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수백년간 정론이라 여겨지던 이론이 뒤집히는 일이 잦아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수들은 과거의 지식 그대로 가르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 말은 지식은 업데이트가 늘 이뤄져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것은 특히 남을 가르치거나 이끄는 사람에게 필요한 덕목입니다.
자기 혼자 잘먹고 잘사는데는 옵션일 뿐이지 필수는 아니죠.
신립은 무능한 장수라기 보다는 깨어있지 못한 전형적인 인물입니다.
기존의 전술은 잘 알아도 응용하거나 새로이 개발해 내지 못하는 타입이라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신립은 “비록 왜군에 조총이 있다고는 하나 그 조총이라는게 쏠 때마다 맞힐 수 있겠겠습니까? ”라고 했는데, 그 조총을 가지고 여러해 연구에 연구를 거듭했던 일본군들은 3단배치로 로테이션으로 조총의 단점을 커버하고, 나아가 숙련도와 명중률을 끌어 올려 놓았습니다.
만일 같은 조총을 조선군에게 주어주었다고 해도 숙련도의 차이 때문에 일본군에 크게 밀렸을 것이 자명한 일이니 아군이 약세인 점은 커버하고 강세인 부분을 잘 활용하여 대처하는 전술을 잘 구상하고 펼칠 줄 알아야 하는 것인데, 조총을 지나치게 무시하고 간과하는 바람에 임진왜란은 필요이상으로 큰 화로 변해버렸죠.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징비록 드라마의 시작인 3년전부터 대비를 했어도 일본군을 제대로 막기는 어려웠을 것이라 봅니다. 다만 본래의 임진왜란이 7년간이나 이어진 사실과 달리 일본군이 완전한 승리를 얻지 못한채 1년을 버티지 못하고 물러나게 되지 않았을까 하는 정도로는 가능했지 않았나 싶습니다.
아무튼 총기의 발달 과정에서 늦어놓고도 이후 제대로 된 노력조차 하지 않은 조선 왕실은 정말 무능의 극치였던것 같습니다.
어떤 분들은 뛰어난 학문적 기술적 성과를 남긴 분들도 많다고 하는데, 그럼 뭐하는가요. 군사적 역량은 임진왜란 이후로도 한치로도 나아지지 못했는데 말입니다.
쌍령전투가 임진왜란 이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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