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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 웃어봐요! 우리들의 이야기로.



[펌] 모방이 왜 '악'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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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1.21 15:07
조회
262

시리즈 1탄인 모양입니다.

[예능PD를 말한다]  

미디어오늘 [email protected]

오늘 이야기는 여러 사람한테 욕먹을 각오를 하고 쓴다. 우리의 지식인들은 자기의 생각은 거의 내놓지 않고 남들의 담론에서 자기 멋대로 발췌하여 이상하게 요리를 해서 또 다른 이상한 담론을 만드는 재능들이 뛰어나다. 딴따라인 나는 그런 재주가 없으므로 비판을 받더라도 다 내놓고 오늘 얘기를 하려고 한다.

지난 19일, 방송생활 18년만에 KBS에서 희한한 일을 봤다. 이번 가을 개편에 새로 편성된 <스펀지>가 일본 후지TV의 <트리비아의 샘>을 표절했다는 논쟁에 대해 제작팀이 마련한 시사회 겸 기자회견이 있었다. 시사회는 먼저 <트리비아의 샘>을 시사하고 이보다 5년 전에 방송된 KBS <확인 베일을 벗겨라>에서 이미 똑 같은 아이템(라면 길이 재기)을 똑 같은 방법으로 방송한 내용을 보여줬다. 이렇게까지 증거를 대는데도 여기에 참여한 네티즌은 아직도 자기는 표절이라는 감을 지울 수 없단다. 그리고 후지TV에 왜 KBS <확인 베일을 벗겨라>를 베꼈냐고 항의할 생각이 없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그럴 의향이 없다고 한다. 그 네티즌은 <트리비아의 샘>을 한번인가 두번인가 봤다고 한다. 한쪽은 표절이 절대 아니라고 하는데 한쪽은 집요하게 표절이라고 외치고 제작자에겐 도착하지도 않은 후지TV의 질의서는 신문에 먼저 보도되고, 요즘 온갖 음모와 코미디가 국회에서만 일어나는 줄 알았는데 방송계에도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표절 논쟁은 프로그램 개편 때마다 겪는 문제이다. 외국에 비슷한 프로그램을 발견하면 네티즌들은 표절이라고 프로그램 홈페이지를 도배질하고 기자들은 그걸 받아서 기사화하고 학자들은 정기적으로 표절 문제에 대한 논문을 발표하여 확대재생산한다. 그리고 방송위원회는 이를 근거로 제작자를 호출한다. 그래서 몇 년 전 MBC는 표절 문제로 사과방송 명령을 받은 적이 있다. 이런 것을 보면 꼭 한국의 지식인들은 베끼기 논쟁에 미친 사람들 같다. 아니 외국에서 파견한 저작권 에이전시들 같다.

작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작품인 <Training day>는 몇 년전에 개봉한 우리 영화 <투캅스>와 상황 설정과 구성, 스토리 전개가 똑같다. 단지 <투캅스>는 코믹 설정이고 <Training day>는 진지한 접근이라는 것만 다르다. 만약에 <투캅스>가 나중에 만들어 졌다면 상영이 불가능하지 않았을까?

방송 포맷에 저작권을 인정할 수 있을까?

학자들의 논문에 단골로 등장하는 메뉴가 방송 프로그램의 베끼기와 폭력·선정성을 기반으로 하는 도덕성 문제이다. 아마 논문 분류를 하면 이 두 아이템의 비율이 제일 높을 것이다. 내가 항상 하는 중요한 질문이 하나 있다. 저작권은 왜 필요하고 방송 포맷을 베끼면 왜 안될까? 그러면 그들의 답변은 하나다. 창의성을 떨어트리고 남의 것을 훔치는 행위이다. 더 가관인 것은 외국 방송사가 소송을 제기하면 어떻게 할거냐는 걱정까지 해준다. 참 마음씨들도 곱다. 방송사 걱정까지 해주니(아직 방송 포맷과 관련해서 한건의 소송도 없었고 질의서를 받은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이것도 물론 누가 중간에서 장난쳤다는 감을 지울 수 없지만). 그러면서 PD들이 독창적으로 만들 생각은 안하고 안이하게 남의 것만 베낄 생각만 한다고 비판한다.

백번 지당한 말씀이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원론적인, 그리고 아마추어적인 얘기다. 시청자는 이미 모든 것을 다 봤는데 제작자들이 열심히 생각한다고 시청자를 만족할 만한 상품을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다. 남의 것을 다 갖다 붙이고 거기다가 또 하나를 붙여야 제대로 된 상품이 나오게 된다. 우리가 그렇게 베끼기(나는 이 용어 대신 모방이라고 한다)의 대상이라고 하는 일본 방송도 90년대 초반까지 온갖 베끼기를 했다. 프로그램 개편 2∼3개월 전에 미국, 유럽은 물론 심지어는 동남아까지 PD들을 출장 보냈다. 이렇게 모방을 하던 일본 방송이 90년대 중반부터 세계적인 수준으로 올라서게 된 것이다. 우리의 방송도 모방의 역사다. 예전에는 일본을 가는 게 어려우니까 부산으로 가서 일본 방송을 보고 와서 프로그램에 반영했다는 선배들의 눈물겨운 이야기도 있다. 이런 우리도 90년대 후반부터는 일본을 따라 잡았다. 지금은 사실 일본 방송을 베낄래야 우리 수준에 맞는 프로그램을 발견할 수 없어서 베낄 수도 없다. 모방의 유용성에 대한 논쟁은 끝이 없으므로 김상근 PD의 논문 '창조적 문화적 과정으로서의 모방'으로 대신한다(이 글 말미에 게재).

방송 포맷에 관한 저작권은 논쟁의 여지가 많다. 아직까지는 인정되지 않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물론 프로그램의 포맷을 사고 팔지만 베낀 프로그램의 20%도 안된다. 로열티를 주고 산 경우는 포맷과 내용을 변경하면 안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사실상 방송에서 포맷을 수입해서 성공한 예는 아주 드물다. 한국에서는 유일하게 MBC의 <브레인 서바이벌>이 성공한 예이다. <브레인 서바이벌>도 포맷이나 내용변경을 거의 하지 못하고 원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포맷이나 내용을 변경 못하게 하는 것은 조금이라도 변형을 가하면 원전의 저작권을 인정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 프로그램도 상당부분은 다른 데서 모방을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돈 안주고 그냥 베끼는 것이다. 북한 같은 특정국가만 빼고 거의 모든 나라가 또 방송선진국일수록 더 많이 서로 베낀다. 일본은 그 베끼기의 천국이다. 앞에서도 얘기 했듯이 미국 유럽뿐 아니라 동남아 등 후진국 것도 베껴왔다.  다른 데서 다 베껴온 것이기 때문에 일본은 한국방송에서 베끼던 말던 신경을 안써 왔던 것이다. 그걸 보고 우리 스스로 알아서 베꼈다고 서로 지지고 볶고 난리니 남이 볼 때는 코미디나 다름없다.

일본에서 유학을 하고 있거나 다녀온 기자나 교수, 학생들은 혹시 한국 방송에서 자기가 일본에서 본 프로그램과 비슷한 거만 보면 거의 광분을 한다. 한국의 PD들이 정말 형편없는 놈들이고 창피해서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다고 열변을 토한다. 더군다나 그 첨병에 인터넷이 있다. 아이러니컬한 것은 지적정보의 공유를 근본 시스템으로 하고 있는 인터넷이 베끼는 것을 비판하는 첨병에 있다는 것이다. 자기들은 저작권법 소송에서 패소한 냅스터, 소리바다 살리기 네티즌 운동을 벌이고 웹사이트가 유료화하면 반발하면서 말이다. 얼마나 이중적인가?

내가 작년 일년동안 캐나다에서 뉴미디어(디지털 미디어)를 공부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 미국이나 캐나다 학생들도 돈이 없기 때문에 '크랙버전'이라는 불법 소프트웨어를 다운받아 사용한다. 그들이 다운받는 곳이 중국과 한국의 사이트다. 중국은 제1의 불법 소프트웨어 천국이고 한국이 2등이라고 볼 수 있다. 이거야 말로 도둑질이다. 방송이야 언어권이 다르면 같은 상권이 아니기 때문에 원작자에게 손해를 절대 안 끼치고 오히려 시청자에게 좋은 상품을 제공한다는 변명거리라도 있지만 컴퓨터 프로그램 소프트웨어나 mp3, 영화 파일 불법 복제 같은 도둑질은 무슨 변명을 할 것인가?

베끼기로 시작하는 창조

  내가 장담하는데 한국의 PD들 중에 아니 전세계 PD중에 제대로 베낄 수 있는 능력이 있는 PD는 전체의 30%도 안 된다. 그만큼 좋은 프로그램 만들기가 어렵다. 그리고 프로그램은 100% 다른 프로그램 보고 만든다고 보면 된다. 다큐메터리든 오락이든. 머리에서 창작해서 만든다는 것은 학교에서 배우는 학생들에게나 할 수 있는 얘기다. 더군다나 요즘처럼 시스템이 복잡하고 시청자의 수준이 높은 상황에서는 독창적 아이디어로 프로그램을 만든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면 된다.

나는 솔직히 2∼3년 전 까지만 해도 일본 프로그램이고 미국 프로그램이고 한국의 타 방송 프로그램이고 열심히 봤다. 지금은 우리 방송보다 못하기 때문에 볼 것도 없지만. 사무실에서 외국 프로를 모니터 하고 있으면 한심하게 처다 보는 PD들이 많았었다. 그 사람들이 대단한 프로를 창작해 내는 것을 한번도 본적이 없다. 왜냐하면 그들 생각의 본말이 전도됐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독창적인 상품을 만드는 게 아니고 얼마나 좋은 상품을 소비자에게 제공하느냐이다.

MBC가 프로그램을 베꼈다고 방송위원회로부터 사과방송 명령을 받은 2∼3년 전에 일본프로그램을 모방한 SBS <좋은 세상만들기>가 한국방송대상을 탔고 일본 연예인들이 도버해협 횡단을 방송한 일본 프로그램이 흥행에 성공하자 SBS에서 대한해협 횡단을 방송하여 대단한 호응을 얻고 상까지 탔다. 그 바람에 내가 담당하던 <출발 드림팀>이 시청률에서 뒤지는 수모를 당한 기억이 아직 남아있다. 이들 프로그램들은 일본의 원전보다 훨씬 재밌고 좋은 프로그램이다. 이걸 뭘로 설명하겠나. 결국 베끼기냐 아니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시청자에게 보다 더 좋은 프로그램을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베끼기 논쟁은 대학생 같은 아마추어들이나 할 일이다. 외국의 경우 '빅 브라더'의 대성공 이후 거의 모든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코드는 서바이벌 방식이다. 그래서 만든 'Survivor' 시리즈는 'Big Brother'보다 훨씬 공익적이고 유익한 좋은 프로그램이 되었다. 그리고 미국의 텔레비전은 채널마다 우리보다 몇 배 더 유사한 프로그램들이 방송되고 있다.

실제로 프로그램 포맷을 팔아봐야 몇 푼 못받는다. 우리도 가끔 프로그램 포맷을 수출하는데 최고액수가 10만 달러, 보통 1만 달러에서 5만 달러 수준이다. 보통 프라임 시간대 한 프로그램의 광고수입의 3분의 1도 안 되는 수준이다. 그렇기 때문에 방송 포맷에 대한 법적인 분쟁이 거의 없는 것이다. 영어권은 포맷을 파는 게 아니라 같은 언어권이기 때문에 그 프로덕션이 프로그램 제작권을 확보하는 것이 흐름이다. 예를 들면 영국에서 성공한 Pop Idol 제작프로덕션이 미국에서 <American Idol>을 만들어 대히트를 치고 지금은 캐나다 등 인접 영어권 국가용 프로그램까지 제작하고 있다. 그래서 방송 포맷을 개발하여 성공한 프로덕션은 그 포맷을 팔아서 수입을 얻는 것이 아니라 프로그램 제작권을 확보하여 엄청난 수입을 올리는 것이다.

만약에 일본 프로덕션이 한국 방송의 프로그램을 제작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면 그들은 절대 포맷을 팔지 않는다. 자기들이 직접 제작을 해야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 그 경우 대개 포맷을 일정부분 변형해서 무단 사용한다. 미국에 유독 유사 프로그램이 많은 이유이다. 이런 방송 포맷의 저작권 인정 여부를 논쟁하기 이전에 여기서 내가 주장하고 싶은 것은 저작권법 타당성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이다. ▶다음회에 계속

아래의 글은 참고자료인 김상근 PD의 글입니다.

창조적 문화적 수용과정으로서의 모방

김상근(KBS 제작위원)

소설가 안정효씨를 토크 프로그램의 게스트로 초청해 방송한 적이 있다. 사회자의 정해진 질문이 끝난 후 초대된 객석의 질문 순서가 돌아왔다. 대학생인 듯 싶은 학생이 일어나 "장차 안 선생님과 같은 유명한 소설가가 되는 것이 꿈인데 지금부터 무엇을 해야 하는가"가 질문의 요지였다.

안정효씨가 되물었다. "학생은 지금 무슨 소설을 쓰고 있느냐"고, 그러자 학생은 "선생님, 제 질문은 제가 지금 소설을 쓰고 있는 사람이 아니고, 장차 소설가가 되기 위해 지금부터 제가 준비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질문 드리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안정효씨는 짤막한 답변으로 응대했다. "지금 소설을 쓰고 있지 않으면 어떻게 소설가가 되겠다는 것이냐? 학생은 소설을 써보고 질문을 하던가 나를 찾아오던가 하라." 대답이 너무 단호해 학생은 보충 질의할 엄두도 못 내며 자리에 앉았고 다음 질문자의 순으로 이어졌다.

프로그램 말미에 사회자가 분위기를 추스린 다음 안정효씨의 자상한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훌륭한 소설가가 되기 위해서는 흉내를 내든 습작을 하든 많이 써봐야 할 것이며, 그러기 위해서는 당연히 남의 작품도 많이 읽어야 할 것이다. 그러는 가운데 방법도 배우고 자신의 독창성도 개발하고…문장은 짧게 쓰는 것이 좋겠다던가, 대화체를 너무 많이 넣지 말아야 겠다든지, 묘사 방식의 경향은 어떠하며 비유 방법의 조류는 어떠한지에 이르기까지…. 지극히 당연하면서도 소중한 말이라 여겨져, 방송용 편집과정에서 자막으로 강조해 방송한 일이 있었다.

요즘 세간에는 방송 프로그램 모방이 다시 도마 위에 오르면서 모든 방송제작자 들이 외국 프로그램이나 베끼는 파렴치범이라도 된 듯 코너에 몰아 놓고 있다.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없이, 방송사의 공개된 사무실에서조차 외국 프로그램을 버젓이 틀어 놓고 시사회를 한다는 둥 악의적인 표현까지 써가며…. 봐서는 안될 도색 영화라도 본 듯 말이다. 특히 일본 프로그램과 관련해서는 우리 프로그램과 일본 프로그램이 유사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사실 확인도 없이 무조건 일본 프로그램을 베꼈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는 소명자료를 주면 또 다른 유사 일본 프로그램을 들이대면서 죄를 시인하라는 것이다. 시인할 자료가 없으면 이실직고하던지 알리바이를 대라는 거다. 심지어는 방송에 대한 전문지식이나 자신의 직업과 관련 없는 사람들까지도 편견을 갖고 범죄사실 찾기에 집착하는 경우도 있는 듯 하다. 그러면서 순수한 토종 한국산 프로그램을 만들어 내라는 것이다.

그러면 창작을 위해서는 남의 프로그램을 절대로 봐서는 안되고, 골방에 앉아서 문을 닫아걸고 끙끙 앓아가며 고민해야 된단 말인가?  해외 우수 프로그램 감상회나 세계 우수 프로그램 판매 시장에도 가지 말아야 하고, 해외 우수 프로그램 콘테스트에 나가서는 다른 나라의 작품이 소개될 때는 눈을 감고 있어야 하는가?  

프로그램 제작자들이 다른 나라의 프로그램을 공동으로 시사하는 것은 제작자의 중요한 업무 영역이다. 특히 방송프로그램이 문화상품으로서 가치 매겨지고 있는 작금의 방송 환경에 비추어 볼 때 선진국의 우수한 프로그램들을 모니터 해 보고 그 우수성의 제작 행태나 제작 패턴을 연구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교수들이 모여서 국제적 심포지움을 갖는 것이나 우리 기업에서 선진 외국의 제품을 분석해 보고 연구하는 것과 같은 행위이다.

유일상은 현대의 대중문화는 대중매체가 만들어 낸 '매스미디어에티드 문화(Mass Mediated Culture)'라고 했다. 그래서 매스컬쳐와 포퓰러컬쳐와 구분되며 전통적 향민 문화와도 구분된다고 했다. 여기서 말하는 대중문화 곧 '매스미디에이티드 문화'는 방송프로그램이다. 때문에 기층 문화나 향민 문화가 방송프로그램에 수용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경우도 있다. 방송 프로그램이 문화적 상품으로서의 속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TV는 서구 중심적 '근대성 기구(the institutions of modernity)'의 구성원으로서 서구 중심의 문화상품을 전 세계에 퍼뜨렸다는 지적처럼 텔레비전 프로그램은 서구에서 발달해 전 세계에 전파되고 유입된 문화상품이라는 점이다.

우리는 이 점을 인정해야 한다. 모든 상품이 제조되어 유통되고 판매되듯, 문화상품으로서의 방송프로그램도 일정한 경로를 통해 유입되고 전파되는 특성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방송프로그램은 자생적으로 생성된 기층 문화나 향민 문화이기보다는 서구에서 유입된 TV라는 매체를 통해서 서구 중심의 문화를 전파시키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메스미디에이티드 문화'라는 점이다. 그 유통의 과정에서 외국 프로그램의 최초(:) 수용자인 제작자들은 상품성을 검증할 것이며 제작 행태의 특성을 뜯어 볼 것이다. 경향과 흐름을 읽어 지신들이 만든 상품과 다른 점을 찾아 낼 것이며, 새로운 방법을 익히기도 하여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들어 내기도 하고, 저렇게 만들어서는 안되겠다는 반면 교사의 교훈도 얻게 될 것이다. 방송프로그램의 모방에 대한 담론도 여기에서 출발해야 할 것이다.

얼마 전 몇몇 신문들은 KBS의 <확인 베일을 벗겨라>와 <신비의 과학세계>가 <황수관의 호기심 천국>을 베꼈다고 비난하면서 이런 비슷한 아류의 인포테인먼트(Infortainment) 프로그램들은 모두 일본 프로그램을 흉내냈다고 평가절하 했다. 그러면서 이와 유사한 일본 프로그램들을 열거했다. NHK에서 방송되고 있는 <수긍해보고 수긍합시다>를 비롯해서, 생활 속의 과학적 지식이나 원리를 조사하는 <곤노 미사코의 과학관>, <다케시의 만물창세기>, <특명 리서치>, <대발견 공포의 법칙>, 또 SBS가 베꼈다는 <강력 목요스페셜> 등에 이르기까지….

우선 하나 묻고 싶다. 한국에서 비슷한 형태의 프로그램들은 모두 그 나물에 그 나물인 아류이고, 일본에서 유행되고 있는 유사 포맷의 프로그램들은 다양성의 표출인가? 원래 인포테인먼트 프로그램은 호주에서 발달한 방송의 기능적 복합 형태에서 출발한 용어이다. 정보(Information)와 오락(Entertainment)의 합성어이지만 작금에는 교양과 오락, 즉 유익과 재미를 동시에 추구하는 프로그램으로 이해되고 있다. 프라임 타임 시간대에 다수 시청자를 끌어 모아 높은 시청률을 꾀했던 호주의 지상파 방송국들은 드라마로 승부를 내려 했다. 그러나 고액의 제작비가 투입되는 드라마로 경쟁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러다가 호주 사람들이 정원 가꾸기를 좋아하는 취향을 간파하고 정원 가꾸기에 대한 정보를 재미있게 전해주는 프로그램을 프라임 타임대에 편성한 것이 의외의 성공을 거두었다. 드라마 보다 훨씬 적은 제작비로 드라마를 이기는 이른바 인포테인먼트 프로그램이 성행하게 된 배경이다. 현재 호주에서는 이런 인포테인먼트 프로그램이 시청률 베스트 10 중에 서너 개가 랭크되고 있다. 이런 인포테인먼트 프로그램은 영국에 유입되어 성행하게 되고 다시 미국으로 전파되고 한국과 일본 프로그램에 영향을 끼치게 되었고, 근래는 한국과 일본에서도 인포테인먼트 프로그램 제작의 유행(;)을 타게 된 것이다. 아울러 KBS의 <확인 베일을 벗겨라>는 KBS의 장수 정보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인 <무엇이든지 물어보세요>(1983년 첫 방송)을 제작하던 한 PD가 인포테인먼트 프로그램 제작의 세계적 경향을 읽고 1996년부터 개편 프로그램 아이디어로 내놓았던 것을 1998년 6월 부분 개편 시에 편성되면서 제작한 프로그램임을 밝혀 둔다.

한 때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으로 대변되는 드라마 다큐멘터리 형식의 재연 프로그램이 유행되기도 했었다. 지금은 없어진 MBC의 <경찰청 사람들>, <다큐-이야기 속으로>, KBS의 <긴급구조 119>, <다큐멘터리-남과 여>, KBS의 법정 다큐드라마 <그때 그 사건> 등을 들 수 있는데, 그 상징적 원조는 미국의 <RESCUE 911>을 꼽을 수 있다. 작금에는 전체 프로그램을 드라마 다큐멘터리 방식으로 제작하는 대신 MBC의 <앗! 나의 실수>, SBS의 <순간포착-세상에 이런 일이>, KBS의 <나의 사랑 나의 가족> 등에서 보는 것처럼 프로그램의 인서트 개념으로 짧게 활용하는 기법으로 채택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일본도 마찬가지로 전체 프로그램의 포맷을 재연 다큐 드라마로 제작하기보다는 코너 코너마다 짧게 활용되고 있는 양상을 띄고 있다.

버라이어티의 장르도 새로운 조류를 타고 변화하고 있다. 초창기 미국 텔레비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장르로서 23년 동안 사회를 맡았던 에드 설리반(Ed Sullivan)에 의해 발전되었던 버라이어티는 1980년대 컬러방송의 시작과 함께 우리나라에 유입되었다. 우리나라의 초기 버라이어티는 미국에서와 마찬가지로 노래, 만담, 마술 등으로 코너가 짜여지고, 사회자도 주로 1인의 코미디언에 의존해 출발했으나 1990년 중반에 들어서면서 채널 선택권을 쥔 X세대를 겨냥한 코믹 버라이어티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코너 물에서도 가수 쇼나 만담 대신 코미디, 시트콤, 꽁트, 패러디 등 웃음코너가 주류를 이루었으며 사회자도 한 두 명이 진행하는 고정 틀을 깨고 여러 명이 함께 진행하는 다MC 체제로 바뀌는 형태로 발전되었다. 이후 코믹 버라이어티는 1990년대 말에 접어들면서 나라 경제가 IMF체제로 바뀌고 통합 방송법 개정이라는 급격한 사회 환경 변화 속에서 방송의 공공성 구현과 사치 풍조 배격이라는 국가 사회적 아젠다 실현에 부응하면서 이벤트 버라이어티 시대를 맞게 되었다. 수명의 다 MC군단은 3명 이하로 줄고, 코너물도 국민 통합과 화합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획물을 이벤트화 하는 양상으로 바뀌어 갔다. 이는 일본 프로그램의 교양 버라이어티의 코너 구성물에서도 불 수 있는 양태로서 양국 간의 문화적 정서적 동질성을 엿 볼 수 있는 단면이기도 하다.

이상에서 살펴 본 우리나라의 인포테인먼트 프로그램이나 리얼리티 재연 프로그램,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의 변화 양상과 추이를 볼 때 한국과 일본 프로그램은 경향과 조류에서 유사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우리나라 프로그램을 근거로 일본 프로그램의 경향과 동향을 살펴보면서 양국의 정서구조와 문화적 수용 태도의 유사함도 느낄 수 있다. 이런 양국의 문화 의식적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이런 경향과 조류를 형성하기까지 누가 누구에게 영향을 끼쳤느냐고 단언해 묻기는 어렵다.

다만 제작자의 한 사람으로서 우리나라의 프로그램이 일본의 영향을 더 많이 받고 있음을 인정할 때 경과의 경중은 논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한국과 일본의 프로그램이 유사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모든 가치의 기준을 일본에 두고 한국 것은 모두 일본의 영향을 받았다고 일률적 평가를 내려 한국의 프로그램은 일본의 프로그램을 모방했다고 단언하는 것은 지극히 잘못된 시각이다. 또 지나친 배일사상에 얽매어 서구 특히 미국은 배워야 할 선진문화요 일본은 배워서는 안 되는 문화로 구분할 수 없다. 일본도 서구 특히 미국의 프로그램의 영향을 받는데 예외는 아니다. 다만 일본은 나름대로 재해석을 통해 자신의 방송문화를 만들어내 우리에게 모방의 모델을 제공하고 있는 반면 우리는 아직 그러하지 못한 것이 현실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방송뿐만 아니고 사회 경제 등 모든 분야에서 일본이 우리 보다 앞서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하는 것과 같다. 우리는 이 점을 인정하고 일본 것을 배울 것은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일본을 따라잡고 이길 수 있다.

한동안 우리나라의 배구는 일본의 A퀵과  B퀵 기술에 꼼짝 못하고 당하기만 하다가 기어이 그것을 연습하고 습득해서 이제는 오히려 일본 보다 A퀵과  B퀵을 더 잘 할 뿐 아니라 우리 특유의 공격 기술을 개발해 일본을 이기고 있지 않은가? 중국의 스카이 서브에 눌려 패배만 거듭하던 우리나라의 탁구가 중국의 괴력 스카이 서브를 피나는 노력으로 배우고 익혀 우리 것화 해, 10억 인구의 중국 탁구를 누른 감회가 있지 않은가? 김치 담그는 법을 배우려면 한국에 와서 배워야 하고, 포도주 담그는 법을 배우려면 불란서로 가야 한다. 사자 새 끼도 어미에게서 먹이 잡는 방법을 배워 어른 사자가 된다.

일본 문화가 개방되고 특히 일본의 방송이 개방되면 우리의 방송프로그램이 설 땅이 없다고들 한다. 이제는 모방도 어렵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일본 것을 많이 알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는 이미 일본 프로그램의 제작기법을 다 연습해 놓았다고나 할까? 제작진의 입장에서는 이제 일본 방송이 개방되어도 겁날 것 없다. 그러기에 우리의 PD들은 어떤 장르 어떤 형태의 구성방식도 만들어낼 수 있는 1인 다기능의 제작자로 무장되어 있고 그렇게 성장해 가고 있다. '쇼양 PD'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1인의 PD가 다큐멘터리도 만들 수 있고 드라마도 만들 수 있으며 쇼도 연출할 수 있다. 서정우는 우리나라의 대중문화 생성 시점을 1945년 해방에서 동란휴전의 1953년까지 약 10년 간으로 볼 수 있다고 했다. 그 동안 우리의 대중문화는 획일적인 군사문화와 군대식 위락문화를 중심으로 미국과 일본의 대중문화를 간헐적으로 모방하면서 서구의 대중문화를 물끄러미 쳐다 본 것은 아닌지 모를 일이다고 했다. 이제 우리는 외국 프로그램을 물끄러미 쳐다보기만 할 여유가 없다. 자꾸 보고 배워서 빨리 따라 잡아야 한다. 문화적 정체성과는 별개 문제다. 방송 프로그램은 다른 제조 상품과 같이 국제경쟁에서 이겨야 하는 문화상품이기 때문이다.

모방을 예찬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모방의 위험도 있고 역기능도 있다. 그것은 궁극적으로 재창조를 위한 과정이어야 한다. 표절과 복사를 모방으로 포장해서는 안 된다. 남의 시험지를 컨닝해서 자기 점수를 올리는 것이 모방이 아니다. 공부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 모방의 참 뜻이다. 모방을 명분으로 방송이 창조의 가치를 무시해서는 더더욱 안 될 일이다. 모델 프로그램을 철저히 연구 분석하여 그 핵심적 요소들을 분석하고 연구하여 새로운 창조를 할 때 모방의 명분은 선다. 따라서 모방에 대한 관점도 재정립 할 필요가 있다. 일방적으로 폄하시켜서는 안될 일이다. 단순한 혐의의 지적이나 확인이 아니라 보다 세분화 된 차원에서 입체적으로 논의돼야 할 것이다. 모방의 당위론은 과연 타당한지, 모방의 과정 속에 창조적 개작 작업은 이루어 질 수 있는지, 또 창조의 과정에서 문화적 정서적 동질성과 이질성이 어떤 상호작용을 했는지, 역기능과 부작용은 무엇인지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하여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오강선 PD는 1986년 KBS 기획제작국으로 입사하여 교양국을 거쳐 지금은 예능국에서 <일요일은 101%>, <윤도현의 러브레터>, <KBS 예술극장>의 책임 프로듀서(CP)를 맡고 있다. 그 동안 <도올의 논어 이야기>, <슈퍼TV 일요일은 즐거워>, <좋은 나라 운동본부>, <TV는 사랑을 싣고> 등을 연출했다.

2003년 11월 21일 09:51:46


Comment ' 3

  • 작성자
    Lv.1 등로
    작성일
    03.11.21 21:52
    No. 1

    확실히, 창조의 어머니...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2 mr*****
    작성일
    03.11.22 13:05
    No. 2

    이 부분이 모든걸 정리하는군요.

    -> 작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작품인 <Training day>는 몇 년전에 개봉한 우리 영화 <투캅스>와 상황 설정과 구성, 스토리 전개가 똑같다. 단지 <투캅스>는 코믹 설정이고 <Training day>는 진지한 접근이라는 것만 다르다. 만약에 <투캅스>가 나중에 만들어 졌다면 상영이 불가능하지 않았을까?

    강우석씨 잘한게 많아서 씹고 싶지는 않지만, [투캅스] 1편은 프랑스 영화 [마이 뉴 파트너]와 정말로 똑같습니다. 정말 심하게 똑같아서, 당시로써는 그거 합리화하느라 바빴죠...

    결국 한국 TV 프로그램이 5년 먼저 했다는 것도, 그 이전에 이미 다른거 베꼈다는 말로밖에 안들림.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57 ch******
    작성일
    03.11.23 14:22
    No. 3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 뭐, 좋은 말이죠.

    그런데 글쎄, 보통 창조 엄마는 유부녀라서 사람들이 관심없어 하지 않나요?

    대부분 사람들은 창조 엄마 말고, 창조 본인 쪽에 관심이 있는 걸로 아는데... -_-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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