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한적한 지방이긴 해도... 그래도 제가 20대였을 땐 이곳에 학원들이 즐비했습니다. 5층 건물에 학원이 7개가 들어앉아 있기도 했으니까요. 우리 집 앞 상가로는 학원과 피시방, 오락실, 문방구, 군것질거리 등이 넘쳐나던 거리였죠. 피시방도 20군대가 넘었고... 그리고 강사들을 위한 술집과 노래방, 치킨집 등 사람들로 북적이던 동네였습니다.
인터넷 강의다 뭐니 해도 사실 부모들이 자녀를 학원에 보낼만한 이유는 있었죠. 경쟁력에서 밀리기도 했지만, 가장 큰 요인은 애들이 줄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아이들이 사라지기 시작하더군요. 학교로 치자면, 제가 고등학교 다닐 때만 해도 한 교실에 50명씩 북적거렸는데 요즘은 30명도 안 된다더군요. 우리 땐 부활동할 교실도 없어서 난리였는데, 이젠 빈 교실도 나오기 시작했구요.
학원이 망하고 그 다음 오락실, 피시방이 망합니다. 그리고 당연히 노점과 음식점이 망하죠. 동네 맛집들이 죄다 폰팔이로 대체되더군요. 정부의 청년 창업 유혹에 낚인 청년들이 폰팔이니 치킨집이니 5900피자집이니 뭐니 만들더니 3개월도 채 못 버티고 나가떨어집니다.
(분명 목 좋은 거리였는데, 1년만에 가계가 5번 바뀌는 것도 봤습니다. 떡볶이집->생선집->한의원->치킨집->현재는 맥주집이고요. 그것도 얼마나 갈런지는...)
그리고 결국 그 빈 자리에 교회가 다 들어서더군요. 요즘은 10m 단위로 교회가 하나씩 있어요. 저는 그쪽 분파를 잘 몰라서 구별할줄 모르지만, 이름이 다 다르게 쫙 깔려 있는거죠. 어찌보면 교회는 어른들의 학원이 아닐까 생각하네요. 뭐, 확실한 건 적어도 아이들을 위한 공간도 없고 아이들도 없다는 거죠.
그리고 그 아이들이 자라나면 국가를 먹여살리는 청년 인구가 됩니다. 청년층이 없다는 것은 가장 구매력이 큰 내수 시장 수요 창출자들이 사라진다는 것이죠. 기업가들이야 외국에 물건 팔면 된다고 생각할 테고 부자들은 상관없다 할지 모르지만, 한국 자본가의 부의 원천은 죄다 부동산이죠. 그 판 자체가 망하게 되기에 결국은 공멸하게 됩니다.
부동산 거품은 실수요와 상관없이 계속 가격이 오르는 현상일 겁니다. 우리 동네 상가들, 희한하게도 땅값은 더럽게 비싸요. 1년만에 5개 가게가 문닫고 나가는데 말이죠. 그리고 땅값이 비싸니까, 조금만 장사가 안 되도 문 닫고 나가야만 하게 됩니다. 그리고 한국의 금융 시스템으론 그 책임을 개인 자영업자가 모조리 떠맡게 되죠. 정작 대기업들은 부도나면 국민 세금으로 메꿔주는데 말입니다.
그렇게 부동산 가격이 오르다보니, 가장 큰 희생을 떠맡게 되는 건 집이나 가게터를 빌려야하는 청년들이죠. 가치에 비해 훨씬 비싼 값을 주고 땅을 얻어야 하니까요. 그리고 실제로 기존에 집을 사둔 장년층은 이 거품의 혜택을 조금 보긴 했습니다. 부동산 거품 아니었으면 어떻게 천만, 억 단위를 그렇게 쉽게 만져보겠습니까. 괜히 그들의 정치적 성향이 보수적인 게 아니죠.
하지만, 청년들 자체가 줄어들고 있으니 이들의 수요마저 사라진다면 어떻게 될까요? 가까운 미국과 일본의 예를 들지 않아도 부동산 거품이 터질거란 것은 쉽게 알 수 있죠. 수요가 없는데 높은 가격이 왜 유지가 되겠습니까. 한번 폭락하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가 없을 겁니다.
미국이야 말할 것도 없고 일본은 원체 건실한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이었죠. 그런 일본조차 청년에 대한 투자를 줄이고 건설 경기나 불러일으켜보려다가 노령화 사회를 맞아 철저히 패망했습니다. 사회 간접자본은 이미 포화상태에 이르러 더 투자 효율도 없는데 건설업체들에게 돈만 퍼다 주었던 거죠. 그리고 그 건설업체들은 그 돈으로 미쳤다고 투자를 하겠습니까? 훨씬 효율 좋은 부동산 사업에 뛰어들겠죠. 모 대기업은 5년 사이에 순자산이 122조까지 불어났다고 들었습니다. 6배 이상 늘어난 거죠. 그리고 그렇게 부동산에 투자를 하니 청년들 일자리는 더 줄어들었죠.
이미 그런 선례가 있는데, 우리는 똑같은 길을 걷지 못해서 안달이 나 있는 거 같습니다. 결국 각자 자기 집 마당의 작은 이득을 지키기 위해 둑이 무너지는 걸 구경만 하고 있는 셈이죠. 가재도구가 다 쓸려내려가봐야 수해 무서운 지 알게 될까요.
그리고 그렇다보니, 사람들이 더욱 정치에 무관심해지는 거 같습니다. 우리나라 국민성이 후진적이라 뭘 해도 안 바뀔 거란 생각이 팽배해있죠. 이런 악순환을 어떻게 끊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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