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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정담

우리 모두 웃어봐요! 우리들의 이야기로.



일말상초.

작성자
Lv.23 달디단
작성
16.03.30 23:21
조회
1,128


 길가에 예쁜 꽃 한 송이를 발견했다. 모종삽으로 예쁘게 작은 화분에 담아 집에 가져다 놓으면 매우 만족스러울지 모른다. 꽃을 꺾어 향기를 맡아도 좋을 것 같다. 꽃잎을 하나 뜯어 책장 사이에 놓아도 좋겠다. 그런데, 내가 지금 보고 있는 이 예쁜 꽃은 누군가 그저 눈으로 감상하고 지나갔으니까 내가 볼 수 있었겠지. 


 내 눈에 한 번 담았던 것만으로 충분히 좋은.




 '쾅!'


 힘차게 문을 걷어 찬 것 같은데, 마치 슬로우 비디오를 튼 것 마냥 느리게 보이는 것 같다. 내가 발로 걷어 찬 문짝이 천천히 나동그라지고, 어두컴컴한 실내에 두 사람의 실루엣이 천천히 뚜렷해진다. 한 남자와 한 여자. 내게 그렇게 친절하고 재미있었던 우리 과 선배와 내가 사랑하는 여자 친구가 반라의 모습으로 침대위에 있다. 부서져 버린 문 때문에 놀라고 당황한 모습이다. 그녀가 소리를 지를 줄 알았는데, 그러지 않았다. 


 처음에는 당황한 표정인 것 같았는데, 이내 모든 상황을 알겠다는 듯 표정을 보이는 저 선배의 얼굴이 싫었다. 미안해하거나, 겁에 질린 표정이 아니라는 게 화가 났다. 내 얼굴이 일그러지는 게 내 눈에 보인다. 침착해 보이는 선배의 얼굴을 부셔 버리고 싶었다. 어서 달려가서 저 얼굴을 박살내고 싶었다. 


 싸움이란 걸 해 본지 너무 오래된 것 같다. 어릴 적 처음 싸움이란 걸 했을 때처럼 내 몸의 근육들이 내 생각보다 느리게 움직였다. 짧은 순간 내가 왜 이렇게 화가 났는지 생각했다. 휴가를 나와서 그녀가 선배와 만난다는 이야기를 듣고 심하게 싸웠다. 그리고 헤어졌다. 만난 것 이해할 테니, 제발 헤어지지 말자고 비참하게 부탁했었지만, 결국 휴가 복귀를 했었다. 그런데 내가 지금 왜 여기에 있지?



 꿈이었다. 


 불침번을 서던 고참이 눈에 들어왔다. 갑자기 잠에서 깬 날 보고 웃는다. 



 "오~ 어제 휴가 복귀 한 놈이 군기가 제법 있는데, 근데 기상 시간은 10분 남았다 야. 좀 더 누워있어"


 "예 알겠습니다."


 "좋아~ 좋아. 좋은 자세야"



 그저께 헤어졌고, 어제 난. 부대로 복귀 했다. 탈영 같은 건 생각하지 않았다. 그제 마신 술의 쓴 맛이 아직도 입에 맴도는 것 같은데, 냉정해 지려고 노력했었다. 냉정하게 군 복무가 아직 1년이 넘게 남은 육군 일병이 떠난 여자를 잡을 방법은 없었다. 그녀가 만나는 사람이 가장 좋아했었던 선배라는 사실과 그 때문에 그녀가 내게 거짓말을 수십 번이나 했다는 사실이 너무 화가 나고 미쳐버릴 것 같았지만, 방법이 없었다. 


 좀 더 냉정하게, 내가 사회에 있었더라도 어떤 방법이 있었을지 의문이 들었다. 자주 얼굴을 보고 있었을 테니, 상황을 눈치 채는 정도의 준비운동은 가능했을 것이고, 잦은 다툼을 통한 자연스러운 이별이 있었을 것 같았다. 최소한 이렇게, 망치로 뒤통수를 세게 맞은 것 같은 상태를 당하지는 않았겠지. 



 일상으로 돌아왔다. 눈을 뜨면 도수체조와 구보를 하고, 왼손은 식탁 아래로 내려놓은 채 식사를 했다. 내일 휴가를 나가는 사람이라도 웃어주기 힘들 것 같은 고참의 개그에 웃지 않았다가 심각한 갈굼을 당하고, 정신교육 시간에 내가 한 숨을 쉬는 바람에 우리 동기들이 화장실에 집합했다. 



 "이 벌래 같은 새퀴들이 일병 말 호봉 쯤 처먹으니까 군 생활이 할 만하지?"



 주먹으로 한 대씩 가슴을 맞았다. 나는 서너 대 더 맞은 것 같다. 특별히 독한 구타는 아니었다. 이 정도라면 앞으로 남은 군 생활을 잘 하라는 격려의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단지 동기들에게 미안했다. 


 약간의 워드작업을 하다가 화장실을 다녀오는 길에 전화박스에 들렀다. 행정업무를 보는 병사들은 일과시간이 특별히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일과시간에 공중전화를 이용하는데 특별한 제약을 두지 않았다. 단지 문제가 있다면 난 어제 휴가를 다녀왔고, 조금 전에 약간의 군기불량으로 동기들을 불편하게 한 사람이었다. 


 꼭 이럴 때, 평소 일과시간에는 마주치기도 힘든 전투병과 선임을 만났다.



 "어이 일병 나부랭이 일루 와봐"


 "일병. x. x. x."


 "야이 쉬벨. 넌 눈치란 게 없는 종족이냐? 지금 꼭 전화를 하러 가셔야 했어?" 


 "아닙니다."


 "아니긴. 쒸벨조또 헤어진 여자한테 전화 할려구 그러냐? 니가 전화하면 다시 돌아온데? 받기는 하겠냐?"


 "......."


 "어. 쒸벨 인상 쓰네? 너 그저께 헤어졌다며, 헤어진 게 벼슬이여? 군대서 너만 헤어지냐?"


 "아닙니다......."


 "뭐여? 넌 언놈이 채간겨?" 


 "......."


 "말해봐 새꺄"


 "같은 과 선배가......."


 "그렇지? 동네오빠. 교회오빠. 아니면 같은 과 선배지. 다 그렇지 뭐. 절 오빠는 없어 쉬벨. 왜 절은 안다니는 겨"


 "......."


 ".......야. 조또 아냐. 그냥 한번 헤어진 겨. 나가서 또 만나면 되잖어. 그 애랑 평생 갈 줄 알았어? 야 걔가 너 제대 할 때까지 기다려주면, 니가 그 때까지 지금처럼 좋아할 거 같어?"


 "......."


 "야 그것도 힘든 겨. 너도 변할 꺼 아녀. 군대 다녀오면 다 변한 다잖어. 넌 변하는데, 걔가 일편단심이면 얼마나 부담스럽겠냐. 응?"


 "........"


 "잊기 힘들겠지 쉬벨. 조또 괴롭겠지. 근데 어떻게 하냐. 쉬벨 막 나가서 다 죽여 버려? 그럼 뭐여. 여태 너 키워준 부모님은 어떻게 하냐. 여자애 하나 때문에 아들 인생 졸망하고, 존내 안타까워 지는 거지"


 "......."


 "야 한대 필래?"


 "예 알겠습니다."


 "푸우~ 야. 쉬벨 솔까 잘된 겨. 니가 군대 있으니까. 걔가 그런 애라는 거 알게 된 거 아녀"


 "......."


 "쉬벨. 아니라고 말하고 싶겠지. 걔는 그런 애가 아니라고 믿고 싶겠지. 조또 걔는 착하고 순진해서 그런 악마 같은 선배 새퀴 꼬임에 넘어간 거라고 생각하고 싶겠지. 근데 솔직히 까놓고 이야기해서, 손뼉이 쉬벨 한 손으로 쳐져? 맞장구를 쳐줘야 하는 거 아녀"


 "......."


 "빡세게 군 생활 충실하게 하다 보면 잊어질 껴. 뭐 당연히 힘들겠지. 근데 주변 사람들 생각해주면 좋잖어. 니 얼굴에 '나 시한폭탄이요' 하고 써 놓고 다니면 같이 군 생활하는 사람들도 같이 힘들 잖어. 너 머리 좋잖어 인마. 상황 판단 잘해 새퀴야. 잠도 잘 안 오지 쉬벨. 내가 오늘 니 얘기해서 불침번 초번초로 빼 줄 테니까. 잘해봐 응?"


 "예 알겠습니다."


 "힘내 새퀴야"


 "예 알겠습니다.“


 “푸우~ 담배 달다~”


 “o o o 병장님은 언제 헤어지셨습니까?”

 

 "나?........ 쉬벨~ 난 아직 여자랑 사귀어 본적이 없는데? "


 "........"




 이색기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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