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고의 승리가 계산량으로 밀어붙인 거다
-라는 오해는 터무니없습니다. 개발자들이 거짓말을 한 게 아니라면요.
먼저, 듣기로는 CPU 1200개를 썼다 하는데, 여기저기 반응을 보니 보통 사람들에게는 이게 많아 보이는 모양입니다.
구글의 규모를 생각하면, 따로 계산은 안 해 봤지만 조금 과장해서 1200개는 백사장을 통째로 가져다 들이부을 수 있는 사람이 모래 한 줌만 퍼다 쓴 것과 같습니다. 소프트웨어를 검증하겠다고 하드웨어 스펙을 팍팍 낮췄는데 양으로 밀어붙였다는 말이 나오고 또 대부분 그걸 사실로 알고 있으니 당사자들로서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일 듯.
조금 애매한 비교 대상이지만 슈퍼컴퓨터에 대해 찾아봤습니다. 2014년 기사에 쓰이길, 텐허-2(당시 세계 1위)의 코어수가 312만개라고 하네요. CPU 개수는 아니지만 1200개와는 아예 단위가 다릅니다.
불과 며칠 전만 해도 알파고는 도전자로서 승리가 가능한지 불가능한지를 논했는데 이제는 승부의 공정성을 논하고 있네요. 불가능에 도전하는 도전자가 갖은 수를 다 쓰는 게 도대체 무슨 흠이 될 것이며, 실제로는 스스로 제약까지 건 채로 덤벼서 결국 승리를 따냈는데 여기저기서 치사하게 이겼느니 사기를 쳤느니 왈가왈부하고 있으니 솔직히 좀 불쌍할 지경입니다.
그리고 저번 글에도 썼지만 현재까지 풀리지 않은 문제들은 경우의 수가 사실상 무한한 거나 다름없습니다.
바둑 같은 문제는요. 가도 가도 수평선 밖에 안 보이는 패턴의 바다 한가운데에 똑 떨어져서 길을 찾는 겁니다. 배 자체는 컴퓨터가 훨씬 우월하지요. 하지만 바다가 너무 넓은 나머지 사람이나 컴퓨터나 입장이 다를 바 없어집니다. 내 위치가 어디인지, 어디로 가면 되는지, 해류는 어떤지, 쉴 수 있는 포인트가 어딘지 모든 게 그냥 막막합니다.
배가 아무리 좋아 봤자... 예를 들어 CPU 성능이 지금보다 백 배쯤 좋아진다 치면 배가 미친듯이 빨라지겠지요. 하지만 방향도 못 잡는 배가 아무리 빨라져본들 바다의 넓이에 비하면 티도 안 납니다. 지금까지는 경험과 직관으로 방향을 잡는 인간이 더 우월했던 것이고, 컴퓨터는 자동 항법 장치를 얼마나 잘 만드느냐가 성능을 좌우했습니다.
그래서, 컴퓨터가 같은 시간에 사람보다 훨씬 많은 경우를 따지는 건 사실이지만 그것만으로 해결되는 문제는 한참 전에 거진 다 풀렸다고 보는 게 맞습니다. brute force 따위로 되는 거였으면 바둑은 적어도 10년쯤 전에 정복됐겠죠. 저는 모 변호사님 말씀이 지렁이 방귀 뀌는 소리로 들립니다.
결론은 이거죠.
만든 사람 천재?
덧) 브루트 포스 진짜 별 거 아닙니다. 생 초짜도 일대일 코치해서 한 달쯤 가르치고 한 달 빡세게 굴리면 바둑 프로그램 충분히 만듭니다. 날고 긴다 하는 천재들한테 할 소리가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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