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비극을 보면서 눈물짓고 희극을 보면서 웃음을 터뜨린다.
비극의 등장인물에 우리는 감정이입을 한다.
인물들이 겪는 비통한 일을 자신의 일처럼 여기고 함께 슬퍼한다.
희극을 볼 때는 그런 감정이입이 일어나지 않는다.
희극을 볼 때 우리는 거리감을 두고 인물에게 일어나는 불운을 비웃는다.
희극은 새디즘에 기반을 둔다.
운명의 악의에 시달리는 가련한 어릿광대는 연민보다는 유쾌한 경멸을 불러일으킨다.
그렇다면 비극은 마조히즘과 관계 있다고 말해도 틀리지 않을 성싶다.
가뜩이나 행복과는 거리가 먼 것이 인생일진대, 자신이 감당해야 할 몫도 아닌 타인의 불행까지 자신의 일처럼 받아들인다는 점에서 말이다.
희극을 감상하는 행위 아래 숨어 있는 그런 잔인함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연극이라는 것이 원래는 종교 의식에서 비롯되었음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처음에는 문자 그대로 산 제물의 피를 흘려 신에게 바치던 의식이 나중에 완화되어 제물에게 모욕과 폭행을 가하여 마을 밖으로 추방하는 의식으로 바뀌었다.
그 제물의 역할을 처음에는 전쟁 노예나 범죄자들이 맡았을 것이고, 그 추방은 실질적인 추방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역할은 동물이나 제물 역을 맡은 연기자에게 주어졌고, 좀더 나중에는 인형으로, 심지어는 아예 인간의 성질이 모두 사라진 물건으로 대체되었다.(큰 나무를 베어 화려하게 장식하여 마을 중앙에 세워 두었다가 '5월의 기둥'이라 이름붙여 강물에 떠내려 보내는 서양의 풍속, 낡은 볏집을 불살라 이듬해의 풍년을 기원하는 우리네 풍속을 보라.)
요컨대 살해되거나 추방되거나 불살라지는 제물은 그 사회의 온갖 불운을 한 몸에 지닌 채 전체 사회의 안녕을 위해 사람들의 삶 바깥으로 제거되는 것인데, 처음에는 사회 구성원들 전체가 참가하였던 그런 의식을 일부 소수의 사람들만이 집행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옆에서 지켜보는 형태로 바뀐 것이 연극의 출발점이다.
전체 사회의 안녕을 위해 사회 바깥으로 추방되는 제물을 조롱하는 심리에서 희극 감상이 비롯되었다면, 그럼 비극 감상은 추방되는 제물과의 자기 동일시 심리에서 비롯된 것일까?
그렇게 보아도 될 듯하다.
그리스 비극 '이디프스 왕'의 결말에서 이디프스는 두 딸과 함께 자신이 다스리던 나라 국경 밖으로 추방된다.
게다가 그 후속편인 '콜로너스의 이디프스'에서는 전작에서 그렇게 추방되었던 이디프스의 유해를 차지하는 집단이 전쟁에서 승리하게 된다는 신탁 때문에 전쟁이 벌어지기까지 한다.
추방되었던 자의 시신이 사회의 번영에 필요하다는 기묘한 논리에서 이디프스의 제물적 성격은 더욱 뚜렷해진다.
....이상의 얘기에서 뭔가 멋들어진 결론이 도출될 수 있을 듯싶기도 한데, 유감스럽게도 나의 지력은 여기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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