재네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5 작은네모
    작성일
    11.11.07 20:05
    No. 2

    나쁘게 말하면 덕스러운 소재네요 ( ..) 요새 나오는 라노벨 보니까 라노벨쪽으로 가면 승산이 없진 않을듯 하나 개인적으로는 시공이 오그라들었습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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