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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정담

우리 모두 웃어봐요! 우리들의 이야기로.



작성자
Lv.96 강림주의
작성
14.01.31 22:22
조회
1,379

그러다 감옥에 갔다 나온 후 학생운동 세력측과 연락을 끊었다고 합니다. 서울외대에서 통역관 공부하면서 틈틈히 후배들도 가르쳐주고 그랬는데, 가르침 받던 후배들은 통역관 됬지만 정작 가르쳐주던 아빠는 학생운동 때문에 완전히 찍혀서 아무것도 못했거든요. 그런데 그 후에 정말 고통스러웠다고하네요.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을 스스로 부정해야해서 고통스러웠던건지, 현실 앞에 무릎 꿇어야해서 고통스러웠던건지, 아니면 무언가 다른 이유 때문에 고통스러웠던건지, 왜 고통스러웠는지는 별말 없었습니다. 한달 동안 방 밖으로 나오지도 못하며 고통스러워하다가 문득 한가지 생각이 들어 나왔다는데, 그것은 바로 인생은 고해라는 생각입니다. 인생은 다른 무엇도 아닌 고통의 바다, 고통 하나가 끝나면 다른 고통 하나가 시작되고, 그것이 또 끝나면 또 다른 고통 하나가 또 다시 시작되고, 결국 태어나서부터 죽을 때까지 고통 밖에 없는게 인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더군요.


개인적으로 저 말은 틀렸다고 생각하지만, 아빠가 살아온 삶을 감안하면 그런 생각이 들 만도 합니다. 어려서는 나무에 매달려서 하루종일 큰아빠한테 얻어맞은 적도 있을만큼 지독한 유년기 보내왔고, 그러다 대학교에 와서 보니 고통스럽지 않은게 없습니다. 가르쳐주던 후배가 어느새 앞서나가는 것을 보는 것도 고통스럽고, 현실이 올바르지 않고 그릇 된 방향으로 뒤틀린 것 같아 고통스럽고, 그렇게 그릇 된 현실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무릎을 꿇어야해서 고통스럽고. 


아빠의 내면에 고통이 가득해서인지 아빠는 주변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만들었습니다. 저를 예로 들자면 얻어맞다가 생명의 위협이 느껴져서 울부짖으며 매달린 적도 있었습니다. 일주일동안 한번도 얻어맞지 않으면 이제 슬슬 얻어맞을 때가 된 것 같아 두려움이 밀려오기도 했었지요. 그때 제가 초등학교 3학년이였습니다. 엄마까지는 때리지 않았지만, 가끔은 쌍욕도 튀어나오곤 했습니다. 집안에서 누가 사소한 실수 하나만 해도 분위기 살벌하게 만들면서 마구 몰아쳤고, 말로는 완벽함을 바라지 않고 그냥 최선을 다하라 하면서도 스스로의 기준으로 보기에 완벽하지 않으면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고 몰아쳤습니다. 그래서인지 아빠가 삶은 고해라는 말을 했을 때 저는 이해가 됬습니다. 초등학생의 관점으로 봐도 삶은 끝없는 고통의 바다였거든요. 일주일에 한번씩 ‘이러다 죽겠다’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얻어맞는 삶이 어떻게 고통의 바다가 아니겠습니까. 단지 그 끝없는 고통의 바다가 단 한방울의 물도 제외하지 않고 모조리 제 아빠에게서 흘러내려온 것이긴 했지만요.


그런데 시간이 조금씩 흐르고 세상을 보니 세상은 고통의 바다가 아니였습니다. 제가 보기에 세상은 경이의 바다입니다. 너무 경이롭고 너무 아름다워서 생각하는 것 만으로도 눈물이 납니다. 이 크나큰 지구의 한조각중 아름답고 경이롭지 않은 것 하나 없고, 그런 지구를 벗어나고 나면 무한히 펼쳐진 신비의 우주가 끝없이 펼쳐져 있습니다. 그저 누군가 와서 그것이 얼마나 경이롭고 아름다운지를 이해해주기만 기다리는채로요. 그렇게 아름답고 경이로운 지구 안에서 수많은 사람들은 태어나 살다 걸작을 남기고 죽었으며 그들의 짧다면 짧은 걸작에는 한 사람의 깨달음과 삶이 모조리 담겨있습니다. 그 사람이 어떻게 태어나 세상이 어떻다고 보아왔으며 그 안에서 무엇을 경험했고 마침내 어떤 결론을 내렸는지가 수많은 음악, 그림, 소설, 만화, 영화, 게임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경이는 결국 기록과 해석의 학문 역사로 넘어가 인류의 발전이라는 하나의 거대한 기적으로 꽃을 맺습니다. 


인류의 발전, 이게 얼마나 경이롭습니까. 단백질과 수분덩어리가 모여서 이 세상이 얼마나 경이로운지를 이해하고 감탄한다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기적이 아니겠습니까?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며 이해해서 마침내 기록하고 발전을 하는 그 누가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저희는 도시를 짓고 도로로 잇었으며 하늘을 날아 우주까지 갔습니다. 이제 저희는 전쟁과 증오를 떠나 서서히 상호존중, 상호협력, 상호발전의 미덕을 통해 칼 대신 펜과 종이로서 저희가 맞이한 문제점을 해결하고, 더 이상 인간이 인간에게 지배받고 고통받지 않으며 인간이 인간 스스로의 족쇄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 모든 것은 지금까지 한번도 없었고 앞으로도 다시 없을 거대한 대서사시 인류 1만년 역사를 통해 만들어졌고 그것에 적혀 있습니다. 고통의 바다에서 살다가 처음으로 경이의 바다를 맞이했을 때 얼마나 경이롭고 놀라웠던지요. 그리고 이제 경이의 바다를 보니 그것을 보지 못하고 고통의 바다에서 살아가는 제 부친이 불쌍하게 여겨집니다. 


한번 떠올라서 적어봤습니다. 감사합니다.


Comment ' 1

  • 작성자
    Lv.71 테사
    작성일
    14.02.01 02:52
    No. 1

    세대가 다르고 환경이 다르니까요. 우리는 10년 단위로 아주 다른 가치관을 가질 수 밖에 없는 나라에 산다는 생각이 들어요. 좌절하고, 터지고 그 와중에 일어선 사람도 있고, 더 망가진 사람, 죽어버린 사람. 그러다보니 기회주의로 돈 좀 만지는 인간들이 더 잘사는 거 같고.
    불합리하고 불공정한 세상에서 어려운 와중에도 와 세상이 아름답고 멋지구나라고 생각할 줄 아는 건 축복이나 다름없어요. 그런 마음과 눈을 가진 사람들이 보다 좋은 세상을 만드는 거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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