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농담반 진담반으로 하는 말이 있습니다.
상업성은 예술 업계에서 축복이다
저는 대학을 그만두고 글을 쓰고 있습니다.
저는 흔히 말해지는 좋은 글을 많이 읽은 사람도 아니고, 글을 쓰는 교육을 받은 적도 없습니다. 사회경험이 많은 것도 아닙니다.
그저, 글을 쓰고 싶다. 그 마음 하나로, 겁에 질린 채, 눈에 담기도 거북할 지도 모르는 문장을 나열해가는 글쟁이입니다.
저 같은 사람도, 팔리는 요소를 잘 조합한 글을 쓴다면, 아주 적은 돈이라도 손에 쥘 수 있는 시대에 가까워져간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III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트렌드에는 처음에 혁신을 일으킨 <혁신자(Inovator)>, 그것을 따라가는 <모방자(Imitator)>, 그리고 뒤 늦게 그것을 따라가지만, 때를 놓쳐버린 <멍청이(Idiot)> 가 있다는 말입니다.
제가 쓰고 싶은 글을 쓴다고 해도, 그것은 새롭지 않을 것입니다. 문장력과 스토리, 사람에 대한 고찰과 경험이 적어 그것을 수작으로 부르기도 힘들 것입니다. 혁신가는 될 수 없을 것입니다.
글을 쓰고 싶다는 욕망과, 돈이라는 목적 사이에서 타협을 본다면, 시류에 휩쓸린 글을 쓰는 것이 고작일 것입니다. 아무리 잘 해봐야 모방자에 불과하겠지요.
많은 분들께서 자주 말씀하십니다. 트렌드에 휩쓸린 글이 대부분이라고, 질적인 하락이 눈에 보인다고 말입니다.
그것은 어쩌면 불가피한 문제일지도 모릅니다. 새로운 사람들의 유입을 돕는 것은 대부분 가벼운 이야기이고, 그것을 단초로 하여 들어온 사람들이 읽고 싶어하는 글은 트렌드에 어울리는 글일테니까요.
한 때는 이계에 가서 활약을 하거나, 게임 속에서 활약을 하는 것이 유행이었습니다. 지금은 이계에서 돌아온 인물이 활약하는 소위 ‘귀환물’이 트렌드더군요. 강한 인물이 사회문제를 해결해나가고, 그것에 희열과 대리만족을 느끼는 ‘사이다’ 스러운 글들 말입니다.
소설은 대리만족을 가능하게 합니다. 그 요구사항에 부합한 글들이 인기가 많은 것은 당연한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현재 웹 소설이 단순히 심심풀이 라는 딱지를 붙이고 있기에, 그 한계가 명확히 보이는 것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글, 좋지요.
많은 사람들이 데미안은 명작이라고 하듯, 좋은 글은 존재합니다.
웹소설에서도 명작, 수작, 인간에 대한 고찰. 그런 것들을 녹여낸 글들 또한 있습니다. 그것을 부정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애초에 웹소설의 전신은 웹소설이었습니다. (하이텔통신시절의 이야기입니다.)
다만, 지금의 위치에 올라오면서, 대부분의 웹소설이 판타지나, 판타지에 가까운 로맨스를 거쳐오면서, 그 한계를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웹소설이, 또는 무협이나 판타지, 로맨스 소설이 어린아이들이나 읽는 물건이나 시간을 때우기 위해 읽는 물건으로 변했습니다.
물론 예전의 웹소설에서도, 가벼운 이야기를 다룬 것은 많았습니다만, 지금은 그 빈도가 심해졌다는 이야기입니다.
한때 타 사이트에서 남자가 수없이 많은 미녀들과 성관계를 하는 성인물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것이 저의 주장을 뒷받침한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대부분의 웹소설은 단순히 소모품입니다.
좋은 글이란 무엇일까요?
사람들은 위의 질문에 참 다양한 대답을 보여주셨습니다.
체호프나 카프카를 입에 담으시는 분들도 있고, 한 때 유행했던 힐링서적을 말씀하시는 분도 계셨습니다.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제 유년 시절은 전민희씨의 작품으로 시작한 판타지소설과, 김영하씨와 에쿠니 가오리씨가 열어주신 일반문학으로 채워져있습니다. 만화책도 적지 않게 읽었구요.
글쎄요. 누군였는지 기억은 나지 않습니다만, 어떤 이의 음악을 듣고 그를 천재라 칭송하는 사람들은, 그의 음악이 자신의 상처를 보듬었기 때문이라고 하더군요. 저는 이 말에 동의합니다. 좋은 글이란 어떤 이의 마음을 울리고, 그가 살아오며 얻은 상처를 어루만지는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저처럼 등장인물이 한없이 고뇌하고, 한없이 고난을 거치고, 한없이 흔들리는 것 자체에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사람에게는 그런 이야기도 좋은 글일지 모르겠습니다만.
몇 년째 글을 쓰시며, 다른 출판사에서 몇번이나 미팅을 하셨던 분이 계십니다.
아마 7년 전이었을까요. 어렸던 제 눈에 그분의 글은 반짝임으로 가득했습니다. 소재는 무거웠습니다. 끝없이 고통을 감내하는 인물의 이야기가, 저에게는 너무나 매혹적이었습니다.
상업성이 부족하다. 무거운 글은 팔리지 않는다. 그런 이유로 그 분은 출판의 문턱에서 번번히 좌절 하셨습니다.
두어달 전에, 제가 연재를 시작하면서 그분께 전화를 드렸습니다.
세상이 바뀌었다고, 무거운 글도 팔릴 수 있는 시대가 왔다고.
그 분은 아직 꿈을 놓지 않으셨는지, 기뻐하시더군요.
하지만, 제게 해주신 말씀은 저를 슬프게 했습니다.
소설은 대리만족이다. 가벼운 글이 잘 팔린다. 나는 그런 글을 쓰지 못하지만, 너는 그런 글을 쓰기를 바란다.
씁쓸한 웃음소리가 섞인 목소리가, 저는 너무나 안타까웠습니다.
결국 판타지소설이란 가벼운 이야기이구나.
판타지 소설은 무엇일까요? 현실에서 있을 수 없는 이야기를 담은 이야기라고 하기에는 너무 포괄적인것 같지만, 그것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정의(definition) 중에 하나겠지요.
소설은 결국은 사람이 살아가는 이야기입니다.
현재의 사회의 상황이 끔찍하기에, 가볍고, 사이다스럽고, 갑질을 하는 이야기가 많이 팔리고 있는 것이겠지요.
하지만, 정말 웹소설이 현재 시장규모만큼 발전을 했다면, 그 속에서 단순히 소모품이 아닌 그 이상의 작품을 뽑아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것을 위해 웹소설이 가진 이미지를 바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웹소설은 문학입니다. 순수문학과 판타지를 구별하는 것만큼 웃기는 일도 없겠지만, 웹소설 또한 문학입니다. 많은 분들이 단순히 심심풀이, 시간때우기, 싸구려 욕망의 대리만족으로 즐기시는 것에 만족하신다면, 굳이 이미지를 바꿔나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자꾸만 더 나은 작품을 찾는 이들이 늘어나고, 그들에게 그런 소리를 할 것이라면 고전문학이나 일반문학으로 눈을 돌리라는 말씀을 하시는 분들께서 마음을 조금만 돌리신다면, 더 많은 발전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드라마에서조차 판타지적 요소가 들어가고 있습니다. 세상이 바뀌어가고 있습니다. 그저 구매자의 욕구를 만족한다면, 어떤 요소도 수단이 될 수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이대로 괜찮은 것일까요? 저는 앞으로 평생 글을 쓸겁니다. 돈이 없으면 아르바이트를 하고, 고시원이나 원룸에서 살면서, 글을 쓸겁니다.
저는 두렵습니다. 매일 10시간이 넘는 시간을 글을 쓰면서도, 필력이 늘지 않는 자신이, 제대로 써지지 않는, 시류를 의식한 차기작을 준비하면서 지리멸렬해지는 글을 바라보는 것이, 그런 매일이 흘러가는 지금이 두렵습니다.
저는 웹소설이라는 것이, 더 나은 모습을 가질 수 있다고 믿습니다.
부탁드립니다. 조금만 더 기다려주세요. 웹소설은 더 나은 모습을 할것입니다.
부탁드립니다. 하찮은 글쟁이의 삶이, 조금만 더 오래 갈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작가분들은 더 나은 시도를 하실것이고, 더욱 다채로운 이야기가 풀어져나갈 것입니다.
죄송합니다. 그저 재능없는 사람의 푸념이었습니다.
제 두서없는 이야기가 귀중한 시간을 빼았았을까 죄송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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