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를 돌아다니다가 ‘Watch Dog’이란 제목의 영상을 보게 되었다.
후줄근한 반코트에 야구모자를 눌러쓴 부랑아 타입의 사내가 도시 변두리 공장 지대를 어슬렁거리다가 무슨 공장인지 연구소인지 아무튼 삼엄한 경계를 펼치는 건물에 무단으로 숨어들어가 마구 총을 쏘고 시설물들을 때려부수고 한다.
‘우리 게임은 이런 식으로 진행되오’ 하는 게임업체의 홍보 영상인지, 아니면 ‘난 이렇게 멋들어지게 게임을 했소’ 히고 자랑하는 게이머의 캡쳐 영상인지 잘 모르겠다.
연구소에서 실컷 패악질을 부리고 난 사내는 주차장에 세워 둔 누군가의 차를 멋대로 훔쳐타고 이번에는 뒤쫓아오는 사람들과 쫓고 쫓기는 추적전을 벌인다.
강 위를 가로지른 철교를 건느고, 도심을 이리저리 내달리다가 추적자들을 따돌린 다음, 이번에는 보석상에 들어가 깽판을 친다.
워치독이란 게임 제목이 아마 ‘이 개차반 같은 녀석의 깽판질을 한 번 보시오’라는 뜻인가 보다.
보아 하니 계속 이런 식의 분탕질의 연속일 게 분명하여 영상 진행 커서를 오른쪽 끝으로 옮겼다.
영상이 끝나면 나타나는 추천 영상들을 보니 워치독의 다른 파트들도 있지만 궁금하지 않아 넘어가고ㅡ
어쩌다 고른 것이 ‘Son of Rome’아란 영상이었다.
그걸 토가라고 하던가? 고대 로마 귀족의 복장을 한 늙은 뚱보가 겁에 질려 허둥거리며 여기저기 허물어지는 궁전 천정에서 떨어지는 파편들을 피해 다니고 있다.
지진이라도 일어난 건가?
테라스로 나간 늙은이는 고래고래 소리지른다.
ㅡDefend your emperor!
디펜드가 아마 방어하다란 말이지? 너희들의 황제를 지켜라?
테라스에서 내려다보이는 도시는 여기저기 대포알 같은 것들이 날아다니고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아비규환 상태다.
아마 로마 제국의 최후를 묘사한 장면인 듯싶다.
화면은 이제 로마를 침공한 적국 병사들과 싸우는 로마군인 한 명에게 초점을 맞춘다.
영화 ‘글래디에이터’에서 주연을 맡았던 배우과 흡사하게 생긴 갑옷 차림의 로마군 장교가 여기저기 숨가쁘게 뛰어다니며 야만인 복장의 적국 병사들을 마구 죽인다....
난 이런 건 딱 질색이다.
아무리 게임일지라도 누군가를 죽이고 찌르고 베고 하는 일에는 난 매력을 못 느낀다.
그럼에도 나는 짤끔짤끔 건너뛰기를 거듭해 가며 영상을 끝까지 감상하였다.
영상이 묘사하고 있는 고대 로마의 시가지 모습이 참으로 매혹적이었기 때문이다.
이 게임을 만든 그래픽 담당자들의 상상력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한정된 제작비에 맞추어 어설프게밖에 고대의 로마를 재현할 수 없는 사극 영화와는 달리, 궁전이고 귀족들의 저택이고 마음 내키는 대로 만들어낼 수 있는 게임이 재현하고 있는 로마는 ‘아, 그 옛날의 로마는 정말 꼭 이런 모습을 하고 있었을 거야’ 하는 찬탄이 절로 나게 하였다.
게다가, ‘워치독’에서도 그랬듯이 영상에 동원된 건물들 자체도 완벽하지만 영상의 시간대가 오전에서 오후로 넘어감에 따라 변화하는 광선 효과 처리가 그런 실감을 더더욱 배가시키고 있었다.
봄날의 늦은 오후의 햇빛 특유의 호젓한 느낌이 고스란히 살아 있는 화면을 보고 있자니 가상 현실이라는 게 어쩌면 내가 살아 있는 동안에 실현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마저 드는 것이었다.
원, 어느 사이에 그래픽 기술이 이 정도까지 발전하였나 그래?
유감스럽게도 영상은 로마 장교가 적군 병사들을 찌르고 베는 활극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고 고대 로마의 시가지 모습은 별로 많이 보여 주고 있지 않았다.
아무리 배경 무대가 고대 로마라고는 하지만 사람을 때리고 죽이는 일에서는 별로 쾌감을 느낄 수 없는 나는 영상을 껐다.
생각해 본다.
이런 배틀 중심의 게임 말고 그냥 일상의 삶이 펼쳐진 고대 로마의 뒷골목들을 산책하듯 느긋하게 돌아다닐 수 있는 그런 게임 좀 누가 안 만들어 주나.
회랑과 목욕실, 정원과 분수를 갖춘 우아한 귀족 저택이나 수수한 서민들의 집이 늘어선 뒷골목도 둘러보고, 웅장한 콜롯세움이나 신전에도 들어가 보고, 물자가 넘쳐흐르는 시장도 어슬렁거리고, 온 세계에서 온 배들이 정박해 있는 부두도 구경하고....
아니면 혁명이 발발하기 전의 파리, 빅톨 위고의 '파리의 노트르담'의 시대적 배경이 되었던 바로 그 무렵의 파리 시가지를 둘러보는 프로그램도 썩 흥미로울 것이다.
마치 인류의 과거 문명을 체험하는 시간여행 상품을 구매한 미래의 관광단이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날아와 당대의 복장을 하고 슬그머니 역사 속을 돌아다니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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