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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식인문화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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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v.3 긍정적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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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09.21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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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2

얼핏 중국 문명하면, 찬란하고, 발달된 문명을 떠올리곤 합니다. 하지만, 그 찬란하고 문명이 발달했던 중국에서 근대까지 식인 풍습이 있었다는 사실을 아시는지?

대개, 우리는 어릴 때부터 '타잔'같은 영화나 모험가들의 오지 모험기를 보고 들으면서 식인 풍습은 미개한 야만족들 사이에서만 존재하는 것으로 알고 있죠. 하지만, 중국같은 문명국에서도 식인 풍습이 존재했습니다. 더욱 놀라운건 그들은 인육을 장에서 내다 팔 정도이며, 아무럼 거리낌없이 인육을 즐겼던 것입니다.

식인문화는 중국 5천년 역사에 면면히 이어져 내려왔는데 이미, 주나라 때 율령 체제로 '살육의 형'을 규정했습니다. 부터 최초의 식인 이야기는 중국의 전설적인 왕조인 하나라 당시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아들을 죽인 원수를 죽여 육장(肉醬)을 만들어 원수의 아들에게 먹기를 강요한 여인 이야기입니다. 유교는 '복수주의'를 인정할 뿐 아니라 오히려 장려한 면이 있어 복수에 의한 식인행위가 있었습니다.

'부모의 원수와는 같은 하늘 아래 살 수 없다(불구대천, 不俱戴天)'는 생각으로 심하면 부친의 원수를 29대까지 갚기도 했습니다. 복수할 때는 한 칼에 숨통을 끊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천 갈래, 만 갈래로 잘랐으며 때로는 고기를 잘라먹고 심장과 간을 꺼내어 씹어먹으며 뼈까지 갈아먹는 경우도 적지 않았습니다.

식인 기록이 나타난 최초의 정사인 <사기(史記)>는 중국 최초의 역사왕조인 은 왕조(주나라 이전의 왕조)의 마지막 임금 주왕이 신하들을 '해(인체를 잘게 썰어 누룩과 소금에 절인 고기)', '포(脯, 저며서 말린 고기)', '자(炙, 구운 고기)'로 만들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해, 포, 자'는 이후 중국 춘추전국시대까지의 인육 조리법의 대표격으로 계속 등장합니다.

춘추시대 노나라 사람인 공자는 이 '해'를 즐겨서 해 없이는 식사를 안 했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죠. 그러나 공자가 아끼던 제자 자로가 위나라의 신하로 있다가 왕위 다툼에 휘말려 살해되고, 그의 시체는 잘게 토막내어져 해로 만들어지고 말았습니다. 이 해는 사자에 의해 공자의 식탁에까지 전해집니다. 이 일 후로 공자는 그렇게 좋아하던 해를 먹지 않았습니다.

한나라가 건국된 기원전 206년부터 청나라가 멸망한 1912년까지, 중국에서는 식인의 기록이 220차례나 정사(正史)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마천의 '사기'에 은왕조의 주(紂)왕은 대신인 구후의 딸이 절세미인이란 말을 듣고 아내로 삼았는데 그 아내가 너무도 정숙하고 외설을 좋아하지 않아 자신의 성적취향에 맞지 않자 격노하고 그녀를 살해하고 그녀의 아버지 구후를 해(소금에 절인 육젓)으로 만들어 먹어버립니다. 신하인 곽후가 이를 강력히 말리자 주왕은 곽후를 포(脯:찢어 말린고기)로 만들어 먹어버린 기록이 나옵니다.

그밖에도 주왕은 자신에게 간하는 신하 익후를 자(炙:불고기)로 만들어 먹어버립니다. 또 신하 귀후는 포로 매백은 해를 만들어 먹어버렸습니다.또 주왕은 신하인 황비호의 아내 경씨를 희롱하다 거절 당하자 그녀를 해로 만들어 남편인 황비호에게 하사하고 먹게 합니다. 이에 황비호는 격노하여 군사를 일으켜 주왕을 제거하게 됩니다. 동물세계에서나 통하는 약육강식의 논리가 인간에도 적용되는 적나라한 사례입니다.

'동양이 서양보다 우수한 99가지 이유' 라는 책에 이런 고사가 있습니다. 나이든 시부모를 모시고 사는 착한 며느리가 살았는데, 때마침 흉년이 들어 사람들이 서로 다른 사람들을 잡아먹는 일이 생겼습니다. 그때 며느리는 시부모가 자신을 잡아먹을 거라는 말을 듣고, 놀란 나머지 친정으로 도망을 칩니다. 그러자 친정 아버지는 "아니. 누구 딸을 마음대로 잡아먹어!" 라고 분개했습니다만, 정작 그 딸을 잡아먹은 건 친정 아버지였다고 합니다.

당나라 측천무후 때는 식인 문화의 절정기였습니다. 장에서는 인육(두발 달린 것은 '양고기'라 불리우며 팔렸고 인육이 너무 많이 돌아 다른 고기의 값이 폭락할 정도였다고 합니다)을 팔았고철경록, 조야첨재에 나오는 친구를 해로 만들어 먹은 설진, 첩을 삶아먹은 고찬, 병중에 자기 노비의 고기를 먹은 독고장 등이 모두 측천무후 시기의 인물들이었습니다.

자치통감 '당기'편에 보면  당시 잔혹한 고문과 형벌로 유명했던 악질관리 내준신이 식인형을 당했다고 하는데 군중(그에게 처형당한 이들의 가족들)들이 다투어 내준신의 고기를 산채로 잘라 먹었는데 눈 깜짝할 사이에 '눈알을 도려내고 안면의 가죽을 벗겼으며 배를 찢고 심장을 끌어내니 마침내 진흙같은 찌꺼기만 남았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참으로 끔찍한 사실이 아닐수 없습니다. 이와같이 죄수들을 인육으로 만들었다고 하는데, 사실 그 당시 상황으로봐서 상당히 불평등하며, 억울하게 인육이 된 사람이 많았다고 합니다.

또, 황소의 난 때는 인육을 가공하는 기계를 끌고 다녔고, 절도사의 군대는 마을을 종종 습격해 절도사의 군대가 휩쓴 곳은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고 합니다. 명나라 말기의 명장 원숭환 장군은 청나라 ?조의 계략으로 처형당한 뒤 군중들이 몰려 와 그 살점을 발라가는 바람에 뒤늦게 시신을 수습하려 온 사람들은 그 뼈밖에 수거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생존경쟁의 패자가 승자의 먹이로 식탁에 오르기도 했지만, 충성심을 보이기 위해 식인이 자행되기도 합니다. 춘추전국시대의 유명한 제나라 환공은 미식가로도 유명했는데 그가 진미를 찾자 요리사인 역아(易牙)는 자기의 장남을 잡아서 삶아 바쳤습니다. 역아뿐 아니라 극한 상황에서는 자기 살을 베어내거나 아내나 자식을 잡아 주군을 대접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고, 흔히 이런 경우는 충성으로 기려지기도 했습니다.

인육은 가끔 약용으로도 쓰였는데, 이시진의 <본초강목(本草綱目)>에는 인체 각 부위의 약효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통념에다 '효'라는 유교 사상의 실행으로서, 병으로 죽어가는 부모에게 자신의 넓적다리살 등을 잘라서 봉양하는 일은 더욱 흔했습니다. 단, 이런 일이 진정한 효행인가 하는 정치적인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는데, 당시의 황제 뜻에 따라 어떤 시대의 사람들은 '효자'로 표창을 받았고, 다른 시대 사람들은 신체를 훼손한 '불효자'로서 매를 맞은 후 귀양을 갔습니다.

수·당대에는 인육시장이 출현했고, 인육애호가가 열전(列傳)에 기록되기도 했습니다. 송 말기부터 원대에는 <철경록(輟耕錄)>이라 하여 인육 요리법을 자세히 적은 요리책까지 출판되었죠. 원나라를 방문한 마르코폴로는 <동방견문록>에서 자신이 목격한 복주(福州)의 식인 풍습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지방에서 특별히 기록할 만한 것은 주민들이 그 어떤 불결한 것이라도 가리지 않고 먹는다는 사실이었다. 사람의 고기라도 병으로 죽은 것만 아니면 아무렇지 않게 먹는다. 횡사한 사람의 고기라면 무엇이건 즐겁고 맛있게 먹는다. 병사들은 잔인하기 짝이 없다. 그들은 머리 앞부분을 깎고 얼굴에 파란 표식을 하고 다니면서 창칼로 닥치는 대로 사람들을 죽인 뒤, 제일 먼저 피를 빨아먹고 그 다음 인육을 먹는다. 이들은 틈만 나면 사람들을 죽여 그 피와 고기를 먹을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중국의 식인 풍습은 <삼국지>, <수호지>, <서유기> 등 유명한 중국 고대의 소설에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 <삼국지>의 경우, 정사로 기록된 진수의 삼국지에는 유비가 즐겨먹은 음식이 인육으로 만든 포였다고 하며, 여포가 죽은 후 그 고기를 죄인들에게 먹였다고 합니다. 소설 <서유기>에서는 고승(高僧)의 고기가 불로장생의 영약이라 하여 삼장법사가 끊임없이 요괴들의 공격을 받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문열氏가 번역한 10권짜리 수호지에서도 중국의 식인 풍습에 대해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1권 끝 부분에 가면 한지흘률이란 별호를 가진 양산박의 주귀란 자가 자기들 양산박의 법도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숨어 있다가 부자가 오면 뛰쳐나와 잡아 재산을 빼앗고 그 살은 고기로 먹고 기름은 등잔불을 밝히는 데 씁니다."란 구절이 나옵니다. 즉, 의적이란 양산박 무리들은 사실은 사람을 죽여 재물을 빼앗고 그 고기를 먹는 극악 무도한 악인들이란 것이죠. 그리고 주인공인 송강의 아우인 흑선풍 이규는 사람을 죽이고 나서 그 인육을 먹습니다. 나중에는 너무 많이 인육을 먹어서인지 눈알이 붉게 충혈되었다고 합니다. 무송이 유배가는 과정에서 들른 주막은 지나가는 여행객들을 죽여 그 고기로 만두를 해서 파는 끔찍한 주점(이런 주점을 '흑점'이라고 하는데 최근에 중국 정부에서 폐지 하기까지 대륙엔 그런 곳이 많았다)이었습니다.

인육은 주로 납치, 인신매매 등으로 공급이 되었다고 하는데, 여자의 경우 외모가 아름다우면 기루로 팔려가지만, 얼굴이 변변치 못하고, 일을 할만 큼 튼튼하지 못하면, 인육이 되었다고 합니다. 대만의 사학자 황문웅은 중국의 식인문화는 5천년을 관통하며 지속되고 있고 이 식인문화를 알지 못하고서 중국의 역사와 문화를 논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중국인의 보편적인 사고방식도 이해할 수 없다고 말을 하였습니다.

왜 중국인은 서로를 믿지 못하고 부모자식간에서 배신을 하는가? 왜 중국인은 강자에겐 약하고 약자에게 잔인한가? 왜 중국은 중국특유의 대가족주의가 발달했는가 등등.. 이 모든 것이 식인문화와 관련이 깊다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식인문화로 인한 폐해와 중국인들의 사고에 미친 악영향을 노신은 '광인일기'를 써서 정면으로 비판했죠.

중국사람이 아닌 외국인이 중국의 식인문화에 대해 심도 있게 연구를 한 사람들은 바로 일본인들입니다. 그들은 이 식인문화 연구를 통해 중국인의 특성을 잘 간파하고 있었고 이를 대중국 전략을 짜는데 기본지식으로 활용했습니다. 우리는 바로 옆나라에 살면서도 중국의 식인문화가 존재했는지 조차도 모르고 그것이 중국사람들의 사고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이게 한국인과 일본인들의 차이가 아닐까요?

중국의 식인문화는 미개종족의 식인문화와는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극심한 기아와 원수에 대한 복수로서의 식인문화라면 다른 나라에도 그 예가 흔합니다만, 중국의 식인문화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그들의 역사와 정치,문화 중국인의 사고방식에 미친 영향은 엄청납니다. 왜 중국인들이 서로를 믿지 못하며 부모자식간에도 안믿는지 식인문화를 살펴보면 이해가 가실 것입니다. 또 입으로는 예를 외치면서도 같은 입으로 사람을 잡아먹는 그들의 심리상태도 이해가 가실 겁니다.

중국의 식인문화가 발달하게 된 배경에는 중원을 둘러싼 격한 투쟁에 따른 잔혹한 형벌제도의 탄생과 사람을 잡아먹는 형벌이 성문법으로 제정되어 법적으로 허용되었다는 점과 세계에서 유래를 찾을 수 없는 잦은 기근과 천재지변, 전쟁, 농업기술낙후로 인한 식량 부족 등이 한대 맞물리면서 확산되었다는 것입니다.

법적으로 식인이 허용되고 식량부족에 기근, 전란이 잦아들면서 차츰 식인문화는 아무 저항감 없이 중국민중에게 뿌리 박히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따라서 정쟁, 전쟁에서 패배한 정적, 적국군병 및 국민 등은 "잡아 먹히는 인육"이 되는 것은 너무도 당연했고 상황에 따라선 자국국민을 임의로 대량 징발해서 하루에 수천명씩 군대의 식량으로 사용되어진 것도 중국역사를 살펴보면 결코 보기 드문 일이 아니었습니다.

위에 잠시 공자에대해 업급하였습니다만, 예와 인의를 강조하는 유교도 이에 한몫을 단단히 했습니다. 왜냐면, 공자 역시 정당한 복수를 칭송하였기 때문입니다. 중국에서 왜 유교가 발달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도 식인문화와 관련 깊습니다. 춘추전국시대에 떠도는 말 중에 하나가 "만일 사람을 잡아먹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바로 성인(聖人)이다" 라는 말이었습니다. 그 말은 그만큼 식인문화가 널리퍼져 있었고 모든 중국인이 사람을 "즐겨" 먹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회분위기가 그런 상태였기 때문에 "예"와 "도덕"이 강조 되어질수 밖에 없었고 그런 사회분위기 하에서 유교가 발달 했습니다.

첫째, 중국문명의 발전과 그 식인문화의 전파는 그 족적이 일치합니다. 식인문화의 시작은 거의 대부분이 황하유역의 산동, 하남, 하북, 산서, 섬서성이 중심이었습니다. 시대가 흐름에 따라 점차 남쪽으로 남하해가는 특징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이어 식인문화는 중국문화의 전파에 따라 남하하여 회화유역에서 장강을 넘어 산동, 복건성으로 파급되어 집니다. 그 파급경로는 중국인들의 강남개발과 이주의 역사와 함께 합니다.

즉, 중국인이 많이 이주하면 인구가 급증하고 과잉개발에 의해 자연환경이 파괴되며 자연생태학적 균형이 깨어져 기근이 발생하고 식인현상이 발생하게 됩니다. 예를 들면 한나라 시대 고조 2년 부터 흥평원년에 이르는 400년 도안 식인현상은 대부분 중국문명의 시작인 황하에서만 발견되었습니다. 그런데 흥평 2년 이후에는 장강, 황하일대에서도 발생하고 강남, 광동, 복건성에서 식인현상이 나타는 것은 중국세력이 남하한 3-4세기 이후 동진시대 이후가 됩니다.

두째로 중국의 식인 문화는 인구과밀지역과 일치합니다. 즉, 변경지역이나 미개발지역이 아닌 인구 과밀 개발지역에서 출현합니다. 특히 정치,경제,문화의 중심지인 장안, 낙양, 개봉, 북경, 남경, 양주, 항주 등의 도시가 식인문화의 다발지역임은 주지할 필요가 있습니다.

세째로 중국의 식인 풍습은 정치환경변화와의 인과관계가 있습니다. 노신은 고대 중국 국가 성립 이후의 사회를 "사람이 사람을 먹는 역사사회" 라고 못을 박았습니다. 즉 노신이 말하고자 했던 것은 국가라고 하는 사적인 권력에 의해 구축된 고대국가 폭력기관이 광대한 대중을 국가라고 하는 우리에 가두고 수탈의 대상으로 삼고 우리 속의 극빈한 군중은 서로가 서로를 잡아먹는 작용을 통해서 인구와 식량의 자동제어를 하고 자생 자멸해 간 결과를 이루어냈다고 하는 것입니다. 노신은 수탈의 가혹화와 인구 과밀화가 가져온 식량위기 및 자연, 즉, 사회환경의 악화가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는 사회를 형성하고 중국의 식인문화를 창출했다고 주장합니다.

인육의 판매를 금지하는 법이 송나라 때에 만들어졌지만, 명나라를 거쳐 청나라 말기에 이르기까지 인육은 시장에서 공공연히 매매되었습니다. 1918년, 중국 근대의 사상가 노신은 <광인일기(狂人日記)>에 식인의 피해망상증에 걸린 광인을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식인 풍습이 만연한 사회상을 폭로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또한 '국가는 사람이 사람을 먹는 역사사회'라고 정의한 바 있습니다. 중국 5·4운동의 사상적 지도자 오우(吳虞, 1874∼1949)는 '유교 = 식인'이라 하며 강력히 유교를 비판했습니다. 식인풍습은 공산화된 중국에서 유교의 폐해 중 하나로 비판되었고, 최근에 이르러서야 점차 사라져갑니다.

오랜 역사와 문화를 자랑해 온, 유교문화의 종주국인 중국에서 식인 풍습이 꾸준히 이어져 내려왔다는 것은 이해하기 힘든 역사의 단면입니다. 식인풍습은 5천여 년간 합법적으로 존재했고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널리 행해졌습니다. 불과 얼마전 홍위병이 날뛰던 시기에도 중국전역에 광범위하게 식인풍습이 실존했으며 신용문객잔으로 대표되는 흑점이 존재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광인일기에 나타나는 주인공의 과대망상증은 노신이 정신병자를 묘사한것이 아니라 중국에서의 실제상황을 그대로 전하려했다는 점을 상기하시면 이해가 쉬우시리라 생각 됩니다.(주인공은 주변 이웃이 자신을 살해하여 잡아먹으려한다는 피해망상증환자로 나옵니다) 노신이 아큐근성과 식인풍습이 중국을 망치는 2대악으로 보고 이것을 근절하려고 얼마나 노력했는가를 보면 이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 문제였는가를 짐작할 수 있겠습니다.

오랜기간의 식인풍습은 노신의 말대로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게 만들고 신의라는 것 자체를 없애 버렷습니다. 중국인들이 신의를 말할때면 그들이 가장 위기에 몰렸을 때입니다. 그때만 예나 도덕, 신의 등이 나옵니다.

식인풍습 즉 약육강식의 단순한 논리는 그들의 특징적인 속성, 즉 강자앞에선 토끼가 되고 약자 앞에선 무서운 맹수가 되어버리는 것을 잘 설명해 주는 근거가 아닐까요? 일단 전쟁, 기근으로 식인풍습이 대대적으로 시작되면 잡아먹히는 인간의 종류와 순서에 일정한 법칙이 있었습니다. 일단 유괴하기 쉬운 어린이를 시작으로 여행자, 독신자 및 독거노인 등으로 순서가 옮겨갑니다.

나중엔 비교적 소규모의 가족단위를 이루는, 즉 처치하기 쉬운 가정을 다음 차례가 되고 비슷한 규모의 가족단위간에는 관에 줄이 있어 파벌에 속한자가 속한 가정이 그렇지 못한 가정을 잡아먹고 맨 마지막 단계에 가면 부모가 자식을, 남편이 아내를, 형이 동생을 잡아먹었습니다.

중국 특유의 대가족제도는 결국 식인풍습으로부터 자기자신과 가족을 지켜내려는 눈물겨운 제도이며 여러명이 뭉쳐서 숫적우위를 바탕으로 잡아먹힐 확률을 낮추고 생존확률을 높이려는데 주목적이 있다는 것입니다. 잡아먹히는 순서상 쪽수가 많은 가정이 맨 나중에 속했기 때문입니다.

[출처: 태학 경연 대학]

ps. 뒷북확율 90% 일라나..


Comment ' 9

  • 작성자
    Lv.59 식객(食客)
    작성일
    04.09.21 19:11
    No. 1

    처음 알은 사실이네요. 중국의 식인이 역사가 깊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까지...
    근데 한가지 궁금증이 생기네요. 거의 모든나라에서 식인의 풍습이 있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근데 우리나라의 식인 풍습은 못들어 봤거든요.
    우리나라에도 식인 풍습이 있었나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황금박쥐
    작성일
    04.09.21 19:59
    No. 2

    식인풍습이라기보다는.....
    아마 먹을것이없어 서로 잡아먹고 그런것 아닐까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8 永世第一尊
    작성일
    04.09.21 20:16
    No. 3

    식인이라는게 그 사람을 먹음으로써 그 사람의 기억과 모든 능력을 물려받는다는 취지라고 하던것 같기도 하고...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8 비암悲唵
    작성일
    04.09.21 21:27
    No. 4

    -ㅅ- 크헉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Canny
    작성일
    04.09.21 22:52
    No. 5

    원시시대땐 그사람의 육신을 먹는것이
    능력을 얻는것이라고 생각햇다죠-_-;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기학
    작성일
    04.09.22 18:44
    No. 6

    영세제일존님, 쭈꾸미님이 말씀하시는 것들은,
    제가 알기로는 아프리카 쪽 원시 부족 이야기 아닌까요?
    그들은 그 육신을 먹음으로써 그 능력을 얻을 수 있다고 믿었죠.
    그게 인류 보편적인 이야기는 아닌 것 같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소혼객
    작성일
    04.09.22 20:12
    No. 7

    우선 해는 젓갈입니다.
    젓갈을 인체를 재료로 담굴 수도 있겠지만, 인체를 재료로 담궈야지만 젓갈은 아닙니다.
    두번째. 노신의 광인일기가 당시 중국 현실 중 식인문화를 그대로 전할려고 했다니요........ 이건 뭐라 할 말이 없고.
    세번째. 의외로 식인풍습은 인류사에 자주 등장합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죠. 문둥이가 애들 납치해 간꺼내먹는다...등
    그리스 신화의 타나토스. 동유럽권의 뱀파이어 전설과 관련된 사건.
    몇십년전 영국 연쇄 살인마(희생자 머리로 스튜끓여 먹은놈). 독일 변태정육점.

    찬성: 0 | 반대: 0 삭제

  • 작성자
    Lv.1 철동
    작성일
    04.09.22 23:45
    No. 8

    식인은 세계 어느 곳에서나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풍습'이라 할만큼 자행되는 곳은 몇 곳 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식인 풍습은 없고, 식인사건은 별반 다르지 않게 일어난 것은 사실입니다.
    지금처럼 농업 기술이 발달되기 이전에는 한 번 기근이 들면 굶어죽는 사람이 예사로 발생하기 마련이고, 궁핍이 극에 달하면 사람이라도 잡아먹는다는 얘기는 단지 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선 식인을 분명히 '잘못'으로 인식해왔고, 중국처럼 하나의 '문화 코드'로 자리잡지는 않았습니다.
    '풍습'과 '사건'은 뜻부터 다릅니다.

    이 글은 참 재미있네요. 제 블로그로 좀 퍼가겠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하늘소ii
    작성일
    04.09.24 01:50
    No. 9

    좀 오래된 뒷북이 아닐런지...
    분ㅁ

    찬성: 0 | 반대: 0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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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728 ㅠ.ㅜ 너무 좋아. 휘성- 제발♬♬ Lv.99 을파소 04.09.22 344
25727 [펌] 구타해도 될까요 +5 Lv.1 푸른이삭2 04.09.22 886
25726 협의 부흥을 위해서...... Lv.61 풍훈탑 04.09.22 385
25725 용대운의 냉혈무정....하승남의 [골통 대남자]라는 일간... +4 Lv.68 풍아랑 04.09.22 800
25724 궁금한게 있는데요... 서버에 대해서.. Lv.11 韶流 04.09.22 180
25723 [펌] 달마의 마음[心] +3 Lv.1 쿤산 04.09.22 448
25722 이번 추석 특선 영화... +19 Lv.39 파천러브 04.09.21 1,040
25721 즐에 대한 진지한 고찰(?) +8 Lv.39 파천러브 04.09.21 419
25720 [펌]sbs 드라마 '태왕사신기', 바람의나라 표절..... +7 Lv.55 日越 04.09.21 601
25719 크와아아앗!이거야말로 곤충탕이 아닌가... +3 Lv.1 적천풍 04.09.21 320
25718 대여점보다는 대학 도서관에 로비를...? - -;; +5 Lv.65 blind123 04.09.21 401
25717 아~~~맞다!!! 사조영웅전 +5 Lv.1 연심표 04.09.21 310
25716 비보이있나요~ +3 Lv.9 망부 04.09.21 270
25715 대단하다 옥션..-_-;; +2 Lv.13 은검객 04.09.21 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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