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고등학교 1학년 때일 거예요.
고3 언니 오빠들이 수능을 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의 일이죠.
반 친구가 반에 들어설 때부터 얼굴이 좋지 않더니 자리에 앉자마자 고개를 파묻고 울기 시작했어요. 당연히 친구들은 그 옆으로 가서 무슨 일이냐고 어르고 달랬죠.
하지만 그 친구는 사정을 얘기하지 않고 아침자습시간이 다 지나도록 꺼이꺼이 울기만 했어요.
점심시간 때쯤에야 그 친구가 입을 열었는데, 그 사연이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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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에 입학한 후, 학교를 가기 위해 버스정류장에 서면 항상 보는 오빠가 있었대요. 마침 타는 버스도 같아서 일주일정도 지나자 아예 얼굴이 익어버렸고, 그렇게 그 오빠를 1년 가까이 되는 시간동안 매일 보다보니 결국 정이 들었고 어느새 짝사랑을 시작하게 되었대요.
그런데 수능 날이 지나고 한동안 그 사람이 보이지 않더래요.
통학하는 시간이 바뀌었나 싶어서 조금 더 일찍 나서보기도 하고, 일부러 다음 버스를 기다려보기도 하고 그랬대요. 그러다 버스를 두 개쯤 그냥 보냈을 때, 그 오빠가 교복을 제대로 입지 않고 버스정류장에 설레설레 나타나더래요.
그 때 ‘아, 이 오빠가 고3이었구나.’ 라고 생각하게 되었고, 내년부턴 이 사람을 보지 못할 거란 생각에 엄청 우울해졌대요.
그리고 그 이후의 일은 학교에 와서 꺼이꺼이 우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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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 날, 친구는 학교에 도착해서 또 침울하게 앉아 핸드폰만 노려보고 있었어요. 아이들이 핸드폰을 손에서 놓지 못하고 노심초사 하냐고 물으니, 그 친구가 아침에 있었던 일을 얘기해줬어요.
큰 맘 먹고 그 오빠에게 줄 요량으로 초코우유를 사서 거기에 자기 번호를 적어서 손에 꼭 붙들고 있었대요. 그런데 버스 정류장에서 그 사람을 만나긴 했는데, 차마 그걸 건네지 못하고 있다가 학교 앞에서 내리기 직전에야 그 오빠에게 초코우유를 건네고 도망치듯 내렸다는 거예요.
이미 그 친구의 사연은 반 모두의 관심사가 되었기 때문에, 다함께 문자가 오지 않는지 궁금해 하며 쉬는 시간마다 기대에 찬 목소리로 문자가 왔냐고 그 친구에게 묻고 그랬어요.
그렇게 1교시, 2교시, 3교시가 아무 연락 없이 지나가자 친구는 더더욱 침울해졌고, 결국 4교시에는 아프다고 하곤 책상에 얼굴을 파묻고 있었어요.
그리고 점심시간!
드디어 그 오빠에게서 문자가 온 거 있죠. ㅋㅋㅋㅋ
그 친구도 기뻤겠지만, 기쁨의 함성은 반 아이들이 대신 질러줬어요.ㅋㅋㅋ
음.. 그 후, 미래의 일을 얘기하자면 그 오빠랑 친구는 아주 잠깐 사귀다가 헤어졌어요. 그 오빠는 대학 때문에 타지역에 가야했고, 친구는 남아서 수능공부를 해야 했으니까요.
아마 계속 사귀었다 하더라도 우여곡절이 많았을 거예요. 원거리 연애도 힘들지만, 무엇보다 대학교에 여자가 얼마나 많아요..ㅋㅋㅋㅋ...
예전에 정담에 올라왔던 출근시간. 버스의 여성에게 고백하셨던 분의 글을 읽고 비록 댓글은 달지 않았지만 정말 안타까웠어요.ㅠㅠ 만약에 처음에 고백으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가볍게 커피와 함께 인사를 건넸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없잖아 있어요,ㅜㅜ
그래도 항상 같은 시간에 같은 곳에 있는 이성을 보고 호감을 느낀다는 건 정말 매력적인 이야기 같아요!
저만 그렇게 느끼나요..ㅋㅋㅋ
만약, 나중에 정다머분들 중 한 분이 이와 비슷한 상황에 처하신다면 얼굴이 서로 많이 익었을 때 가볍게 인사를 건네면 어떨까 생각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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