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소설은 가정으로부터 출발한다.
설정이나 상황이 다 이런 상황이라면 이란 조건으로 시작된다.
농담처럼 들리는 ‘배로 즙을 짜서 술을 담았더니 사과맛이 난다’고 여기는 것이 바로 소설의 핵심이다.
배로 술을 담았는데 사과술맛이 난다는 전재조건이 바로 소설의 핵심이란 것이다.
회귀는 과학적으로 현실적으로 가능한가 물어보면 거의 모든 사람의 답변은 유사하게 나올 것이다. [미친놈]
환생이 가능한지 현실이나 과학 개연성을 가지고 따지면 똑같은 대답이 돌아온다. [너 돌았니]
그렇다 절대적인 전제조건이나 가설 자체가 과학으로 증명 불가능한 조건이 들어갔다.
미래 과학이 실패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함정이 있다.
절대 불가능한 주장으로 미래라고 우기지마 하는 반발심이다.
소설상의 설정은 작가가 꾸미기 나름이고 독자들에게 명백하게 이런 설정이라고 암시를 해 줘야 하는 사안이다.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처럼 절대로 정상적이지 않는 상황만 자꾸 자꾸 나오면 독자들이 납득한다.
드레곤 볼 처럼 손오곡이 거대 원숭이로 돌변해도 누구 하나 욕하는 사람이 없다.
심지어 소원볼을 외계인이 이뤄준다는 상황도 위화감이 없이 다들 받아 들인다.
계왕권도 그러려니
워낙에 현실과는 전혀 상관없는 이상한 전개에서 개연성이나 과학 현실성 따위는 전혀 존재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안다.
그럼에도 드레곤볼은 엄청난 인기를 누렸다.
그런거다
개연성 현실성 과학 기타 등등을 따진다는 것은 작가가 설정한 상황이 위화감을 가지게 되었다는 말과 같다.
현실을 차용했으면 과학도 똑같이 차용하던가 아예 과학적인 기반을 다 망가뜨리고 시작해야 한다.
결국 작가는 독자를 납득시키는 일종의 줄거리를 보여주는 사람이다.
줄거리에서 현실과 과학의 맛이 진하게 났는데 그게 전부 가설이라고 하는 뒤통수를 맞아도 그려 그게 반전이지 하는 맛이 있어야 한다.
그러니까 무조건 현실성위주가 아니어도 된다.
병맛다운 소설은 중2병을 팍팍 뿌려서 맛있게만 쓰면 된다.
공상 소설은 과학을 따지지 않고 그럴수 있을것 같다 하는 가설만 제대로 채워주면 된다.
현실에서 방사능 물질 플루토늄이 있어야 핵폭탄이 나오지만 소설에는 공기중에서 수소만 추출해서 압력을 높혀도 수소폭탄이 나온다고 우겨도 된다.
그런맛에 소설 보는 것이다.
소설에서 공상을 제거 하면 논문이 될뿐이다.
누가 논문을 재미있게 읽을수 있나..
어지간한 실력으로 논문을 즐겁게 읽게 만드는 기술은 없다.
논문에 허풍이나 과장을 섞어서 포장해야 제대로 재미를 가질수 있다.
순수한 진실은 정말 재미가 없다.
하지만 반전이 숨겨진 진실은 빙산의 일각대신 이면의 다양한 모습을 알게 되면서 신비로운 호기심을 채워준다.
물론 그 이면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증명 불가능한 가설로 재미를 유발할 뿐이다.
빙산 한가운데에 어떤 물건이 잠복해 있는지는 누구도 모르고 빙산이 다 녹아야 알게 된다.
소설은 녹은 빙산의 잔해쳐럼 완결되어야 제맛이다.
중간에 녹다만 빙산을 보고 전부 보았다고 여길수는 없다.
항상 소설은 재미로 만들어진 상황에서 공상을 자극해서 더 재미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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