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세계를 해석하는 관점을 흔히 세계관이라고 하는데(ex. 유물론적 세계관), 요즘 독자들 사이에서는 작가가 소설 속에 설정해 둔 시공간, 즉 무대라는 뜻으로 사용되더군요. 예를 들면 무당마검과 화산질풍검은 무대를 공유하기는 하지만 세계관은 많이 다르지요. 주인공도 다르고, 화자도 다르며, 사람과 세상을 대하는 가치관 자체가 공통점이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 두 작품은 세계관을 공유한다, 이렇게 흔히 말하고 다른 곳에서도 세계관이라는 단어를 사전적인 의미와 크게 다르게 쓰이더군요. 제가 사용하는 세계관이라는 단어에는 인간관, 가치관, 사상이나 철학 이런 의미들이 총체적으로 내포되어 있는데 오독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세계관이라는 용어 사용에 대한 시비를 걸자는 건 아니고, 1권을 마치고 좀 편하게 문피아에 연재중인 소설들을 둘러봤습니다. 인기작 위주로 무료연재분까지만 읽거나 무료연재분의 일부만 읽어보고 느낀 감정은 좀 착잡하고 혼란스럽습니다.
미국의 인기 코미디언들은 웬만한 대스타들 못지 않은 사랑과 존경을 받습니다. 그들의 공연을 보며 맘껏 웃어제낄 수 있어서 그런 게 아니죠. 그들의 공연 장면을 보면 왜 사랑과 존경을 받는지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시대를 꿰뚫어 읽는 예리한 통찰력과 사람과 세계를 대하는 따듯한 시선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다못해 2분짜리 개그 한토막에서도 그들은 자신의 세계관을 맘껏 표현합니다. 청자들은 웃고 공감하면서 작은 감동까지 얻어갑니다. 마이클 잭슨이나 마돈나조차도 자신의 작품을 통해 창작자의 세계관을 숨기지 않습니다. 모든 예술이 그럴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제가 읽은 문피아의 적지 않은 작품들에는 작가의 세계관이 아예 없었습니다. 우연을 통해 능력을 얻고 사건에 뛰어들고 능력치가 올라가고 기연을 얻고 더 큰 악을 때려부숩니다. 무료 연재분까지만 읽어서 단언할 수는 없지만 그 패턴이 대체로 계속되는 것 같습니다. 그 중 어떤 작품은 의뭉하게 숨겨둔 작가의 세계관이 좀 더 효과적이고 감동적으로 후반에 드러날 수도 있을 겁니다만, 글을 보면 그 정도 힘을 숨겨둔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왜, 라는 의문이 들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왜 글을 쓰는 거지? 작가가 독자에게 할 말이 없이 사건의 기발함과 재미만으로 소설을 쓴다는 게 가능하단 말이야? 군대에서 고참이 보초서면서 신참 옆에 두고 과거에 여자 따먹은 이야기를 하는 느낌입니다. 재미있을 수 있지만 듣고 행복하거나 감동을 얻지는 못하지요. 더러는 귀를 파내고 싶기도 하고.
한 발 더 나아가, 금강문주는 요즘의 문피아를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 100억 매출이 넘는다는데 행복할까. 그래도 소설 창작의 극점을 밟아 본 그일텐데, 자신이 벌려놓은 판을 보며 어떤 느낌을 가질까. 자신이 세계를 구축해 놓은 장르문학이 총 가진 놈이 짱먹는 무법천지가 되어가는 꼴을 보며 가슴아파할까, 문피아의 잉여 자본이 축적되는 걸 보며 즐거워할까.
장르문학은 B급장르를 뜻하는 것이었던가. 야한 걸 원하는 자에게 포르노를 틀어주고, 잔인한 걸 원하는 자에게는 하드코어물을 보여주며 돈을 벌면 합목적인가.
가입한 지 한달이 다 되어가는데, 아직도 문피아를 모르겠습니다. 뭐하는 곳인지. 풍종호를 읽으며 느꼈던 행복감 같은 게 장르문학인줄 알았거든요.
좋은 작품들도 있는데, 일부를 보고선 지나치게 일반화하고 있기도 하겠지요. 숨어있는 진주를 찾아내는 행복감도 곳곳에 있겠지요.
그래도 이 기괴한 외로움은 없어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보여서 들어왔는데, 사람들이 모여있는 것은 분명히 맞는데, 내가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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