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현은 지난달 31일(한국시각)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티 모바일 아레나서 열린 UFC 207에서 스트라이크포스 웰터급 챔피언 출신의 강호 ’스폰지‘ 타렉 사피딘(30·벨기에)에게 스플릿 판정승을 거뒀다.
UFC 통산 13승이다. 일본 오카미 유신이 보유한 아시아 선수 최다승 기록과 타이다.
김동현의 최강 무기는 그라운드 압박이다. 이른바 ‘매미권’으로 불리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 경기 내내 달라붙어 상대의 진을 빼놓으며 승리를 가져간다. 압박에 비해 결정력은 떨어지지만 징그러울 정도로 달라붙어 상대는 질린다.
김동현은 압박형 그래플러인 만큼 상위 포지션만 점하면 레슬러, 주짓떼로를 가리지 않고 눌렀다. 타격가들 입장에서 김동현에게 끌려들어가는 그라운드는 지옥일 수밖에 없다.
맷 브라운, 아미르 사돌라, 네이트 디아즈, 파울로 티아고, 에릭 실바 등 타격을 주무기로 하는 선수들은 모두 김동현 ‘매미권’에 제대로 힘을 쓰지 못했다. 그라운드로 끌려가면 어려워진다는 생각에 장기인 타격의 날카로움도 덜했고, 근거리 공방전에서도 생각이 많아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검증된 강자답게 사피딘은 조금 달랐다. 스트라이커 스타일이지만 그래플링 수비가 뛰어나 경기 전부터 우려의 목소리가 컸던 것은 사실이다. 테이크다운 방어가 우수하고 넘어진다 해도 재빨리 일어날 수 있는 실력이 있다.
스텝이 좋다는 점도 김동현의 고전을 예상하게 했다. 브라운, 사돌라, 디아즈, 실바 등은 타격은 매섭지만 다소 정직하게 들어오는 유형이다. 타격을 경계하다가 테이크다운을 시도하기 적합한 상대들이었다. 반면 사피딘은 날렵한 움직임으로 옥타곤을 넓게 쓰는 선수로 넘어뜨릴 기회를 잡기가 쉽지 않은 상대다.
옥타곤에서 붙은 사피딘은 역시 굉장한 테이크다운 디펜스 실력을 자랑했다. 김동현은 스텝과 로우킥을 의식해 ‘좀비 카드’를 들고 나왔다. 끊임없이 전진하며 사피딘과의 거리를 바짝 좁히는 것이다. 사피딘의 펀치도 위력적이라 위험이 따르긴 했지만 그의 로우킥을 봉쇄할 수 있어 효과적이었다.
사피딘 역시 노련하고 강했다. 최대 무기가 봉쇄된 상황에서 짧고 간결한 펀치로 김동현에 맞섰고 클린치 싸움에서 쉽게 밀리지 않았다. 테이크다운 디펜스는 지켜보던 팬들조차 깜짝 놀랄 정도로 매우 좋았다. 산전수전 다 겪은 김동현이 좋은 그립에서도 넘기지 못했다.
그런 가운데 김동현의 그칠 줄 모르는 ‘좀비 모드’는 전략적 신의 한 수였다. 사피딘은 킥뿐 아니라 펀치기술 역시 김동현보다 우위지만 제대로 된 펀치를 하기 전에 클린치 상황을 이어가 사실상 스탠딩에서 대치한 시간에 비해 위협적인 타격은 많이 나오지 않았다.
사피딘이 하드펀처가 아니라는 점도 김동현 입장에서는 호재다.
사피딘은 전형적인 ‘운영형 스트라이커’다. 적극적으로 넉아웃을 노리기보다는 방어를 염두에 두고 상대를 맞춰나가는 유형이다. 데미지를 누적시키거나 판정까지 끌고 가는 스타일이다. 때문에 김동현은 스트라이커를 상대로 계속해서 펀치 거리에 있었음에도 자신감 있게 좀비 모드를 유지할 수 있었다.
사피딘은 3라운드 초반 거칠게 타격전을 펼쳐봤지만 김동현은 물러서지 않고 같이 맞불을 놓았다. 강력한 화력을 갖춘 타격가와의 경험이 많은 김동현 입장에서 사피딘의 펀치는 두렵지 않았다.
사피딘을 맞아 제대로 된 그래플링 공방전을 펼치지 못한 부분은 아쉽다. 압박은 많이 했지만 눈에 띄는 그림이 많지 않았다. 하지만 사피딘의 킥을 봉쇄한 것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임현규를 비롯해 그동안 사피딘과 맞선 상당수 선수들은 로우킥 데미지를 견디지 못해 절뚝거리는 장면을 많이 노출했다. 반면 김동현은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사피딘이 느끼는 압박감이 보이는 것 이상으로 매우 컸음을 알 수 있다.
‘매미권’은 막혔지만 ‘좀비모드’로 승리로 따냈다. 김동현이 왜 ‘지옥의 체급’으로 불리는 웰터급에서 롱런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문피아독자 윈드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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