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영 악습의 원인이야 온갖 것이 있긴 한데, 제가 겪은 유형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군생활 오래한 선임이 간부들에게 평가 잘 받을 수 있고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는 노하우를 꽉 쥐고, 자기 말 잘 듣는 후임들에게만 가르쳐줬죠.
이게 참 더러운 게, 사람을 바보로 만들어버릴 수 있다는 겁니다. 예컨대 말 잘 안 드는 후임이 있을 경우, 그 후임에게는 노하우 안 가르쳐주고 후임의 후임에게 노하우를 가르쳐줘버립니다. 이 경우 후임의 후임이 더 일을 잘 하거나 간부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게 되고, 자연스럽게 후임은 자기 밑 사람보다 못한 인간이 되버리죠.
그래서 군생활 노하우를 조금이라도 더 들으려고 레알 구두를 핥듯이 기어야 했습니다. 그래야 자기도 ‘노하우’란 권력을 가지고 후임 위에 군림할 수 있으니까요.
이건 뭐랄까, 활자 인쇄술이 도입되기 전 교회와 같다고 비유할 수 있겠네요. 인쇄술이 도입되기 전에는 책값이 워낙 비쌌으니 교회나 권력자들만이 가질 수 있었고, 민중은 그들로부터 정보를 제공받아야만 했죠.
뭐... 그런 시대는 활자 인쇄술이 도입되고 값이 싸진 책들을 민중들이 직접 볼 수 있게 되면서 무너지고 말았죠. 그리고 그 역사는 “권력의 기반이 되는 ‘자원’을 빼앗아서 약자에게 넘기거나, 중앙의 통제에 따라 일괄 배분하면 권력자들의 횡포를 막을 수 있다”는 교훈을 남겼고요.
군대 문제도 마찬가지라 봅니다. 선임들이 가진 노하우를 일괄 배분할 수 있도록 공개적인 교육 기회를 충분히 제공하면, 선임이 ‘너 까불면 노하우 안 가르쳐주고 네 밑에 애들에게 X나게 무시당하며 살게 만든다’라고 협박을 못하게 되죠.
뭐... 실제로 그런 일을 유도해봤는데 그럭저럭 효과는 있더군요. 제가 일병 말 시절, 부대 대장이 바뀌었습니다. 그 대장은 실적을 엄청 쌓고 싶었는지 병영 생활부터 뒤엎어버리려 하더군요. 어느날 대장이 저한테 그 문제를 묻길래(당시 제가 병영 악습의 최대 피해자였는지라) 그랬어요. 당근을 주든 채찍을 주든 선임들의 노하우를 후임들에게 골고루 뿌리도록 유도하라고.
그 조언이 최종적으로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끝까지 확인은 못했습니다. 다만 선임이 그런 방식으로 후임 갈구는 장면은 좀 줄어들긴 했어요.
물론 현재 병영 악습을 해결하려면 다각도로 접근해야 할 겁니다. 다른 분들이 생각하는 병영악습의 주요 원인도 ‘출신부대’마다 다를 거라고 보고요. 그에 맞게 여러 해결 수단을 동원해야 할테고 말입니다.
허나, 지금 정치권에서 ‘던지는’ 해결 방안들은 아무리 생각해도 별 도움이 될 거 같지 않습니다. 전투력과 군 기강을 유지하는 선에서 병영 악습을 해결해야지, 유치원 만드는 것도 아니고...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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